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위 현대오일뱅크, SK 직영주유소 비싸게 사들인 이유는?

조선비즈
  • 이재은 기자
    입력 2019.11.05 06:00

    현대오일뱅크, SK 직영주유소 320곳 인수
    취약한 서울·경기도 알짜 주유소 확보
    코람코와 연계해 주유소 부지 재개발

    현재 국내 석유제품 소매판매 시장에서 업계 순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서울 강남구의 주유소 실태다. 휘발유를 파는 주유소는 총 42곳이 있는데, SK에너지가 20곳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그 다음은 11곳이 있는 GS칼텍스다. 에쓰오일이 6곳으로 3위다. 현대오일뱅크는 전국 기준으로는 3위라지만, 정작 서울 한복판에서는 에쓰오일에도 밀리는 꼴지인 셈이다.

    이 같은 차이가 벌어진 것은 ‘업력’ 때문이다. 대한석유공사에서 출발한 SK에너지, 1968년 ‘제2정유공장’ 건설 사업에서 사업권을 따낸 호남석유가 모태인 GS칼텍스는 서울시가 개발될 때 요지에 주유소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극동석유에서 출발해 1993년 현대그룹이 경영권을 인수할 때까지 부침을 겪던 현대오일뱅크는 알짜 주유소 확보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현대오일뱅크 제공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1일 코람코자산신탁과 함께 SK네트웍스(001740)의 직영 주유소 320곳을 인수하기로 했다. 이번 SK네트웍스 직영 주유소 인수전에는 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SK이노베이션 자회사), 에쓰오일, GS칼텍스 등이 참여했다. GS칼텍스와 SK에너지가 예비입찰 초반에 발을 빼면서 인수전은 2파전으로 좁혀졌다. 이 가운데 현대오일뱅크 컨소시엄이 가장 높은 가격(1조원대 중반)을 써내 우위를 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거꾸로 보면 현대오일뱅크가 경쟁업체들이 엄두 내지 못할 가격을 써서 입찰에 응했다는 것이다. 주유소는 지난 몇 년새 급격히 사양산업이 되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상식’이다.

    그럼에도 현대오일뱅크가 1조원대 중반의 자금을 투입해 SK네트웍스의 주유소 320곳을 사들인 이유는, 결국 알짜 입지 주유소가 없어 설움을 겪어온 현대오일뱅크의 역사가 숨어있는 것이다. 또 토양정화사업에 지출을 많이하더라도 알짜 입지를 상업 시설이나 오피스용 빌딩으로 재개발할 경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도 있다. 코람코자산신탁이 현대오일뱅크와 함께 한 이유다.

    이번 인수전은 재무적 투자자(FI)인 코람코 자산신탁이 자금을 대서 주유소를 매입하고, 현대오일뱅크는 주유소 영업권을 획득해 운영하는 구조다. 인수 자금 마련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FI와 손잡는 구조를 택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의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분포. /오피넷 제공
    ◇주유소 10년간 1600여개 문 닫았지만…"정유 판매량 늘리고 점유율·위치 선점"

    업황만 보면 이번 주유소 인수는 실익이 없어 보인다. 주유소는 과당 경쟁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지난 10년간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등록된 국내 주유소는 약 1만1500여개로, 2010년 말(1만3107개)과 비교해 1600여개 줄었다. 작년 한 해에만 240여개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 입장에서 주유소 인수는 매력적이다. 당장 서울에서 현대오일뱅크의 주유소 숫자는 일반휘발유를 파는 곳 기준 45곳에 불과하다. SK에너지(94곳)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다. 특히 현대오일뱅크는 강남구(5곳), 서초구(3곳), 강서구(5곳), 영등포구(4곳) 등 차량 이동량이 많은 곳에서 주유소 숫자가 적다. 그런데 SK네트웍스의 직영 주유소 중에 서울에 49곳, 경기도에 101곳이 있다. 수도권 비중이 높기 때문에 현대오일뱅크의 주유소 포트폴리오를 보완할 수 있다.

    정유사 입장에서 같은 간판의 주유소가 많을수록 안정적으로 물량 공급을 할 수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주유소 인수로 점유율이 늘면 경질유 판매도 덩달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기준 국내 경질유 시장 점유율은 SK이노베이션 31.7%, GS칼텍스 24.4%, 현대오일뱅크 22%, 에쓰오일 20.1% 순으로 주유소 점유율 순위와 같다.

    현재 SK 계열사가 운영하는 주유소는 SK에너지 3404개, SK네트웍스 직영주유소 324개로 총 3728개다. 경쟁사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 이어 GS칼텍스(2387개), 에쓰오일(2099개), 현대오일뱅크(2218개), 알뜰주유소(398개) 순이다. 이번 인수로 SK네트웍스 주유소가 현대오일뱅크로 간판을 바꿔달면 현대오일뱅크가 주유소 2542개로 단숨에 2위로 올라선다.

    또 SK네트웍스 직영 주유소 상당수가 시내 요지에 자리잡고 있어, 활용도가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토양오염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주유소를 상업 시설로 전환할 경우 수익성을 낼 수 있다. 또 주유소에 수소차나 전기차 충전소를 붙이고, 도심 내 배달 거점으로 사용하는 등 도로 교통이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는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지금도 위치 좋은 장소에 신사업을 접목한 주유소를 계속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SK네트웍스 주유소는) 지리적인 이점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쿠팡과 로켓배송 거점으로 주유소를 활용하는 물류 협약을 맺고, 개인 창고 서비스인 ‘셀프 스토리지’를 도입하는 등 주유소 유휴 부지를 신사업과 접목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코람코는 이번에 인수하는 주유소 중 수익성이 낮은 일부는 영업을 중단하고 부동산 개발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주유소는 편의시설 등을 추가해 수익성을 높인 뒤 이를 묶어 ‘주유소 리츠(부동산투자신탁)’를 설립해 상장할 계획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네트웍스 1조원대 현금 마련…‘렌탈’에 주력

    한편, SK네트웍스 직영 주유소 매각 작업은 내년 1분기쯤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매각으로 SK네트웍스는 1조원 이상의 실탄을 확보하게 된다. 회사 측은 "매각 자금을 재무구조 개선과 미래 성장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SK네트웍스가 주력 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렌탈’에 대한 추가 투자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SK네트웍스는 부진한 사업을 정리하고 렌탈 중심의 사업 재편을 진행해왔다. 그 일환으로 LPG 충전소와 석유판매사업을 매각했고 올해 초 AJ렌터카 인수 작업도 마쳤다. 앞서 2016년에는 SK매직을 인수하면서 패션부문을 현대백화점그룹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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