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스타트업] “AR 콘텐츠가 미래… 도이치텔레콤도 깜짝 놀랐죠”

조선비즈
  • 박원익 기자
    입력 2019.07.30 06:00

    정진욱 시어스랩 대표 인터뷰… AR 기술·콘텐츠 제공
    ‘롤리캠’ 성공으로 YC 투자받아… 올 매출 70억 전망
    디즈니 캐릭터 IP 확보… "AR 콘텐츠 마켓 만들 것"

    지난 7월 3일(현지 시각) 베를린에서 열린 ‘도이치텔레콤 5G(5세대) 프레스 콘퍼런스 2019’ 현장. 무대 한쪽에 한국 인기 아이돌 ‘청하’의 3D 실사 이미지가 등장하자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AR(증강현실) 기술로 실제 청하가 등장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흘러나오는 청하의 노래 ‘벌써 12시’에 맞춰 미하엘 하그슈필(Michael Hagsphil) 도이치텔레콤 소비자 비즈니스 총괄 부사장이 가상의 청하와 춤을 췄고, 이 장면은 독일과 유럽 주요 언론을 통해 중계됐다.

    시연을 진행한 건 한국 스타트업 시어스랩(Seerslab)이었다. 유럽 최대 통신사가 5G 핵심 콘텐츠로 한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기술을 내세운 셈이다. 시어스랩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물이나 공간을 비추면 AR 이미지가 떠오르는 기술과 콘텐츠를 개발하는 업체다. LG유플러스(032640)의 ‘U+AR’, KT(030200)의 영상통화 앱 ‘나를(narle)’, SK텔레콤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옥수수' 등에 시어스랩의 솔루션이 적용됐다. 클라우디아 네맛 도이치텔레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5G 시대엔 시어스랩이 보여준 것과 같은 AR 콘텐츠가 각광받을 것으로 본다"며 "AR 요가 강사를 내 방에 불러와 함께 요가 연습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고 했다.

    정진욱 시어스랩 대표. /박원익 기자
    정진욱 시어스랩 대표는 올해 6월 말 팀 회트게스 도이치텔레콤 회장과 처음 만났다. 회장의 방한에 맞춰 도이치텔레콤이 요청한 자리였다.

    "AR 시연을 보더니, 임원진 모두 깜짝 놀라더라고요. ‘일주일 뒤 독일에서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항공·숙박 지원할 테니 무조건 와 달라’고 하는데 얼떨떨했죠."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난 정 대표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활짝 웃었다. 삼성전자, SK텔레콤을 거쳐 2014년 시어스랩을 창업, 한차례 부침을 겪었으나 최근 5G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시어스랩은 세계 최초 실시간 얼굴인식 카메라 앱 ‘롤리캠(lollicam)’ 개발사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셀카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켜면 실시간으로 얼굴이 보정되고 여기에 동물 모양 등 귀여운 스티커까지 얹을 수 있는 앱이었다. 당시 10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16년 2월엔 출시 9개월 만에 4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투자 유치 운도 따랐다. 2016년 6월엔 미국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투자·육성 업체)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YC)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YC의 투자는 미국에서 성공의 보증수표로 불린다.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드롭박스, 트위치 등 수 많은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이 YC 출신이다. YC 네트워크를 통해 만난 트위터 창업자가 인수 제안을 하기도 했다. 롤리캠은 2017년 3월 1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고, 시어스랩은 이를 바탕으로 총 200만달러(약 23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AR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가수 청하와 춤추는 장면을 연출한 U+AR 광고 영상. /LG유플러스 유튜브 캡처
    그러나 곧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후발주자였던 네이버 스노우가 빠르게 성장하며 카메라 앱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스노우는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투자하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 시장을 장악했고, 결국 전세가 역전됐다. 정 대표로선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암흑기가 찾아왔죠. 고민의 골이 깊었습니다. 스노우가 수백억원을 마케팅비로 사용할 때였는데, 작은 스타트업이 따라가기 버거웠죠."

    반전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가 에브리싱이라는 스마트폰 노래방 영상 앱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어스랩의 AR 스티커를 사용하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다. 일반 소비자를 타깃으로 카메라 앱을 만들어 제공하던 B2C 회사가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B2B 회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AR 스티커를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Software Development Kit) 형태로 에스엠에 공급하면서 AR 기술·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변모하게 된 거죠. 매출도 많이 늘었습니다. 2018년 13억원 정도였는데, 올해 상반기 30억원을 기록했고, 하반기에도 30억~4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어스랩은 현재 국내 주요 통신사 외에도 삼성전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기업과 AR 파트너십을 체결,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자체 AR 코어 엔진인 ‘AR 기어(GEAR)’를 통해 AR 기술을 SDK 형태로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AR 콘텐츠의 지식재산권(IP)도 보유하고 있다.

    정 대표는 "한류 아이돌부터 핑크퐁, 디즈니 인기 캐릭터까지 120여 종의 글로벌 IP를 확보하고 있다"며 "다양한 AR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이용자의 표정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거나 사진으로 3D 아바타를 제작하는 기술도 갖췄다.

    시어스랩은 아이돌 가수, 핑크퐁, 디즈니 인기 캐릭터 등 120여 종의 글로벌 IP를 확보하고 있다. 이 IP를 활용해 다양한 AR 스티커 제작이 가능하다. /시어스랩 제공
    정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AR 콘텐츠 플랫폼(market place)을 구축하는 것이다. 하반기부터 AR 기어를 무료로 배포하고 AR 콘텐츠 생태계 확장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테스트를 거쳐 오는 10월쯤 콘텐츠 마켓을 선보이고 콘텐츠 거래에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정 대표는 "산업 초창기엔 기술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 시장을 차지하는 건 콘텐츠까지 가진 회사"라며 "글로벌 VR 스토어인 ‘스팀(Steam)’처럼 되는 것이 목표다. 5G 시장 성장을 지켜보며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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