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잃은 경차, 시동 꺼진다

조선일보
  • 윤형준 기자
    입력 2019.06.28 03:08

    4년간 세계 판매량 50만대 감소… PSA그룹 오펠, 경차 판매 중단
    푸조·폴크스바겐도 단종 고민중

    PSA그룹 산하 브랜드인 오펠은 최근 그룹 콘퍼런스콜(실적과 향후 전망을 설명)을 통해 칼·아담 등 자사 경차 모델의 판매를 중단하고, 앞으로 단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같은 그룹 산하 브랜드인 푸조·시트로앵도 각각 108과 C1 등 경차 모델의 존속 여부를 고민 중인 상황이다. 독일 폴크스바겐도 가장 작은 업(Up)의 가솔린 모델 생산 중단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스코다·세아트 모델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2030' 세대의 엔트리카(생애 첫차)이자 서민의 발 역할을 하던 경차(輕車)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 한국에서 안 팔린 지는 벌써 오랜 얘기지만, 감소 추세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경차의 본고장'으로 불렸던 유럽·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자동차 매체 오토모티브 뉴스는 최근 '유럽인들이 경차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옛말'이라고 전했다.

    ◇전세계 동시다발 쪼그라드는 경차 시장

    글로벌 경차 판매량은 꾸준히 감소 추세다. 2014년 전 세계에서 586만대 팔렸던 경차는 지난해엔 532만대만 팔렸다. 50만대 이상 줄어든 것이다.

    멸종 위기종 '경차'… 세계 경차 판매 현황
    미국·중국은 물론 특히 경차의 최대 시장인 유럽과 일본에서도 감소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선 2015년 125만대로 정점을 찍었지만, 매년 1만대씩 줄어 지난해엔 122만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업계에선 '유럽에서 뚜렷한 경제 위기도 없이 꾸준히 경차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 최대 경차 시장 일본은 2014년 177만대에서 지난해 149만대로 시장이 확 쪼그라들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차를 소유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에선 경차 판매량이 5년 사이 18만대에서 12만대선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10만대를 채우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그 자리를 소형 SUV가 메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차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동남아 시장에서조차 경제성장에 따라 SUV와 밴, 픽업트럭 판매량이 늘면서 경차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경제성 잃은 경차…소비자 외면

    소비자들이 경차를 기피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국내 경차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경차의 핵심은 경제성인데, 경차 가격에 돈을 조금만 더 보태면 최신 기술과 편의 장비로 무장한 소형 SUV나 준중형급 세단 등 대체품을 구입할 수 있다"며 "더 이상 소비자들이 경차를 살 요인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선 올해 취득·등록세 면제 혜택까지 폐지돼 수요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 팔리다 보니 제조사도 경차를 외면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수익성이 높은 SUV·고급 세단과 달리 경차는 가격이 낮아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판매량이 줄어들다 보니 업체들이 신차 개발에 투자를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판매가 더 부진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4~5년 주기로 완전 변경에 나서는 세단·SUV와는 달리 경차는 8~9년 주기를 맞추기도 쉽지 않다.

    이미 제조사들은 돈 안 되는 경차의 비용 절감에 나섰다. 예컨대 다임러는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2인승 경차인 '스마트' 모델 생산 설비를 중국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포드는 인도에서 생산하던 경차 Ka+ 모델의 유럽 수입을 중단했다.

    ◇강화된 규제가 앞길 가로막아

    점점 강화되는 안전·환경 규제는 경차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컴퓨터 기반의 편의·안전장치는 경차에 넣든 고급 차에 넣든 비슷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유럽 환경 규제로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은 내년까지 1㎞당 평균 120g에서 95g까지 줄여야 하고, 2030년까지 60g 이하로 낮춰야 한다. 업체별 총량제이므로 제조사는 일단 전기차·수소차 등을 한 대라도 더 팔아서 평균을 낮춰야 한다. 경차가 판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경차만으로 조건에 맞추려면 비싸고 무거운 공기 정화 장치를 넣어야 하는데, 경차에 탑재하면 차가 무거워져 효율이 낮아지고 가격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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