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 중단 라임운용, 현금화 힘든 '메자닌'에 돈 쏟아부었다

입력 2019.10.11 03:11

[투자자 최대 2000명, 6000억원 묶여… 국내 1위 헤지펀드에 무슨 일이?]

- 사상 첫 환매중단 사태, 금융계 긴장
중위험 중수익 추구하던 운용사… 작년 코스피 17% 급락에도 수익

- 투자한 기업들 잇따라 부실 발생
금감원 검사에 고객들 환매 요구, 자금 유출 속도 빨라지자 감당못해

"헤지펀드가 환매를 중단하면 다른 펀드에도 불똥이 튀는 것 아닌가요?"

국내 사모(私募) 헤지펀드 업계 1위인 라임자산운용이 일부 펀드에 대해 환매를 중단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당 펀드 가입자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까지 불안해하고 있다. 국내에서 헤지펀드 환매 중단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금융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투자자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라임운용 환매 중단은 일반 투자자들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환매 중단이 펀드 업계 전체가 아니라 라임운용 한 곳에서만 발생한 개별 회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환매가 중단된 펀드 규모가 6200억원으로 600조원이 넘는 국내 펀드 규모의 0.1% 수준에 불과해서 전체 금융시장의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금융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라임운용은 공개 모집이 아닌 사모 방식으로 펀드를 판매했기 때문에 정확한 투자자 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최대 2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1인당 평균 3억원 이상씩 투자한 셈이다.

라임운용은 지난해 코스피 지수가 17% 급락하는 와중에도 플러스 수익률을 거두면서 '큰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운용 자산이 2018년 1월 1조5000억원에서 10개월 만인 11월 3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지난해부터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승승장구하던 라임운용이 '환매 중단'이라는 비상조치를 선언하게 된 것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유동성이 낮은 사모 채권이나 전환사채(CB)에 과도하게 투자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메자닌으로 뜬 운용사, 메자닌에 발목 잡혀

라임운용은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을 지닌 '메자닌' 투자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 새로 발행되는 주식을 먼저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이 메자닌에 포함된다. 채권처럼 정기적으로 이자를 받다가 발행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그 차익까지 얻을 수 있고, 주가가 오르지 않더라도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중(中)위험 중수익' 자산으로 꼽힌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모펀드 규제 강화 시사 - 취임 한 달을 맞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금융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금융위원장이 되기 전 밖에서 봤을 때 사모펀드 시장을 자유롭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파생결합증권(DLS) 불완전 판매, 정치권 사모펀드(조국 펀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등 악재가 반복되고 있어 개인 투자자 보호 입장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해외 금리 연계 DLS나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 은 위원장은 “당국자로서 조심스러운 표현이긴 한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며 금융회사뿐 아니라 투자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모펀드 규제 강화 시사 - 취임 한 달을 맞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금융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금융위원장이 되기 전 밖에서 봤을 때 사모펀드 시장을 자유롭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파생결합증권(DLS) 불완전 판매, 정치권 사모펀드(조국 펀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등 악재가 반복되고 있어 개인 투자자 보호 입장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해외 금리 연계 DLS나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 은 위원장은 “당국자로서 조심스러운 표현이긴 한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며 금융회사뿐 아니라 투자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 7월 한 언론에서 라임운용이 '펀드 간 수익률을 돌려막기 한다' '좀비 기업 메자닌에 과도하게 투자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문제가 촉발됐다. 실제로 라임운용이 메자닌 투자를 집행했던 코스닥 기업 4~5곳에서 부실이 발생했다. 라임운용 측은 "100여 개 메자닌에 분산 투자했기 때문에 4~5개 기업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해도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수익률 돌려막기를 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후 금융감독원에서 검사에 착수하고 놀란 고객들이 환매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라임운용은 갖고 있던 유동성(현금)을 활용해 환매 요청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이달 들어 일부 펀드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원금 회수 속도보다 자금 유출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임운용은 지난 1일에도 274억원 규모의 펀드 상환금 지급을 일시적으로 연기했다.

◇"고수익 챙기려 유동성 떨어지는 자산에 집중한 탓"

이번에 문제가 된 펀드는 주로 사모 채권을 편입한 '플루토FI D-1호'와 코스닥 기업 메자닌에 주로 투자한 '테티스 2호' 펀드다. 업계에서는 "고수익을 얻기 위해 쉽게 현금화가 안 되는 자산에 집중 투자한 것이 환매 중단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라임자산운용펀드 전체 설정액 그래프

사모 채권은 공모 채권과 달리 장내에서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채권 발행 회사와 펀드 운용사가 직접 인수 계약을 맺는다. 일반 채권보다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만기가 되기 전 다른 투자자에게 팔아서 원금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코스닥 기업 CB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테티스 펀드는 올해 코스닥 지수가 하락한 것이 패인(敗因)으로 지적된다. 발행 기업의 주가가 정해진 가격을 넘어서야 CB를 주식으로 바꿔 차익을 얻을 수 있는데 주가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테티스가 투자한 CB 중 하나인 게임회사 썸에이지는 지난해 5000원 넘던 주가가 500원대로 떨어졌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당장 현금으로 바꾸기 어려운 투자처에 운용 자산을 몰아넣은 탓에, 환매 요구가 갑자기 급증하자 환매 중단 사태까지 낳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모 채권과 메자닌 모두 발행 기업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지 않는 이상 원금 손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코스닥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 펀드 환매까지 오래 걸릴 수 있다. 라임운용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은행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문제 펀드 외에 다른 라임펀드에 투자한 고객들까지 당장 환매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규태 라임운용 마케팅본부장은 "자산을 서둘러 팔면 헐값에 매각하게 돼 고객 수익률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며 "최대한 신속하게 원금을 회수해 펀드 상환에 나서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메자닌(Mezzanine)

원래 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라운지 공간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채권과 주식의 ‘중간’ 위험 단계에 있는 금융 상품이라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일정한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전환사채(CB), 새로 발행되는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이 메자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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