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대응, 외교로 선회?…전문가 "강대강, 실익 없어"

입력 2019.07.08 18:37

일본측 수출규제에 ‘국제공조’ 등 외교해법 우선 하기로
‘수출 맞규제’ 등 강경책 우선순위에서 밀린 듯
"18일 일본측 답변 시한, 韓 정부 조치가 주요 관건"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에 대한 일본의 무역규제 대응방안을 놓고 정부가 고심 중이다. 일본측 규제로 한국 기업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맞대응 규제가 불가피하지만, 기본적으로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국제공조 등 외교적 해법을 통한 수출 규제 철회를 이끌어내겠다는 방향으로 원칙을 정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등의 발단이 됐던 강제징용 배상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3국 중재안 수용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어 강대강(强對强) 전면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상 전문가들은 강대강 대치로 확전되면 한국 경제에는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다는 관점으로 정부가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섣부른 강경론보다는 사태를 최대한 인내하며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이라는 조언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김현종 2차장. /연합뉴스 제공
◇文 대통령 "대응과 맞대응 악순환, 바람직하지 않아"

정부가 일본 측 수출 규제 대응에 복잡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은 8일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지만,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한·일)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언은 일본 정부가 대(對) 한국 수출 우대 조치 취소를 공식한 것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첫 공식 입장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은)일본측에 맞대응하는 악순환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며, 한일 양국 간 우호관계가 훼손되지 않기 바라는 강력한 촉구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대화를 통한 일본측의 수출 규제 철회를 사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정부측 구상을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오전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배치되는 것으로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철회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국제공조 논의를 통한 사태 해결 방안을 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공조를 통한 일본측 수출 규제 철회 유도’라는 해법이 나온 것은 양자 협의 등 외교적 해법을 우선 추진하기로 한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제공조방안 등 여러 가지를 검토 중이지만, (대응 방안을) 상대방이 알게 되면 준비하게 돼 있으니 말을 아끼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과의 양자 협의를 두고는 "여러 가지 논의 중에 있으며, 정부는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일각에서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을 수출 우대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한 지난 1일 당시 감지됐던 ‘수출 규제 맞대응 등도 불사할 수 있다’는 정부 측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4일까지만 하더라도 ‘수출 (맞)규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홍남기 부총리 라디오 방송)는 기류가 강했지만, 주말 이후 일본측과의 양자협의, 국제공조 등을 통해 규제 철회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방향으로 논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부산 신선대 수출항 모습 /조선DB.
◇전문가 "강대강 대치로 한국 얻을 것 없어"

외교 해법을 통한 문제 해결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 달리 일본은 추가 규제를 꺼내들 수 있다는 분위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최종 답변 시한인 18일까지 우리 정부 응답이 없다면 추가 보복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강대강 대응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본 정부가 답변 시한으로 제시한 18일까지 최대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는 "강대강 구조로 가는 것은 단기적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좋지 않은 선택"이라면서 "설사 맞대응을 해야 할 상황으로 가더라도 일본측의 추가적인 수출 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점검하면서 차분히 판단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교수도 "강대강 대응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리측 조치로)일본 정부가 위협을 느낄만한 구체적인 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측이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 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사태 해결을 위한 협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강대강 대응’을 강조하는 여론전을 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이 사안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도 "이번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기업들의 판단"이라면서 "확전 상태에 이르기 전에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로 타격을 입은 것 만큼 우리가 수출 규제 등 경제보복으로 일본에 타격을 주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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