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는 세계열강의 정치가 각축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정치, 한국의 국가리더십은 이런 공간의 동적인 권력관계를 냉정히 통찰해 생존과 번영의 길을 찾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책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그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국제 정세 분석가인 피터 자이한이 지난 10일 조선비즈 주최로 열린 ‘2019 글로벌경제·투자포럼’에서 김상협 카이스트 지속발전연구센터장(우리들의 미래 이사장)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계 열강에 둘러싸인 한국이야말로 지정학적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김 센터장과 피터 자이한의 일문일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래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을 아예 버린 듯하다. 향후 ‘트럼프가 없는 미국(America without Trump)’이 온다면 미국 상황이 달라질까.
"불행하게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대선후보 중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국내이슈에 매몰돼 있다. 미국은 여러 요인으로 ‘미국 없는 세계 (A World without US)’로 가고 있으며 그 추세는 기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쿠르드족에 대한 배신에서 보듯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관계도 내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현 정부 들어 미국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인상이다. 반면 중국과는 가까워지려는 모습인데.
"그건 정말 현명하지 못하고 위험하다. 미국과의 관계가 그렇다고 중국을 선택하는 건 한국의 국가이익 관점에서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가에 대해서도 미국의 실리를 우선적으로 챙길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이 중국으로 편향하는 이유가 된다면 한국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일본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일본과 잘 지내면 미국과의 거리도 좁혀질 수 있다.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선거를 염두에 두면 반일감정을 활용하는게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반한감정을 조장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한다면 더 큰 이익을 잃게 될 것이다. 냉정히 보면 동북아의 지정학을 감안할 때 일본보다는 한국이 더 어려운 처지다."
-동북아 지정학이라는 건 과연 뭔가.
"지정학은 간단히 말해 공간과 정치의 관계를 통찰하는 것이다. 동북아는 세계열강의 정치가 각축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정치, 한국의 국가리더십은 이런 공간의 동적인 권력관계를 냉정히 통찰해 생존과 번영의 길을 찾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책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그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 힘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한국이 이를 경시하면 자칫 고립될 위험도 있다. 지정학은 이념이나 소망이 아니라 현실세계(real-world)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셰일 파워(Shale Power)’를 내세워 에너지 분야의 지배적 우위 (energy preeminence)를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국의 셰일 가스와 오일에 의존해도 좋을 것인가.
"미국의 셰일 가스와 오일은 서부가 아니라 동부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가려면 인프라를 비롯해 여러 채산성 문제가 생길 것이다. 미국의 에너지 자원을 너무 믿어서는 곤란하다. 그것보다는 일본과 손잡고 원유와 가스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안정적인 에너지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에너지를 사실상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안정적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동안 원자력을 키워왔는데 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탈원전 역시 현명하지 못한 길이다. 각자도생의 세계(The world no one backs you up)에서 자신의 힘과 기술로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선이다. 그런점에서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원전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버린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원자력은 더구나 기후변화시대에 저탄소 에너지로 손꼽히고 있지 않은가."
-기후변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정 체제로 복귀할 가능성은 없는가. 한국이 유치한 국제기구 녹색기후기금(GCF)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미국이 공여를 중단해 애로를 겪고 있다.
"미국은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지만 21세기 신기후체제의 형성에 대해서는 일정한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공공재보다는 미국의 입장을 최우선시 하고 있다. GCF에 대해서는 유감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 모두 UN기구에 돈을 내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거라고 보나.
"트럼프다."(피터 자이한은 자신이 무당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