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⑪80년 미생물 연구의 결정체 ‘느린마을 막걸리'

조선비즈
  • 박순욱 기자
    입력 2019.10.18 14:14 | 수정 2019.10.18 17:43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 2010년에 ‘무감미료’ 느린마을 막걸리 개발
    쌀 함량 높이고, 2주간 저온숙성, 좋은 술맛 내는 미생물이 특징
    같은 술이 날짜 지남에 따라 단맛, 신맛, 탄산 등이 달라지는 것은 병 속의 미생물 활동 때문
    가장 신선한 ‘봄 막걸리’는 단맛 강하고 점차 탄산, 신맛 도드라져
    "4차산업혁명시대, 개성있는 소비 트렌드에 가장 어울리는 술이 막걸리"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가 나온 것은 2010년이다. 올해가 출시 10년째다. 국내 최초의 ‘무감미료 막걸리'로 자리매김해 막걸리 매니아들의 두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농식품부 주최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기자는 느린마을 막걸리를 한번도 마셔보지 않았다. 원래 막걸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주변에서 느린마을 막걸리를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막걸리를 마신 뒤 다음날 숙취로 고생한 기억이 몇번 있기도 해서 막걸리 자체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배상면주가 배영호 대표가 느린마을 막걸리 개발의 산실인 서울 양재동 느린마을 양조장 발효탱크 앞에 서 있다. /박순욱 기자
    2년 전, 느린마을 막걸리 개발의 주역인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때도 느린마을 막걸리 맛이 어떤지, 어떻게 만드는지 등은 기사에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 대신에 ‘도심의 양조장에서 직접 담은 막걸리를 고객에게 제공한다(느린마을막걸리 도심 양조장)', ‘양조장 플랫폼을 만들어 술 제조를 일반에 개방하겠다(동네방네 프로젝트)’는 등 여타 주류업체와는 남다른 배상면주가의 막걸리 제조-유통 시스템에 대해 기사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런데, 최근 전국의 양조장을 돌아 다니면서부터 취재를 위해 막걸리를 맛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막걸리마다 원료가 조금씩 다르고, 또 맛에도 적잖은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됐다. 막걸리 맛을 보는 기회가 잦아짐에 따라 조금씩 막걸리 맛에 눈뜨게 된 것이다.

    느린마을 막걸리 맛은 확연히 달랐다. 첫 목넘김부터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바나나, 요구르트 향도 진하게 났다. 혀 끝에 남는 여운이 비단결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이게 막걸리 맞나? 싶었다. 지금까지 마셔본 막걸리와는 많이 달랐다. 가격은 다소 비싸다. 대형마트 같은 소매점에서 2500원. 수입쌀로 만드는 장수막걸리보다는 두배 이상 비싼 편. 그러나 느린마을 막걸리는 쌀 자체의 맛으로 기분 좋은 단맛을 낸다. 대부분의 막걸리들이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쌀 함유량을 줄이고 인공 감미료로 단맛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 느린마을 막걸리 쌀 함유량은 다른 막걸리보다 두세배 많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막걸리 병을 자세히 보면 누구나 쌀 함유량을 짐작할 수 있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병 바닥에 가라앉은 고형물(맑은 물 밑의 반고체 성분) 높이가 다른 막걸리의 두배가 넘는다. 그만큼 쌀을 많이 넣었다는 증거다.

    ◇2010년 막걸리 붐 타고 다들 감미료 막걸리 만들 때 유일하게 무감미료 막걸리 개발

    느린마을 막걸리 제조 과정과 맛의 비밀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 포천의 느린마을 양조장과 서울 양재동 본사를 연이어 방문했다. 본사에서는 배영호 대표를 만나 "21세기의 개성 있는 소비 트렌드에 가장 어울리는 술은 막걸리"라는 얘기도 처음 들었다.

    배상면주가의 포천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전국의 대형마트와 식당에 공급하는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국 25개 도심 느린마을 양조장은 자체 소비하는 막걸리를 직접 생산한다. /배상면주가 제공
    배영호 대표는 전통술 업계에서 ‘벤처기업인'으로 통한다. 전통술을 과거(전통)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대의 것으로 승화하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을 계속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술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쌀을 원료로 한 맥주도 내놓았다. 2010년대 초 막걸리 붐에 편승해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수입산 쌀과 인공감미료로 막걸리를 만들 때도 ‘우리쌀, 무감미료 막걸리(느린마을 막걸리)’ 개발에 몰두했다. 제철 농산물을 원료로 한 세시주를 꾸준히 내놓고 있는 곳도 그가 대표로 있는 배상면주가뿐이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어떤 취지에서 개발했나?

