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번엔 중국 수퍼컴퓨터까지 봉쇄

조선일보
  • 최인준 기자
    입력 2019.06.24 03:08

    4차 산업혁명 핵심 인프라… 수곤 등 제조업체 4곳 거래제한 조치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제재로 촉발된 미·중 '테크 전쟁'이 수퍼컴퓨터 분야로 확산했다. 수퍼컴퓨터는 일반 컴퓨터에 비해 수만 배 빠른 고성능 컴퓨터로, 최근 들어 인공지능(AI)·신약 개발과 우주항공산업 등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1일(현지 시각) 중국의 수퍼컴퓨터 업체 수곤하이곤, 청두 하이광집적회로, 청두 하이광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테크놀로지 등 4곳의 기업과 정부 연구소인 우시 지앙난 컴퓨터기술연구소에 대해 국가 안보를 이유로 거래 제한 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거래 제한 명단에 오른 중국 기업과 기관은 미국 기업의 제품을 수입하려면 미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이 기업들이 수퍼컴퓨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미국 기업으로부터 구입할 수 없도록 막아선 것이다.

    중국 광저우의 국가수퍼컴퓨팅센터에서 연구원이 이 센터의 수퍼컴퓨터 '톈허2호'를 점검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의 국가수퍼컴퓨팅센터에서 연구원이 이 센터의 수퍼컴퓨터 '톈허2호'를 점검하고 있다. /광저우 국가수퍼컴퓨팅센터
    전문가들은 미국이 화웨이에 미국 반도체와 스마트폰 운영체제(OS) 공급을 끊은 것이 5G(5세대 이동통신) 주도권 장악을 위한 조치였다면, 수퍼컴퓨터 제재는 미래 산업 패권 선점 싸움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과 AI·자율주행차·우주탐사 등에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퍼컴 둘러싼 미·중 기술 경쟁

    미국이 비(非)관세 분야인 수퍼컴퓨터까지 중국 기업의 손발을 묶은 것은 이 기술이 자칫 무기 개발 등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돼 미국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이번에 거래 제한 명단에 오른 기업과 기관은 미국의 국가 안보나 외교적 이익에 반하는 활동에 참여하거나 관여할 중대한 위험이 있다"며 "대표적으로 우시 지앙난 컴퓨터기술연구소는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의 '제56 리서치 연구소'가 소유하고 있고, 중국군 현대화를 지원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중국 국방기술대학이 지난 2015년 미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 '후난 궈팡 케이 유니버시티'라는 이름으로 미국 기업과 거래를 계속해왔다고 지적했다. '후난 궈팡 케이 유니버시티'도 이번 거래 제한 대상에 올랐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는 수많은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분석해 해결책을 마련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이다. 따라서 수퍼컴퓨터의 성능이 기술 개발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중국은 최근 4~5년 사이 수퍼컴퓨터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7일 국제수퍼컴퓨터학회(ISC)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상위 수퍼컴퓨터 500대 중 219대를 보유해 '컴퓨터 종주국' 미국(116대)을 제치고 1위를 지켰다. 성능 면에서는 미국이 강세다. 1·2위 수퍼컴퓨터는 미국 소유다. 수퍼컴퓨터 성능 점유율에서는 미국이 전체의 38.5%를 차지해 중국(29.9%)을 앞섰다.

    "미국 IT 기업도 피해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으로선 당장 핵심 부품 공급이 끊기면 수퍼컴 개발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현재 수퍼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운영 체제 등 설비와 기술 상당수를 인텔·마이크론·IBM 등 미국 테크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의 손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퍼컴퓨터에 들어가는 부품과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고가(高價)이기 때문에 최근 이 시장에서 '큰손'으로 부상한 중국으로 수출을 못 하면 미국 기업의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 조치 이후 미국 증시에서 반도체 관련 미국 기업의 주가도 하락했다. 중국 수곤과 합작관계인 미국 반도체 기업 AMD는 3% 넘게 하락했고, 이 회사들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엔비디아 주가도 1.5% 떨어졌다.

    IT업계 관계자는 "중국 수곤은 지난해 11월 자체 기술로 수퍼컴 전용 CPU 자체 개발에 성공해 조금씩 미국 기술 의존도를 낮춰가고 있다"며 "미국의 이번 제재는 반대로 중국의 수퍼컴 기술 개발 의욕을 더 높이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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