中·유럽 호재에도 韓 배터리 3사 못 웃는 이유…“치킨게임은 이제 시작”

조선비즈
  • 이재은 기자
    입력 2019.11.08 06:00

    中 전기차 판매, 9월 32.4% 급감…美는 환경규제 완화
    중국·유럽 배터리 업체 공격적 투자 계획 잇따라

    중국과 유럽발(發) 호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LG화학(051910),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등 국내 배터리 3자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당초 전기차(EV) 원년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판매가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과 유럽 업체의 공장 증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전기차 성장을 이끌었던 요인들도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진짜 치킨게임은 이제 시작"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유럽 보조금 확대, 中 자국 업체 우대책 폐지

    독일 정부는 지난 5일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기존보다 25~50%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차량 가격 기준으로 4만유로(5120만원) 이하면 지금보다 50%, 4만유로 초과 6만유로 이하면 25%씩 늘리겠다는 것이다. 폴크스바겐 아이디3(ID.3·3만유로), 닛산 리프(3만6800유로), 현대 코나(3만4000유로)는 보조금이 대폭 늘어나고, 테슬라 모델3(4만3400유로)도 혜택을 받는다. 또 보조금 지급 기한도 2025년으로 5년 연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4일 독일 츠비카우의 볼크스바겐 전기차 공장을 방문해 연설을 하고 있다. /EPA츠비카우연합뉴스
    독일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확대는 서유럽 주요국 가운데 가장 전기차 확대에 미온적이던 독일이 입장을 바꿨다는 점을 의미한다. 독일은 ‘클린 디젤’이 주력이었던 자국 자동차 업체들이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문제 등을 일으키자 지난해부터 전기차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를 100만대로 늘리고, 2030년까지 최대 1000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한국 배터리 3사의 발목을 잡아왔던 중국의 자국 업체 위주 보조금 지급 정책도 2020년에 사라진다. 배터리 3사는 ‘보조금 폐지’를 대비해 지난해부터 중국에 배터리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LG화학은 약 2조원을 투자해 난징2공장을 증설했고, 삼성SDI는 올해 텐진과 시안공장 증설을 마무리했다. SK이노베이션도 2조원을 투입해 중국 EVE에너지와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시장 선점을 목표로 투자를 늘려온 국내 배터리 업계는 중국의 배터리 보조금 폐지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 중저가 배터리 제조사들이 정리되고, 기술력이 더 우수한 국내 업체들이 선택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 보조금이 단계적으로 축소되면서 중국 중소 배터리 업체들의 수익이 급감하고, 일부는 폐업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기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물량 공세로 시장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렸었다.

    ◇배터리 시장 여전히 공급과잉…中 규제 변수도

    하지만 이런 호재가 기업 실적에 반영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게 대체적인 업계의 시각이다. 전기차 수요 증가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완만한데다 미국 환경규제 완화,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 등 수요 위축 요인도 잇따라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유럽 업체들이 공격적인 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치킨 게임 양상이 본격화 될 것이라는 관측 마저 나온다. 이 때문에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의 배터리 사업이 적자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자동차공업협회가 지난 14일 발표한 9월 신차 판매 통계에 따르면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4.2% 줄어든 8만대에 그쳤다. 중국의 전기차·하이브리드차 판매는 6월 이후 3개월 연속 줄고 있다. 중국 정부가 6월 전기차 보조금을 기존 5만위안(830만원)에서 2만5000위안으로 줄이자 바로 판매량이 꺾인 것이다. 여기에 경기 침체로 수요까지 줄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광저우 사무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LCD 산업과 같이 과도한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9월 캘리포니아주의 자동차 연비 규제에 대해서 주 정부의 연비 규제 권한을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픽업 트럭 등 연비가 낮지만 미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는 대형 차종 수요를 늘리겠다는 게 그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소셜미디어(SNS) 트위터에 "새롭고 통일된 기준 아래에서 훨씬 많은 차가 생산될 것이며 이는 상당히 많은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를 뜻한다"고 썼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에 설치된 CATL 부스. /CATL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량은 99기가와트시(GWh)인데 공급량은 200GWh으로 공급이 수요의 약 2배에 달한다.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해 배터리 업체들이 앞다퉈 설비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점차 낮아진 셈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 마쓰다는 이달 초 전기차 출시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당분간 적자를 보는 것은 각오하고 있다. 이는 토요타자동차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유럽 배터리 제조사도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상황이다. 세계 1위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CATL은 독일 생산공장 설립에 2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주도하는 ‘유럽배터리연합(EBA)’은 60억유로(약 7조9000억원)를 투입해 올해부터 4년간 전기차 배터리 공동 개발에 들어간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계급장(자국 업체 위주 보조금) 떼고 붙는 본격적인 치킨게임은 이제 시작인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자국 배터리 산업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보조금 폐지 이후에도 자국 배터리를 고집하거나 또 다른 규제를 들고나올 수 있다는 변수도 존재한다. 정세록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연구원은 "중국이 보조금 지원 제도를 연장하거나, 중국이 다른 제도를 통해 자국 기업과 해외 기업을 계속 차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각국의 환경규제 등에 힘입어 전기자동차 보급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밋빛 전망은 경계해야 한다"며 "배터리 시장이 이미 과잉공급 상태라 수요 성장 속도가 앞으로 수급 전망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