    "2010년도에 느린마을막걸리가 출시됐다.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 없는 막걸리가 처음 나온 것이다. 당시 막걸리 붐을 타고 대부분의 업체들이 아스파탐을 넣은 막걸리를 경쟁적으로 내놓았지만, 우리만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지금은 몇군데에서 무감미료 막걸리가 뒤이어 나왔다. 시중의 막걸리들은 대개 일본식 누룩을 사용한다. 쌀도 거의 똑같고. 수입쌀 쓰는 업체들이 많다. 그리고 완전발효 시킨 뒤 맨 마지막에 아스파탐을 잔뜩 넣어 막걸리를 완성한다. 이러니 맛도 똑같다. 이건 제대로 된 막걸리가 아니다. 조선시대에 무슨 감미료가 있었겠나? 막걸리를 옛날 양조방법 그대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쌀, 누룩, 물' 이 세가지만으로 막걸리를 빚어온 기본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느린마을 막걸리를 만들었다. ‘인공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다'고 홍보하니까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우리 술을 가져다가 성분 분석까지 했다. 감미료는 당연히 검출되지 않았다. 대형마트에서도 초반에는 진통이 있었다. 감미료 막걸리를 만드는 경쟁 업체들이 마트측에 ‘무감미료 느린마을 막걸리' 광고문구 중 ‘무감미료' 글자를 빼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감미료를 넣은 자신들의 제품이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져 보이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막걸리 치고는 비싸다’는 의견이 아직도 많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만든 막걸리이기 때문에 가격과 품질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막걸리 맛이 조금씩 다른 것은 막걸리만의 매력 ‘다름의 미학을 즐겨라'

    느린마을 막걸리는 만들 때마다 조금씩 맛에 차이가 있나?

    "인공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 느린마을 막걸리는 소비자들이 구매 후 언제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왜냐면 막걸리가 완성돼 병에 담더라도 그 속에서는 유산균, 구연산, 젖산균 등 무수히 많은 미생물들이 왕성한 활동을 계속 하기 때문이다.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토해내고, 갖가지 향이 나는 것도 이들 미생물 활동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미생물의 활동도 온도, 습도, 누룩 상태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막걸리를 만들 때마다 맛의 차이가 조금씩 있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것이 ‘365빈티지 어 이어'이다. 느린마을막걸리는 365일 만들지만, 매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와인은 빈티지(와인을 만든 포도 수확연도)가 있지 않느냐? 해마다 포도작황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지는게 와인 빈티지에 대한 설명이다. 똑같은 밭에서 기른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도 2018년산 와인 다르고 2019년산 다른 게 해마다 포도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와인은 일년에 한번만 빚는다. 그런데 막걸리는 365일 빚으니까 365일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365빈티지 어 이어'이다. 원래 발효주는 다 그렇다.

    경기 포천의 전통술 문화갤러리인 산사원 경내의 증류주 숙성고인 세월랑. 이곳에서는 650리터 크기의 500여개 항아리에서 증류주가 익어가고 았다. /배상면주가 제공
    막걸리 맛은 항상 미세하게 다를 수 있다. 맛이 조금씩 다른 것을 단점으로 여기지 말고, 오히려 이를 장점으로 키워야 한다. 세계에 이런 술은 없다. 만드는 사람마다, 만드는 장소마다, 만드는 계절마다 술맛이 다름을 즐기라는 것이다.이게 막걸리의 매력이다. 그래서 내가 자주 쓰는 말이 ‘다름의 미학을 즐겨라’는 것이다. 이게 새로운 시대의 막걸리 가치다.

    천편일률적인 맛의 술, 그건 20세기에서나 통하던 구시대 유물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서나 통하던 가치다. 21세기에 왜, 제품이 얼마나 많은데, 대안이 얼마나 많은데, 귀한 돈을 소비자가 지불하면서 왜 천편일률의 맛을 강요받아야 하나? 그래서 이 세상에 이런 술(마실 때마다 맛이 다른)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게 바로 막걸리다."

    다른 양조장들은 반대로 ‘막걸리 맛의 균질화'를 잡는데 노력하고 있는데.

