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쇼크⋅하] “정부⋅기업⋅투자자 역량 제고...임상 리스크 분산”

입력 2019.11.05 06:00

기술수출로 글로벌 제약사 인프라 활용
AI⋅빅데이터 활용 실패 확률 낮춰야
바이오 업계⋅투자자 글로벌 안목 필요

"신약개발 성공과 실패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희일비를 해선 안됩니다." 한미약품 권세창 사장은 최근 잇단 임상 실패나 중단 소식이 신약 개발 의욕을 과도하게 꺽어서는 안된다는 제약⋅바이오 업계의 인식에 공감하면서도 신약 개발 임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소수의 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에 올인하다시피해 하나의 임상시험 실패로 회사가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 바이오 업계의 장기적인 성장에는 시장의 신뢰도가 담보돼야한다. 올해 업계에 닥친 쇼크에도 시장의 신뢰도를 지키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전문인력 확충과 기업의 임상 인재 확보를 통한 역량 제고는 물론 업계와 투자자의 리스크 축소 및 글로벌 안목을 키우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조선DB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는 "신약은 특허기간 내에서 수익을 노릴 수 있는 품목인데 그 기간 내 충분히 활용되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진다"며 "제한된 시간 내 최대한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글로벌 제약사의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이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채택한 이유다. 한미약품은 임상 2상 등 특정 단계에서 제넨텍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제약사에 신약 후보물질을 기술수출해왔다. 권세창 사장은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수출하거나 핵심 후보물질을 도입하는 식으로 임상 위험부담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광약품도 대표적인 오픈이노베이션 업체로 통한다. 부광약품은 유럽 대학 및 벤처기업들과 신약 공동개발 등 계약 협의를 진행중이다. 유럽 대사질환 전문 바이오벤처 등과의 연구 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중견 제약업체 관계자는 "임상에 문제가 없더라도 미국 식품의약국(FDA)허가를 받으려면 글로벌 제약사들의 반대 로비를 뚫어야하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바이오벤처가 임상 3상까지 완료해 직접 허가를 받으면 매년 1조원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친다. 하지만 체력이 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홀로 갈 때 길을 잃기 쉬운 것처럼 리스크가 큰 게 현실이다.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난 일본의 다케다제약, 아스텔라스 등은 기술 이전 등을 통해 경험을 쌓는 식으로 기본기를 다져갔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빅2 시장 진출을 최종 목표로 한 이들에게 화이자 존슨앤존슨 사노피아벤티스 등 현지 임상시험과 허가 경험을 가진 회사와 협업은 필요조건이었다.

국내 제약·바이오 벤처가 임상 실패의 위험을 줄이려면 내부 전략을 통해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연구개발(R&D) 비용의 한계로 인해 상업화하는 파이프라인이 2~3개에 불과한 국내 바이오벤처의 경우 1개의 신약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서 실패하면 회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약물 발굴 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제형이나 투여시간 등 약물을 개량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갖추고 있다면 임상 성공 가능성이 보장된 후속 파이프라인을 얼마든지 보유할 수 있다. 이 경우,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실패해도 다른 파이프라인이 개발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의 가치가 완만하게 유지될 수 있다.

또 남들이 개발하지 않는 희귀의약품과 같은 영역을 특정해 약물을 개발하는 것도 국내 바이오스타트업에 필요한 성공 전략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희귀의약품의 경우, 세계적으로 환자 수는 적지만,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 많지 않아 미국·유럽 뿐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당국에서도 신속허가 심사, 세금 면제 혜택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글로벌 R&D 전문기업 암젠, 세엘진 등이 이런 사업 모델을 가진 대표적인 사례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도 임상시험 실패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1~2개의 물질에 선택과 집중하기보다 플랫폼 기술 기반으로 250개 이상 물질을 확보하는 게 추세"라며 "희귀약 개발 등 틈새 시장 공략을 통해 정부와 비용 등을 분담하고,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 손잡고 개발기간을 단축시키는 등으로 경험을 먼저 쌓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에 기반한 빅데이터와 외부 전문인력을 활용해 리스크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FDA에서 통계 심사관을 지낸 루시 데이비(Ruthie Davi) 메디데이터 에이콘 AI 사업부 데이터과학 이사는 "혁신신약을 개발할 때 기존 임상시험 방법만 고수해서는 더 큰 시행착오만 발생하고 위험부담이 커진다"면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체 시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발 시간을 줄이고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영입, 외부 전문 회사 자문을 통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업계와 함께 투자자들의 글로벌 안목도 커져야한다는 지적이다. 이혜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의 신약 개발 기술 동향으로 볼 때 현재 국내 상장 바이오 기업들의 파이프라인 혁신성은 낮은 수준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개발 초기만 해도 유망했던 신약이지만 임상단계에 이를 때 이미 관련 신약 개발 경쟁이 가열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규 대표는 "국내 바이오업계 투자 시장은 상대적으로 과평가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산업 자체가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지만, 이 분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도 있다. 걸러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업체들도 임상 과정에서의 과장된 정보 공개를 자제해야 하지만 투자자들은 과학적이고 검증된 데이터를 중시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의약품시장 분석업체 이밸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신약 개발 시장 중 바이오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14%에서 2020년 27%로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올해초 국내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조사한 결과, 개발 중이거나 개발 예정인 신약은 953개이고 이 가운데 바이오신약이 433개로 합성신약 396개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신약이 갈수록 강세를 보이는 글로벌 흐름에 제대로 올라탄 ‘한국 바이오’가 꾸준한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업계⋅투자자들의 역량이 함께 제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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