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BIZ] 마라톤 2시간 벽 깬 러닝화, 비결은 '탄소 섬유 중창'

조선일보
  • 양모듬 기자
    입력 2019.10.31 03:07

    나이키 '베이퍼플라이'의 중창 두께 36㎜로 늘려 추진력 높여
    중창 가운데엔 탄소 섬유판 삽입, 스프링 역할해 뛰는 힘 10% 향상
    일부선 "약물 이용한 도핑처럼 기술 이용한 도핑 아니냐" 비판

    지난 27일 강원도 춘천 일대에서 열린 2019 춘천마라톤. 날렵해 보이는 연두색 운동화를 신은 로버트 킵코리르 쾀바이(34·케냐)가 가장 먼저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다. 대회 신기록을 기록하며 우승한 그가 신은 운동화에 관객들의 시선이 꽂혔다. 이른바 '킵초게 운동화'로 불리는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 운동화다.

    마라토너 일리우드 킵초게(35·케냐)는 인간의 한계로 여겨진 마라톤 2시간 주파의 벽을 깬 인물이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 공원에서 마라톤 42.195㎞ 전 구간을 1시간 59분 40초에 주파했다. 기록 경신을 위해 최적의 날씨와 코스를 정하고, 페이스 메이커 41명을 투입했으며, 스포츠 의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수단이 동원됐다. 하지만 이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그의 신발 '베이퍼플라이'였다. 영국 가디언은 "이 운동화는 탄소 섬유판 등 첨단 소재를 이용한 제품"이라며 "약물을 이용한 '도핑'처럼 첨단 기술로 기록을 끌어올린 '기술 도핑'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신기만 해도 마라톤 기록 3% 단축

    에티오피아 출신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가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한 이후 마라톤용 운동화는 '가볍고 발에 딱 붙는' 것이 정석으로 여겨져 왔다. 이후 얇은 고무 슬래브가 주재료가 됐다. 하지만 2016년 나이키가 베이퍼플라이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마라톤용 운동화에 대한 상식이 다시 쓰였다. 뉴욕타임스가 "첨단 운동화를 신은 선수들이 13개월 만에 마라톤 기록을 5개 깨뜨렸다"고 언급할 만큼 신기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이키의 하이테크 러닝화 그래픽
    /사진=조인원 기자
    '도핑'에 비교될 만큼 기록을 줄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 운동화의 중창(midsole·신발의 밑창과 깔창 사이 부분)에 집약되어 있다. 일반 운동화에 많이 쓰이는 EVA(에틸렌초산비닐 공중합체), PU(폴리우레탄) 대신 열가소성 폴리우레탄 '페백스(PEBAX)'를 소재로 해, 더 가볍고 탄력이 있다. 덕분에 선수가 지면을 박차면 더 많은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중창 두께도 기존 31㎜에서 36㎜로 늘려 추진력을 85% 높였다.

    중창 한가운데에는 얇고 딱딱한 '탄소 섬유판'이 삽입되어 있다. 이 탄소 섬유판은 선수가 지면을 박찰 때 발가락이 뒤로 꺾이는 것을 받쳐준다. 그 결과, 뛰는 힘이 10%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스포츠 과학자 로스 터커는 "이 신발을 신은 선수는 평지보다 1~1.5% 경사 내리막길을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발 앞부분과 발뒤꿈치의 높이 차이(오프셋)를 기존 11㎜에서 8㎜로 줄여 발 앞쪽에 실리는 부하를 줄였다.

    고무 재질의 밑창은 홈을 깊게 내 비가 왔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설계했다. 갑피는 가벼우면서도 방수가 잘되는 신소재다. 덕분에 270㎜짜리 운동화의 무게가 187g에 불과하다. 이 신발을 개발한 연구진은 "베이퍼플라이가 마라톤 기록을 최대 3% 향상시킬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논란 일었던 전신 수영복은 '퇴출'

    하지만 누구나 이 신발을 신고 잘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이퍼플라이는 우선 아시아나 유럽 선수보다 아프리카 선수에게 더 높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창에 들어간 탄소 섬유판 때문이다. 발가락 관절이 지나치게 꺾이는 것(등쪽 굽힘 현상)을 막아 줌으로써 발가락을 통해 소실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다른 부위에 무리가 간다. 스포츠 역학 전문가인 게르트-페터 브뤼거만 박사는 "이 때문에 아킬레스건과 종아리 근육에 무리가 더 가기 쉽다"면서 "킵초게 선수 같은 동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유전적으로 아킬레스건이 더 길고 굵어 별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발가락 쪽과 발뒤꿈치의 높이 차이(오프셋)가 8㎜로 일반 운동화보다 높은 것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운동화 앞쪽은 추진력, 뒤쪽은 충격 흡수를 담당한다"면서 "이 때문에 일반인들이 베이퍼플라이를 신었을 경우 발목을 접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현재 이 운동화는 일부 마라톤 선수들의 반발로 인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기술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러한 '기술 도핑' 논란이 불거졌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신 수영복이다. 수영용품업체 스피도는 1998년 폴리우레탄을 이용해 물의 저항을 줄인 전신 수영복을 개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수영 선수들이 앞다퉈 이 수영복을 입고 경기에 나서면서 세계신기록이 양산됐다. 이 수영복의 활약이 절정에 달한 2008년에는 한 해에 무려 108개의 세계 기록이 쏟아질 정도였다. 결국 전신 수영복은 2010년 퇴출당했다.

    스포츠용품 업계 관계자는 "운동화는 개인의 신체적 역량 향상을 돕는 도구일 뿐"이라며 "첨단 기술을 스포츠와 접목하는 것은 좋지만, 공정한 경쟁을 해칠 수 있는 기술은 제한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과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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