    "1960~70년대 양조시설 자체가 열악해서 발효 공정 자체가 들쑥날쑥했던 시절이 있었다. 위생 상태도 엉망이었고. 그런 시절에는 막걸리 맛이 일정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맛 자체가 엉망이었다. 그래서 이런 점들을 개선해서 맛을 일정 수준 균일화시킨 것은 막걸리 제조의 기본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결정적으로 인공 감미료로 맛의 균질화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어떤 찌개라도 조미료만 많이 넣으면 어느 수준 이상의 맛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막걸리 발효 과정에 문제가 있더라도, 쌀 함유량이 적어 단 맛이 덜 나더라도, 인공 감미료인 아스파탐만 넣으면 ‘맛있는 막걸리’가 완성된다. 한마디로 감미료 막걸리, 조미료 막걸리다.

    ◇막걸리 수출? 해외에 양조장 진출해 현지 쌀로 만들어 현지유통할 것

    감미료를 넣지 않은 옛날 막걸리도 그때그때 맛이 달랐나?

    "조선시대 사람들 시문을 보면, ‘막걸리가 알맞게 익었으니, 놀러와라'는 글이 꽤 많다. 왜 이런 글이 나오느냐 하면 집에서 어머니, 아내가 막걸리를 담는데, 막걸리가 익는 속도가 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글이 조선 시대 막걸리 익어갈 때 벗들 사이에서 오간 편지글이다. ‘작년 여름에는 별로 덥지 않아서 삼복에 띄운 누룩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작년 여름에 만든 막걸리는 맛이 별로였는데, 올 여름에는 더위가 극성인 탓에 누룩이 정말 잘 떴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어머니가 만든 막걸리는 기가 막힌다. 그러니 시 한축 들고 와서 나랑 막걸리 한잔하자, 친구야…’ 이게 진정한 막걸리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포천의 느린마을 양조장 입구. /박순욱 기자
    그래도 남들과 다른 길(무감미료 막걸리)을 가기가 싶지 않았을텐데.

    "남들과 다른 길을 간 것은, 막걸리가 21세기의 소비자에게도 먹힐 정도의 가치가 있는 술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격 막걸리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본격 막걸리가 뭐지? 기본 막걸리가 본격 막걸리인가? 아니다. 왜?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을 타서 맛의 균질화를 이룬 막걸리는 제대로 된 술이 아니다. 이건 김치찌개에 조미료 팍팍 넣어서 김치찌개마다 맛을 똑같이 만든 거랑 같은 것이다. 조미료 넣으면 어떤 찌개든 맛이 거의 똑같아지지 않나?

    모든 음식에 조미료 때려넣으면 맛이 좋아지고 똑같아진다. 술 조미료가 아스파탐이다. 전국의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 맛이 똑같아지는 것은 비정상이다. 그런데, 아스파탐을 빼면 술의 본실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옷을 걸치고 있을 때는 누구나 별 차이 없지만 옷을 벗으면 사람마다 천양지차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듯이.

    조선시대, 일제 시대에는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가 전혀 없었다. 감미료 넣지 않고 막걸리 만들었다. 그때는 실력이 있어야 했다. 감미료 넣지 않고도 제대로 맛을 내는 막걸리를 만들어야 하니까 쉽지 않았겠지. 당시에는 그래도 동네 상권이니까 맛이 좀 별로인 막걸리도 그런대로 팔렸을 것이다. 그런데 전국 상권인 요즘엔 그게 안 통한다. 아스파탐을 빼면 본실력을 갖춰야 한다. 감미료 안 넣고도 제대로 만들어야 술맛이 나니까. 그래서 아스파탐을 빼고 막걸리 만드는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했다. 우리는 아버지(고 배상면 회장) 때부터, 지금으로 치면 80년전부터 막걸리 맛을 결정하는 미생물 연구 개발을 해와, 이 분야 기술이 엄청나게 축적돼 있다."

    막걸리 맛이 들쑥날쑥한 게 정상이란 말인가?

    "감미료 없이 막걸리를 만들면, 때마다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느린마을막걸리는 경기도 포천공장에서 만든 것이랑, 이곳 서울 양재동 본사 양조장에서 만든 것과 맛이 다르다. 재료, 레시피는 똑같은데도 그렇다. 이게 막걸리의 묘미, 장점이다. 세상에 이런 술이 또 있나? 막걸리의 가치는 바로 이것이다. 똑같은 재료, 공법으로 만들어도 장소나, 만든 시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 다른 술이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이다.

