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일단 하고 본다는 ‘와이 낫’의 정신

입력 2019.11.02 11:20 | 수정 2019.11.02 11:37

중국 베이징에 특파원으로 온 지 네 달이 지났다. 중국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채워가면서 지금의 중국은 어떤 나라인지 경험하고 있다. 여러 생각이 든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중국은 극심한 통제 국가이면서도 자유로운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국민이 보고 듣고 읽고 쓰는 모든 것을 검열한다. 인터넷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 속에서 당이 모든 온라인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통제·감시한다. 필요에 따라 특정 웹사이트 접근도 수시로 차단한다. VPN(가상사설망)이란 인터넷 우회 연결 프로그램이 없으면 외국 웹사이트에 접속하기도 어렵다.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외국 포털·소셜미디어뿐 아니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해외 주요 언론사 웹사이트에도 접속할 수가 없다. 한국인이 많이 쓰는 네이버·카카오의 여러 서비스도 막혀 있다. VPN 없이는 카카오톡 연결도 잘 되지 않아 중국에 온 후 졸지에 메시지도 확인하지 않는 ‘개념 없는’ 사람이 돼 버렸다.

만리방화벽을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VPN이다. VPN을 이용해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서버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다. 최근 베이징 시내 중심상업지구(CBD)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중국인 창업자도 VPN 없이는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자동차 경주용 트랙을 만드는 그가 사업 설명을 위해 노트북을 켜고 가장 먼저 한 일은 VPN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매달 사용료를 내고 VPN 서비스를 써도 VPN 접속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정부가 VPN 서비스 자체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건국일이나 공산당 대회처럼 국가 중요 행사가 있을 때는 더 그렇다. 도로 곳곳, 건물 곳곳에 달려 있는 온갖 CCTV 카메라와 함께 늘 감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다른 한편으론 중국에 온 후 한국에서보다 생활이 여러모로 더 편리하다고 느낀다. 이제 현금이나 신용카드 없이 휴대전화만 들고 밖에 나가도 불안하지 않다. 스마트폰에 깔아 놓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로 거의 모든 결제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디디추싱의 차량 호출 서비스다. 디디추싱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원하는 종류의 차량을 불러서 타고 도착하면 그냥 내린다. 앱에 연동된 알리페이 결제 정보가 있어 이동이 끝나면 알아서 결제된다. 여기까지는 한국 카카오택시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카카오택시는 사실상 일반 택시다. 기존 콜택시가 전화를 걸어 택시를 지정 장소로 부르는 거라면 카카오택시는 앱으로 택시를 부른다는 차이 정도다.

디디추싱은 차량 호출 형태가 다양하다. 일반인이 개인 차량을 운전하는 차, 카풀(합승), 전문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프리미엄 차, 대리운전, 일반 택시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한국에서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퇴출된 미국 차량 호출 업체 우버의 서비스와 비슷하다.

최근 한국에서 불법 논란이 인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 사건을 보면, 중국이 한편으로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인지가 보인다. 중국에선 하면 안 되는 것 빼고는 다 해도 되는 ‘네거티브 규제(법이 금지한 것 외에는 일단 허용)’ 방식 덕분에 많은 신산업이 성장했다. 일단 시작하고 본다.

미국에서 우버가 등장한 후 중국에서 디디추싱이 생겨났다. 우버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자 디디추싱은 중국 경쟁사와 합병한 후 우버의 중국 사업을 인수했다. 디디추싱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되기까지 정부 규제 때문에 사업을 접을 뻔한 적은 없다. 중국 정부는 사업을 일단 허용하고 이후 문제가 생기면 제한을 두고 보완 장치를 요구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했다. ‘선(先) 허용·후(後) 규제’다. 디디추싱은 택시 업계의 불만이 높아졌을 땐 호출 수수료 면제란 유인책을 내세워 100만 대 이상 택시를 디디추싱 플랫폼으로 끌어들였다.

중국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은 중국이 여러 분야에서 앞서 나가게 된 원동력 중 하나다. 모바일 결제, 드론 산업, 자율주행, 인공지능, 원격의료, 유전자 교정 기술 등 신산업과 신기술이 성장한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규제 혁신 토론회에서 "규제 개혁의 핵심은 신산업·신기술에 대해서 우선 허용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외국에선 더는 ‘혁신’ 소리도 못 듣는 차량 호출 서비스 사업자가 불법 취급을 받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나라에서 할 수 있다고 정해 놓은 것만 해서 무슨 혁신이 일어나겠나. ‘와이 낫?(why not·안 될 게 뭐 있어?)’의 정신으로 뭐든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운동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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