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대교 만든 장인들, 세계 최장 현수교 짓는다

입력 2019.11.04 03:12

[터키 '차나칼레 대교'에 도전하는 대림산업·SK건설]
일본 컨소시엄 제치고 공사 따내… 318m 주탑 2개, 63빌딩보다 높아
태풍급 강풍·파도와 싸우며 현수교 '마의 2㎞' 한계에 도전

터키 서부 마르마라해(海)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다르다넬스 해협 북쪽 지중해 해안. 붉은색으로 칠해진 높이 30m 기둥 두 개가 선명하게 보였다. 부두에는 10m 높이 철골 블록이 여럿 쌓여 있었고, 근처에선 작업자들이 용접 작업에 분주했다. 10m 높이 블록들은 해상 크레인이 바다 한가운데로 옮겨 차곡차곡 쌓아 올리게 된다. 오는 2023년이면 32개 블록이 모두 쌓여 63빌딩(274m)보다 높은 318m짜리 주탑이 되고, 2개 주탑 사이 2023m를 케이블로 연결하는 세계 최장(最長) 현수교가 한국 기술로 완성되게 된다. 대림산업SK건설, 현지 업체 두 곳이 터키에서 벌이고 있는 세계 최장 현수교 건설 사업 '차나칼레 대교 건설 프로젝트'다. 공사 대금은 3조2000억원에 달한다.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세계 최장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 건설 현장(위 사진).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세계 최장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 건설 현장(위 사진). 사진 아래 빨간 주탑과 바다 건너편 주탑이 63빌딩보다 높이 쌓이면 이 두 주탑을 철 케이블로 연결하고 상판을 케이블에 매달게 된다. 아래 사진은 대림산업 엔지니어들과 현지 근로자가 배를 타고 현장으로 나가면서 포즈를 취한 모습. /대림산업
'얼마나 길고, 안전한 현수교를 짓는가'는 한 나라와 기업의 건설 기술력을 상징한다. 현수교는 주탑과 주탑 사이 기둥이 하나도 없이, 다리가 탑에 매달려[懸] 있는 구조다. 그래서 건설 난도가 가장 높은 교량이다. 1950년대 미국, 1970년대 이후 일본 같은 건설 기술 강대국은 세계 주요 현수교를 시공했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현수교 설계와 시공 기술 자립에 성공했고, 지난 20년 동안 '축적의 시간'을 거쳐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추게 됐다. 우리나라 기술자 48명은 터키에서 바람과 파도와 싸우며 '마의 2㎞ 벽'을 뚫고 있다. 현재 세계 최장 현수교는 일본 오사카만을 가로지르는 아카시 대교(1991m)다. 차나칼레 대교는 이보다 32m 길다.

한국 건설 기술의 맨파워

지난달 차나칼레 대교 건설 현장 인근의 프로젝트 기지인 '아시아 앵커리지' 사무실 한 칠판에는 복잡한 수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현장에 파견된 대림산업과 SK건설 엔지니어들이 바람의 영향을 수식으로 계산한 흔적이다. 주탑 꼭대기에는 태풍과 맞먹는 초속 수십m 바람이 분다. 파도가 치면 작업을 위해 오가는 배가 출렁이기 때문에 작업이 쉽지 않다. 주탑 블록을 해상 크레인으로 옮기는 작업도 강풍 탓에 번번이 취소된다. 그래서 현장 엔지니어들은 시시각각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분석하고 이런 변수에 대응하면서 현장을 지휘한다. 업계에서 "현수교 건설은 기술 인력의 우수함, '맨파워'가 좌우한다"고 말한다.

세계 최장 '톱6' 현수교
대림산업 정승욱 현장소장과 김지훈 부장, SK건설의 백한솔 소장과 서승호 프로. 이 엔지니어 4명이 지금까지 놓은 교량의 길이를 합하면 총 3만4360m(중복 계산)에 달한다. 네 사람이 참가한 교량 프로젝트는 12개다. 다리 하나를 놓는 데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경력 대부분을 바다 위에서 보낸 셈이다. 이런 노하우를 인정받아 일본 건설사 컨소시엄을 제치고 한국 기업이 수주를 따낼 수 있었다.

다리를 5개나 지은 정승욱 소장은 "이곳에 투입된 대림산업과 SK건설의 엔지니어들은 국내 최장이자 세계 6위 현수교 '이순신 대교(1545m)'를 함께 만든 사람들"이라며 "한국 건설 기술의 자존심을 걸고 반드시 세계 최장 현수교를 성공적으로 완공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철강 기술, 태풍 같은 바람 이겨내

차나칼레 대교 수주에는 한국의 철강 기술력도 한몫했다. 차나칼레 대교엔 포스코고려제강이 만든 강철 케이블이 공급된다. 포스코는 강도를 끌어올린 초고강도 철을 공급하고, 고려제강은 이 철로 가는 철사를 만든다. 직경 5.75㎜ 가는 철사 127가닥이 모여 철줄 하나가 되고, 다시 이 철줄 148개로 거대한 철 밧줄인 케이블을 만들어 다리 상판을 주탑에 매단다. 현존하는 최고 강도 현수교 케이블이다. 이런 기술력이 응집돼 차나칼레 대교는 지난 9월 한국을 강타한 태풍 링링의 최대 풍속(초속 47m)보다 센 최대 초속 69m 바람도 견뎌낼 수 있다.

차나칼레 대교가 완성되면 차로 8시간 돌아가야 하는 다르다넬스 해협 반대편 도시를 10여 분이면 갈 수 있게 된다. 그동안 터키인들은 해협 반대편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30분~1시간마다 오는 배를 이용해야 했다.

그동안 이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짓지 못했던 것은 일반적인 다리를 지으면 지중해와 이스탄불을 잇는 해상 무역항로가 교각에 막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차나칼레 대교는 교각이 없는 현수교라 선박이 오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프로젝트는 일정 기간 시공사에 도로·교량 운영권을 줘 통행료 수익으로 건설비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터키 정부가 하루에 4만5000대분(分) 통행료를 보장해 손실 위험도 작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건설 경제 침체에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모범 사업 방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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