    나보고 ‘막걸리 수출 얼마나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아직 실력이 안돼 수출은 못하지만, 대충 만들어서 보내면 맛이 없을 수밖에 없다. 막걸리를 국내에서 만들어 배에 실어 한달 걸려 외국에 도착하면 신선함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우리는 힘이 생기면 양조장이 직접 나가려고 한다. 현지생산,현지유통 시스템을 갖춰 외국에서도 국내와 마찬가지로 그 동네 쌀로 만들어 그 동네서 팔겠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막걸리, 파리 막걸리. 프랑크푸르트막걸리 이런 식으로. 이게 내 비전이다. 언젠가 그렇게 할 것이다. 이게 막걸리의 가치다."

    조선시대 막걸리에 비해 요즘 막걸리는 왜 단맛이 강한가?

    "아스파탐이나 사카린이 없었던 조선시대 막걸리는 지금 막걸리보다 달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단맛이 흔하지 않았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단맛 나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1960년대, 1970년대만 해도 명절 최고의 선물이 설탕이었다. 그 전에는 음식도 대부분 안 달았다. 그때 음식, 지금 사람은 못 먹을 것이다. 타임머신 타고 60년대로 돌아가면, 무슨 음식을 먹어도 ‘맛없다’고 할 것이 뻔하다. 왜냐면 지금과 달리 당분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호가 달라진 것이다.

    느린마을 막걸리를 조선, 일제시대 막걸리보다 달게 만드는 게 그 때문이다. 옛날 막걸리는 단맛이 별로 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쌀을 많이 넣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막걸리에도 단맛을 원하기 때문에 방법은 두 가지다. 감미료를 넣거나
    옛날 막걸리보다 쌀 함유량을 월등히 높이거나. 우리는 감미료 대신 쌀 함유량을 높였다. 쌀은 발효과정에서 분해가 돼서 효모가 이것을 먹고 알코올을 만들어 내고, 남은 당분을 사람이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효모가 알코올을 만들다가 당분이 남아서 술 맛이 단 것이다. 알코올을 만들고 나서 당분이 많이 남아야 사람들이 마실 때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쌀을 옛날보다 많이 쓴다. 일반 막걸리는 쌀 함유량이 10% 미만인데, 느린마을 막걸리는 세배 수준인 25% 정도다. 그러니 비쌀 수밖에 없다."

    와인, 사케 마시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막걸리를 제대로 된 술이라고 보지 않는다.

    "막걸리 붐이 일기 오래 전에 이미 와인, 사케 입맛이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많다. 그들이 우리 막걸리를 보는 시각이 어떤지 아는가? 막걸리뿐 아니라 전통술에 대한 평가가 외국술인 와인, 사케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가? 이런 식이었다. 와인, 사케에 맞추려고 하니까 아무리 잘해도 2등이지. 일반적으로 10등, 아니 150등이지. 언제까지 와인, 사케 따라가기 짓을 할 건지 안타깝다."

    경기도 포천에는 느린마을 대형 양조장이 있다. 전국의 대형마트와 도매상에 공급하는 막걸리는 이곳에서 만든다. 지난 8일 찾아간 포천 양조장에서는 이날 하루 5680병의 느린마을 막걸리를 생산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매일 하루 분량의 막걸리만 생산한다. 이인수 공장장은 "작년에 비해 올해 생산량이 20~30% 늘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판매가 늘었다는 얘기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막걸리 만드는 방법부터 판이하다. 고두밥을 찌지 않고 쌀을 곱게 가루내서, 이 생쌀가루에 물과 누룩을 섞어 발효를 한다. 발효탱크에 1주일 두면 막걸리 맛이 제대로 든다. 일단 완성된 셈이다. 그러나, 느린마을 막걸리는 숙성탱크에서 2주를 더 보낸 뒤에야 병입한다. 온도 0도 이하의 저온 숙성탱크에서 2주간 숙성하는 것은 느린마을 막걸리만의 공정이다. 이인수 공장장은 "맥주 만들 때 후발효공법과 같은 공법을 적용시킨 것으로, 이렇게 하면 잡취가 제거되고, 과일향과 탄산미가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경기 포천의 느린마을 양조장 이인수 공장장이 발효 후 2주간 막걸리를 보관하는 숙성탱크 용도를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막걸리를 2주간 저온탱크에서 숙성하는 이유는?

