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대출 차주 정보 깜깜… 부실 더 키운다

조선일보
  • 이경은 기자
    입력 2019.06.18 03:07

    돌려막기·횡령 등 잇단 사고… 사기혐의로 업체 대표 구속되고 운영자가 자금 빼돌린뒤 사망도
    일본은 차주 정보 상세히 공개, 개인 투자자 손실 위험 낮춰

    "피투피(P2P·개인 대 개인) 따위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서울에 사는 50대 주부 김모씨는 반년째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500만원 때문에 속만 태우고 있다. 김씨는 작년 말 "P2P 재테크를 하면 기간이 짧아도 이자가 쏠쏠하다"는 지인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P2P란 돈이 필요한 사람이 대출액이나 사용처 등을 온라인 중개업체를 통해 알린 뒤 불특정 다수에게 돈을 빌리는 금융 서비스다.

    김씨는 아들 대학 학자금으로 쓰려고 모아뒀던 500만원을 2개월, 연 20%짜리 P2P 상품에 넣었다. 강원도의 다가구주택 단지에 빌려준 뒤 2개월 후에 준공되면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돌려준다는 상품이었다. 그는 "분양이 잘 되지 않았다며 차주가 '배 째라'고 하고 업체도 나 몰라라 하는 바람에 반년째 돈이 묶였다"면서 "금감원에 민원까지 제기했지만 P2P는 금감원의 감독·검사 대상이 아니라는 냉정한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김씨가 이용한 P2P 업체의 연체율은 현재 70%에 육박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백형선

    P2P 금융시장이 단기간 급성장한 가운데 일부 업체의 부실·과장 영업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크게 늘고 있다. 17일 한국P2P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협회 소속 P2P 업체 44곳의 평균 연체율은 7.3%로 조사됐다. 연체율 100%였던 '더좋은펀드'가 협회에서 탈퇴함에 따라 사상 최대치였던 4월 연체율(8.5%)보다는 다소 낮아졌다. 그래도 시중은행 평균 연체율이 1% 미만이고,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연체율이 4.5%인 것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다. 투자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늘자 P2P 관련 민원은 최근 1년 새 30배 넘게 급증했다.

    ◇사기·횡령·잠적… 무법천지 P2P

    이달 초 P2P 업체 '더좋은펀드'의 대표 허모씨 등 2명이 사기·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연 수익 18%를 보장하겠다고 투자자 3000명을 끌어들여서 10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머니비앤비라는 P2P 업체의 실제 운영자가 회사 자금을 외부로 유출한 정황이 있는 상태에서 사망해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졌다. 지난해 10월에는 P2P 시장 업계 3위인 루프펀딩 대표가 투자금을 이른바 '돌려막기'로 대부분 사용하고 일부는 회사 채무를 갚는 데 써서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P2P 업체들은 고수익을 내기 위해 제도권 금융회사들이 꺼리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규모 개발 사업에 담보 없이 빌려주는 것)을 주로 취급했는데, 정부의 잇단 대출 규제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타격을 입었다. 2년 전부터 P2P 재테크를 해왔다는 회사원 김모씨는 "연 20% 전후로 이자가 높고 리워드(현금 선물)까지 두둑이 주는 업체는 판매 한도가 광속 마감되는 등 인기가 높았지만 지금은 자금 모집 속도가 많이 더뎌졌다"면서 "업체가 갑자기 사업을 접으면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으니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차주(借主) 정보 공개… 한국은 깜깜

    초저금리인 일본에서도 P2P는 연 10%대 고수익을 챙길 수 있는 투자처로 인기 있는 재테크 수단이다. 하지만 지난해 P2P 대형 업체인 '마네오 마켓'이 투자자 자금을 대출 이외의 목적으로 유용한 일이 발각되면서 사회적인 논란이 됐다. 내부 관리 시스템 미비 등의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자 일본 금융청은 5개 P2P 업체에 등록 취소와 같은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렸다. 또 P2P 업체를 이용하는 차주들의 정보도 전부 공개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차주의 회사명이나 소재지, 사업 계획, P2P 업체와의 이해관계 등을 자세히 알려서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 위험을 낮추겠다는 목표다. 반면 국내 P2P 업체들은 차주의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익명의 힘을 빌려 차주가 빌린 돈을 갚지 않겠다고 버티면 투자자 입장에선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서 P2P 투자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는 'P2P는 하지 않는 것이 돈 버는 길'이란 자조적인 말이 나온다. 한국도 P2P 금융에 대한 법제화 작업이 절실하지만 현재 국회 공전이 장기화하면서 관련 법안 통과는 요원한 상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