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난해 결제원→감정원으로 청약업무 이관 결정
10월부터 새 시스템 도입 계획인데 구축작업 계속 지연

아파트 청약 업무 이관을 놓고 금융결제원과 한국감정원이 갈등을 빚으면서 10월부터 아파트 청약 시스템이 마비될 위기에 놓였다. 한국감정원이 청약 업무를 하려면 금융정보를 취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관련 법안도 국회 파행으로 빠른 처리가 불투명하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결제원 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오는 10월부터 청약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10월 이후 금융결제원이 청약업무를 이행할 권한도 시스템도, 인원도 없다. (업무 이관 예정 시점인 9월 말이 지나면) 청약업무 이관 관련 모든 책임은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이 져야한다"고 했다. 노조는 청약 업무 이관이 지연될 경우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했다.

금융결제원은 2000년부터 청약업무를 담당했으나, 정부는 청약 업무를 한국감정원으로 이관하기로 지난해 결정했다. 금융결제원과 감정원은 현재 업무 이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10월 새 청약시스템 가동에 앞서 8∼9월 두 달간 실전 테스트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청약시스템 이관 및 시스템 구축 작업이 지연되면서 10월 새 청약시스템 가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감정원이 10월 새 청약 서비스를 시작하지 못하면 금융결제원이 기존 시스템으로 청약 업무를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결제원 노조가 이를 거부하면서 10월부터 청약시스템이 마비될 위기다.

(좌) 서울 강남구 금융결제원 본사와 대구 한국감정원 본사

업무 이관 지연은 양 기관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청약업무 이관이 결정되고 감정원은 금융결제원에 청약 시스템(아파트 투유) 전체를 이관해달라고 요구했다. 금융결제원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감정원은 61억원의 예산을 들여 아파트 투유와 똑같은 시스템을 새로 만들었다.

국토교통부와 금융결제원, 감정원은 지난해부터 청약업무이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업무 이관 작업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최근 금융결제원과 감정원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업무 이관이 지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지난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양 기관이 큰 이견없이 이관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으나 며칠 후 금융결제원 노조는 "10월부터 청약업무 이관에 협조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관련 법 개정 지연도 청약업무 이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청약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데 실명제법상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있어 업무 진행은 사실상 멈춰있다. 금융기관이 아닌 한국감정원에 청약통장과 관련한 금융정보를 넘길 경우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청약업무를 주관할 감정원은 청약자들의 통장 순위와 청약통장 개설 때 은행에 중복가입 여부를 확인해줘야 한다. 국토부는 당초 청약 1, 2순위 확인과 같은 청약 관련 금융정보는 청약자의 동의를 얻어 은행권으로부터 제공받는 방안을 검토했다.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을 거쳐 은행권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받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가 이를 거부하면서 국토부는 결국 주택법 개정을 통해 감정원에 정보와 제공 권한을 모두 이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토부 권한을 위탁받은 감정원이 금융실명제법 위반 없이 청약 순위 확인이나 청약통장 중복가입 여부 등을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감정원이 청약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국회 공전으로 법안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토부는 8월 중순까지 개정안이 처리되면 예정대로 10월 새 청약 시스템을 개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융 정보를 관리했던 경험이 없는 감정원이 보안에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감정원이 은행의 고객 금융 정보를 받아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보안 시스템을 제대로 갖췄는지 의문"이라며 "2500만명에 달하는 청약통장 정보를 관리하려면 보안 시스템과 관련 인력을 갖추고 충분한 테스트 기간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감정원 관계자는 "새 청약시스템 시작에 앞서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테스트도 계속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