    "김치하고 똑같다. 김치냉장고 역할을 하는 것이 저온숙성탱크다. 김치냉장고는 김치 보관에 최적인 겨울철 뒷마당 땅 밑 온도를 항상 유지하는 김치숙성고다. 그래서 요즘엔 김치가 항상 맛있다. 어느 음식점을 가도 김치 맛이 일정하고 맛있다.
    우리는 막걸리에 김치의 숙성기술을 도입했다. 김치냉장고가 김치 맛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듯이 저온숙성탱크가 숙성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막걸리 맛을 균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병입 후에도 미생물 왕성하게 활동...같은 술도 마시는 시기마다 맛에 차이 있다

    저온 숙성 외에 느린마을 막걸리의 또다른 특징은?

    "저온 숙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생물이다. 우리는 아버지 때부터 출발을 누룩개발에서 시작한 회사다. 누룩에 들어가 있는 미생물에 관한 한, 좋은 술 맛 내는 미생물에 관해서는 우리를 따라올 양조장은 없다고 자부한다. 미생물을 다루는 기술이 다른 데와 상대가 안된다. 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80년 이상 축적돼 있다.

    미생물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유산균도 있고, 효모도 있고 곰팡이도 있고. 미생물이 사는 누룩도 있고. 그런데, 미생물 균종도 좋지만, 그걸 갖고 좋은 술맛을 내도록 하는 발효기술이 더 중요하다. 누룩 안에 들어있는 미생물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미생물도 생물이다. 관리 안하면 제멋대로 군다. 자기가 먹던 것을 토해내고, 딴데로 가버리고, 이상한 놈 불러들여서 술을 식초로 만들어버리고. 천방지축인 미생물은 또 위생적으로도 잘 관리해야 한다. 이런 노하우가 우리의 최대 강점이다."

    느린마을 막걸리의 또다른 특징은 ‘사계절 다른 맛’을 낸다는 점이다. 이는 계절별로 만든 막걸리 맛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병입 후 언제 마시느냐, 다시 말해, 병입 후 숙성을 얼마간 시킨 뒤에 마시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배상면주가측은 병입 후 1~3일 지난 막걸리를 ‘봄 막걸리', 4~6일차는 ‘여름 막걸리’, 7~9일차는 ‘가을 막걸리', 10일차부터는 ‘겨울 막걸리'로 부르고, 언제 마시느냐에 따라 단맛, 신맛, 탄산미 등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막걸리 병 속의 미생물들이 활발하게 대사활동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맛이 줄어들고 대신 신맛과 탄산이 조금씩 늘어난다고 했다.

    병입한 지 얼마안 된 봄 막걸리는 ‘신선, 달콤, 가벼운 탄산미’가 특징이다. 신맛은 가장 약한 대신 단맛은 가장 강하다. 탄산도 다른 계절 술에 비해 적다. 술에 약한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다. 요구르트 향이 제대로 난다.
    봄 막걸리를 3일 정도 더 두면 여름 막걸리가 된다. ‘신선, 상큼, 풍부한 탄산미'가 여름 막걸리의 맛이다. 병 속의 미생물들이 당분을 집어먹음에 따라 단맛은 조금씩 줄어들고 대신 탄산이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기의 술이다.

    병입 7~9일차의 가을 막걸리는 탄산미가 절정에 이른다. 신맛도 강해져 다른 브랜드의 막걸리들과 가장 유사한 맛을 낸다. ‘잘 익은, 담백, 부드러운 신맛'이 가을 막걸리 맛이다. 봄, 여름보다 깊은 맛을 낸다.

    가장 오래 병입숙성한 겨울 막걸리는 ‘진정한 술꾼들의 막걸리'다. 단맛은 가장 약한 반면 신맛이 가장 강하다. 탄산은 가을보다 살짝 적다. 탄산이 공기 중으로 점차 날아가기 때문이다.

    며칠만 나둬도 막걸리 맛이 변하는 이유는 뭔가?

    "느린마을 막걸리는 생막걸리다. 완전멸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효 때 왕성한 활동을 하던 미생물들이 막걸리 병 안에 아직 많이 살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 막걸리 병 안에 있는 이 미생물들이 단맛(당분)을 먹는다. 그러면 술의 단맛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생막걸리가 시간이 지나면 단맛이 줄어드는 이유다.

