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다른 가치로 도전하는 중국… 미국은 억누를 수밖에

입력 2019.06.15 06:00

[이코노미조선]
미국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중국 일당 독재·관 주도 경제
어떤 규범·질서 따르느냐 문제

"(미국의) 중국과 라이벌 관계는 미국이 이전에 겪지 않았던 진정 다른 문명, 다른 이데올로기와 싸움이다. 중국 체제는 서구의 철학과 역사에서 탄생한 게 아니다. 미국이 백인(Caucasian)이 아닌 대단한 경쟁자를 가지는 것은 처음이다."

카이론 스키너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 4월 2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래안보포럼’에서 한 발언이다. 미국 주요 당국자가 중국과 관계를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책 제목이기도 한 ‘문명의 충돌’의 개념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키너 국장은 레이건 시대의 냉전 종식을 다룬 저서 ‘레이건, 그 자신의 손으로(Reagan, in His Own Hand)’로 유명하다. 워싱턴이그재미너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스키너 국장이 이끄는 정책기획국은 ‘레터(Letter) X’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충돌 관련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냉전 시기 소련 봉쇄 전략의 토대가 된 미국 외교관 조지 캐넌의 ‘X 아티클(Article)’을 본뜬 것이다.

스키너 국장의 발언을 겨냥한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 15일 제1회 ‘아시아 문명대화 대회’ 개막 연설에서 "자국 인종과 문명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다른 문명으로 개조하려거나 심지어 대체하려는 생각은 어리석다"며 "평등과 존중의 원칙으로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서로 다른 문명과 교류와 대화로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어 "각종 문명은 원래 충돌이 없었다"면서 "문명 교류는 대등하고 평등해야 하며 강제적이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을 세계화에 편입시킨 건 민주화 바랐기 때문이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로 서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해 왔다. 일본의 탈아론(脫亞論)을 시작으로 세계 대부분 나라는 서구식 근대화를 지향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한때 여럿 생겨나기도 했으나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대부분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됐다.

많은 나라가 서구를 지향해 온 것이 그들이 가진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민주·평등·박애·인권·개방·관용·포용 등 서구가 추구했던 가치가 인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관용과 개방을 통한 포용’은 로마, 몽골,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초강대국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조건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끝나면서 서구의 보편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듯했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 국가들은 중국 역시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틀로 편입되면 서구 보편적 가치를 따를 것으로 봤다. 기든 라흐만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6월 3일 자 칼럼에서 "서방 세력이 중국을 세계화와 무역으로 포용한 것은 경제적인 결정만은 아니었다"며 "중국이 세계화를 통해 서구의 정치적 가치(자유·민주주의·인권 등)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역사적 사례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면 정치적 요구가 분출해 민주화했거나, 민주화하지 못한 나라는 경제적으로 쇠퇴했다. 그런데 중국은 정반대로 오히려 독재를 강화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성장했다. 인터넷 등에 차단벽을 설치해 검열하고 인공지능(AI)이나 안면인식 기술 등 새로운 도구를 통해 자국민을 감시하려 한다. 중국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따르지 않고 있다.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에 실망한 중국

하지만 중국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 안정, 공산당 리더십 유지다. 중국은 정치 체제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경제적으로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점진적으로 시장경제 모델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고정환율제를 관리변동환율제로 바꾸고 시장 개방도 점진적으로 추진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도 진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식 시장주의 체제에서 금융회사들의 탐욕이 금융위기를 촉발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 체제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다. 유럽 재정위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여론이 분열돼, 정치적 합의에 이르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이 추진되지 못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서구식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가 체제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느냐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재와 정부 주도 경제가 자유와 민주를 억압하더라도 체제 안정과 경제 발전에 도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 국내적으로는 ‘민진국퇴(民進國退·민간기업이 앞서고 국영기업은 물러난다)’ 기조가 시진핑 시대 들어 ‘국진민퇴(國進民退)’로 바뀌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서 시장경제 방향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위 당·정·군 관료들이 부정부패로 사익을 추구했다. 그래서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르자마자 반부패 개혁을 추진하면서 엄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국영기업의 중요성이 부각돼 국진민퇴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영향으로 2013년 시진핑의 ‘9호 문건’에 서구 제도 중 중국에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게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9월 칼럼니스트 우샤오핑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민영 부문은 국유기업을 돕는 역사적 임무를 완수했으며 이제 사라지기 시작할 때가 왔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후 시 주석이 민영기업을 시찰하고 민영기업의 역할이 언급되면서 논란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민영기업들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국영기업을 통해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민간기업이라고 해도 공산당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방보험 창업자 우샤오후이가 2017년 6월 체포돼 지난해 1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도 일어났다. 지난해 7월 하이항그룹의 공동창업자 겸 회장인 왕젠이 프랑스 휴양지에서 실족사했고, 앞서 2017년 1월엔 밍텐그룹 샤오젠화 회장이 홍콩 호텔에서 갑자기 실종되기도 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새로운 상장사 관리 준칙’을 시행하고 있다. 새 준칙에는 ‘상장사가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에 따라 회사에 당위원회(당조직)를 설립해야 하며 당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필요한 조건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주요 의사 결정 때 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 중국 국영기업과 합작 투자한 서방 기업은 회사 내부 공산당 세포(핵심당원)들에게 의사 결정에 대한 명시적인 역할을 부여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미·중 패권 경쟁은 규범과 질서의 문제