    또 탄산은 어떨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처음에는 미생물이 왕성하게 대사작용을 할 때는 탄산이 늘어나지만, 점차 병 밖으로 새어나가 공기 중으로 날아간다. 탄산이 발생하는 경우는 두가지다. 알코올 발효를 할 때 탄산이 많이 생긴다. 두번째는 미생물이 번식할 때, 역시 탄산이 생긴다. 막걸리에 국한해 얘기하면 탄산은 탱크발효 때 한번 생기고, 병입 후 미생물 대사활동(후발효) 때 한번 더 생긴다. 느린마을막걸리로 치면 여름과 가을 사이에 탄산이 가장 많았다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어떤 때는 여름 막걸리에 탄산이 가장 많은 경우도 있고, 가을 막걸리에 가장 많은 때도 있다."

    베영호 배상면주가 대표가 양재동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숙성기간에 따른 네 가지(봄, 여름, 가을, 겨울) 맛의 느린마을 막걸리를 시음해보면서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신맛은 시간에 따라 점점 많아지나?

    "신맛은 더 복잡하다. 단맛이 줄어들면 같은 신맛도 더 시게 느껴진다. 신맛의 성분 자체가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늘어난다. 대개 병입을 막 끝낸 봄 막걸리는 단 맛이 굉장히 강하고, 신맛은 약하다. 탄산도 많지 않다. 과일 향이 강한게 봄 막걸리다. 과일 향 중에서 요구르트 같은 향이 진하다. 하지만 그게 100% 그렇다, 이렇게는 볼 수 없다. 그런 경향이 있다, 그 정도.

    여름이 되면 탄산이 확 올라온다. 단맛이 약간 줄어든다. 미생물이 당분을 먹으면서 신맛도 내고, 여러 향도 낸다. 이게 다 복잡하게 얽혀있다. 양조장에선 ‘이제 막걸리가 다 됐어'하고 막걸리를 병에 담았는데, 왠걸? 미생물은 사는 집이 발효탱크에서 술병으로 바뀌었을 뿐 하는 일은 똑같다. 알코올도 만들고 번식도 하고, 젖산이나 구연산도 만들어내고.

    이런 미생물 활동을 못하게 한 막걸리가 살균막걸리다. 병입 후 잠시 온도를 80도 이상 높여 미생물들을 다 죽여버리는 것이다. 우리도 ‘늘봄 막걸리’가 살균 막걸리다. 늘 봄 맛이다. 살균을 하면 유통기한도 크게 늘어지만, 맛도 변하지 않게 된다. 술 맛이 봄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다."

    결국 같은 술이 처음에는 봄이었다가 며칠 지나면 여름, 가을 막걸리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마트에서는 대부분 봄 상태(병입 1~3일차)에서 판다. 소비자들이 사서 곧바로 마시면 그게 봄 막걸리이고, 냉장고에 며칠 뒀다가 마시면 여름이 된다. 그래서 매니아들은 느린마을막걸리를 한번에 대여섯병 사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막걸리를 차례로 즐긴다."

    ◇개성있는 소비 트렌드에 가장 맞는 술이 변화무쌍한 막걸리

    같은 술을 사서, 마실 때마다 다른 맛을 즐긴다는 게 새롭다.

    "요즘 소비자들은 참여하는 걸 좋아한다. 미래에는 모두들 ‘나만의 자동차'를 탈 것이다. 차 몸체는 내가 디자인해서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식으로 나만의 자동차를 선호할 것이다. 이게 21세기, 4차산업시대 트렌드다. 술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막걸리도 한번에 수만병씩 생산하는 걸, 맛있다고 마시겠는가. 똑같은 맛의 맥주, 이젠 흥미없다. 수제맥주가 뜨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소비자들의 ‘개성 있는 소비' 트렌드를 맞춰줄 수 있는 서비스를 계속 개발해야 한다. 자동차를 다시 생각해보자. 소비자들이 직접 자동차 엔진을 만들어야 한다면 나만의 자동차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인터넷에서 여러 옵션을 클릭만 하면 엔진, 차체, 배기량, 소음 정도 등을 고를 수 있다면 나만의 자동차는 가능할 것이다. 이게 4차산업혁명시대의 기술발전이다. 4차산업시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이럴 것이다. ‘제조 과정은 잘 모르겠고, 적당한 가격의 나만의 제품, 개성있는 상품을 만들어주면 사겠다'는 식이다.

    술이라고 안 그러겠나? 맥주, 소주 그 어떤 술과 비교해도 막걸리는 4차산업혁명시대와 딱 맞는 술이다. 막걸리는 21세기의 대표적 술이 될 것이라고 본다. 21세기 개성있는 소비 트렌드와 맞는 술로, 막걸리만한 게 없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감성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술은 막걸리뿐이다. 느린마을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단맛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봄막걸리를 마시면 되고, 단맛은 싫고 대신 탄산이 강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서 그냥 며칠 두었다가 여름이나 가을, 겨울 막걸리를 마시면 된다."

    막걸리 병 속의 미생물도 결국 우리가 마시는 셈인가?

    "생막걸리는 병 속의 미생물이 살아 활동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술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병입 후 숙성기간에 따라 단맛은 점차 줄어들고, 탄산은 점점 많아졌다가 점차 줄어들고, 신맛 역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단맛이 빠지는 것과 반비례해 점차 늘어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세계 어딜 가더라도 막걸리 같은 발효음식문화가 있다. 치즈같은 유제품이 대표적이다. 스페인의 숙성햄 하몽도 곰팡이를 활용한 음식이다. 그러나 미생물 자체를 먹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우리는 하몽처럼 오랜 발효가 아니라 짧은 기간 발효한 물 자체(막걸리)를 먹는다. 하몽이나 치즈 같은 경우는 나중에 먹을 때 미생물들(곰팡이)을 다 제거한다. 미생물이 만들어낸 부산물을 먹는 것이지, 미생물 자체를 먹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 막걸리는 미생물을 같이 먹는 드문 사례다. 이같은 막걸리 문화는 일본, 중국에도 없는 문화다. 중국의 대표적 발효주인 황주 같은 경우는 오랜 기간 발효를 하기 때문에 미생물은 이미 다 죽은 상태다. 처음에는 미생물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생물학적 발효를 하다가, 나중에는 미생물이 다 죽은 상태에서 화학적, 물리적 숙성과정을 거친다. 중국의 황주를 마시는 것은 미생물을 제외하고 먹는다고 봐야한다.

    막걸리는 발효과정이 와인보다 복잡하다. 밥은 원래 달지 않다. 그런데 자꾸 씹으면 달아진다. 그게 효소의 역할이다. 효소가 나와서 전분을 먹고 당분으로 바꿔놓는다. 그 다음에는 젖산균이든, 효모든, 초산균이든 이런 미생물들이 달려들어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토해낸다. 그 발효 과정이 끝나지 않는 것을 먹는 것이 막걸리다. 청국장도 마찬가지다. 생물이다. 미생물이 안 죽어있다. 전세계 술시장을 보더라도 미생물을 액체성분과 함께 마시는 경우가 막걸리 말고 거의 없다.

    소비자들이 막걸리를 사는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미생물이 계속 활동해 막걸리 맛을 변화시킨다. 미생물이 막걸리 병 속에 살아 있으니까 대사활동을 한다, 그러니 맛이 바뀌는 것이다."

    경기 포천의 전통술 문화갤러리인 산사원 경내 우곡루. 1층에 카페가 있다. 산사원은 일년에 방문객이 5만명이 넘을 정도로 술체험 명소로 자리잡았다. /배상면주가 제공
    느린마을 막걸리 판매가 폭발적이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막걸리 사는데는 가격 저지선이 있다고 본다. 1000~1500원 선이다. 느린마을 막걸리(2500원)는 그 저지선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것이라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임계치에 도달하면 느린마을 막걸리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 임계치까지는 굉장히 시간이 걸린다고 본다. 아직은 거기에 도달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20~30대 젊은층이 느린마을 막걸리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대 젊은층은 왜 느린마을 막걸리를 좋아할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소비하는 계층이다. 술집 테이블에서도 각자 좋아하는 각기 다른 술을 먹는 식이다. 한마디로 개성 있는 소비를 한다. 아버지가 장수막걸리 마신다고 따라 마시는 게 아니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막걸리 치고는 비싸다. 젊은이들이 막걸리 자체를 즐기지 않는데, 게다가 비싼 막걸리를 찾아서 먹는 젊은이들은 정말 개성있는 소비를 하는 소비자다. 느린마을 처음 나왔을 때 20세 소비자가 이제 30세가 됐다. 이제 이들이 술 소비의 주축이 되면 느린마을 막걸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술들이 각광받을 것이다. 이들 뉴 제너레이션을 겨냥한 새로운 개념, 새로운 형태, 새로운 서비스의 술들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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