중국과 같은 일당 독재, 감시 통제 체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매우 후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 후진국 독재자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을 달성해낸 중국 모델은 매력적일 수 있다. 중국이 이란과 친하게 지내고 베네수엘라를 지원하며 아프리카 여러 독재 국가에 인프라 건설, 자원 개발 등을 추진하는 이유다.

스키너 국장의 발언에 나타난 ‘문명의 충돌’ 개념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백인종·황인종 문명 또는 기독교·이슬람·유교 문명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지만 그 근간에는 어떤 규범과 질서를 따를 것이냐의 문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자국 인종과 문명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다른 문명으로 개조하려거나 심지어 대체하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말했지만, 인류 역사의 발전은 그런 식으로 이뤄져 왔다.

시 주석과 같은 문화 상대주의자는 ‘각자 자기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산다’는 식으로 자기 문명이나 문화의 특수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또는 태평양 지역의 식인 풍습을 받아들일 수 있나.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소녀들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는 할례를 용인할 수 있나. 자유연애 또는 여성의 자기표현이 친족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명예살인을 인정할 수 있나. 이 같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인간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서구 보편적 가치가 그 방향을 추구해왔고 대부분 나라가 이에 동의하고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우리나라 유신시대 때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식 민주주의’와 겹친다.

중국의 영향력이 자국 내에만 미친다면 미국 등 다른 나라가 이처럼 난리 칠 이유가 없다. 할례나 명예살인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그러나 중국이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보기에 따라 매우 불공정한 방식으로) 세계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미·중 충돌의 근원이다.

◇plus point

EU도 변수…중국과 협력할 건 하지만 ‘결국 미국 편’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인 유럽연합(EU)의 입장은 미·중 무역전쟁과 패권 경쟁에서 큰 변수다. EU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미국 또는 중국의 주장이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계속 유럽에 러브콜을 보내며 미국과 유럽 간 균열을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EU는 중국과 협력할 건 하지만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등 불공정 경쟁을 문제 삼고 있는 미국과 같은 입장이다.

유럽집행위원회(EC)가 3월 11일 내놓은 전략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명확히 나와 있다. 보고서는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economic competitor)’이자 정치적으로 대안 모델을 추구하는 ‘체제적 라이벌(systemic rival)’로 규정했다. 또 "중국과 관련된 무역, 기술, 지정학적 우려에 대해 EU가 향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대중국 강경 노선을 주도하는 나라는 EU에 대한 발언권이 가장 강한 독일과 프랑스로 알려졌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러시아가 중국과 갈수록 친밀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

또한 EU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중국 시장 개방 노력의 실패,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조금 지원,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행태, 기술 및 통신 부문을 장악하려는 시도 등 중국의 패권 추구와도 관련된다.

영국과 프랑스 등 EU 국가들은 남중국해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공동으로 중국에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기도 한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해 군함 파견과 해군 훈련 증강에 나섰고, 덴마크와 네덜란드도 이 같은 기류에 동참할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4월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21차 중국·EU 정상회의에서는 "중국과 EU는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활력을 재확인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면서 "양측은 다자주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개방적이고 차별 없는 양자 무역 관계를 조성할 것"이라며 강제 기술 이전, 자국 기업 보조금 등 외국인 기업에 대한 차별 폐지와 지식재산권 보호 등 국제표준 준수를 약속했다.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다자주의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EU 역시 중국의 불공정 경쟁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도 일단 말로는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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