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를 움직이는 손은 구글·알리바바

입력 2019.05.21 03:06

[AI 세계 대전, 길 잃은 한국] [4] 점점 커지는 '기술 속국' 우려감

한국 대표 IT(정보기술) 기업인 네이버가 자회사를 통해 내놓은 카메라 앱 '스노우'는 화면 속 사람의 모습을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재미있게 꾸며준다. 사용자의 얼굴과 표정, 몸짓을 인식하는 영특한 인공지능(AI) 덕분이다. 이 앱은 청소년과 젊은 여성의 '셀카 놀이' 도구로 선풍적 인기를 끌며 2015년 출시 이후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3억 건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 앱의 세계적 성공 뒤엔 비밀이 있다. 앱은 네이버 자회사가 만들었지만, 핵심 AI 기술은 중국 센스타임(SenseTime·商湯)이란 회사 것이다.

앱뿐만이 아니다. LG전자는 자사의 스마트폰 제품에 들어가는 AI 비서 서비스로 미국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를 채택해 쓰고 있다. 이 회사는 앞으로 내놓을 AI 스피커 제품에도 구글의 기술을 쓸 예정이다. 현대자동차는 자율주행 기술 확보를 위해 지난해 중국 바이두와 기술 제휴를 맺었고, 미국의 AI 스타트업 '퍼셉티브 오토마타'에 투자했다. IT 기기와 자동차 등 한국 대표 산업마저 중국과 미국의 AI 기술이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부문별 한국 경쟁력 순위
/일러스트=박상훈
AI 원천 기술과 기술 플랫폼을 장악한 해외 AI 기업에 밀리면서, 한국이 'AI 속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확대되는 기술 격차… 외산 AI가 시장 점령

한국의 AI 기술력은 선두 국가에 한참 밀리고 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전반적인 AI 기술력은 미국 대비 78% 수준으로, 유럽(88.1%)은 물론이고 중국(81.9%)에도 뒤처졌다. AI 연구 역량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인공지능 연구 지표 국가 순위'를 보면 연구 논문의 피인용 순위에서 한국은 싱가포르(10위), 홍콩(11위)보다 낮은 12위에 그쳤다. 이 분야의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이다. SPRi 관계자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AI 연구 역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와중에 상당수 국내 대기업은 자체적 AI 기술에 투자하기보다 해외 기업의 기술을 도입해 파는 데 주력하고 있다. SK C&C는 2016년부터 미국 IBM과 손잡고 국내 기업에 IBM의 AI 기술을 제공 중이다. SK텔레콤은 최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포괄적 기술 협력을 통해 이 회사의 AI 기술을 활용키로 했다. LG CNS는 구글의 AI 기술을 도입, 국내 기업의 공장 자동화 분야에 진출했다. 국내 금융·제조업 대기업은 미국 데이터 분석 전문 기업 SAS의 AI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주요국 AI 기술 수준 추이
국내 스타트업 상당수도 해외 AI 기술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 구글은 "AI 돌보기 앱을 개발한 D사, 수학 문제 풀이 검색 서비스를 운영하는 M사, 영상으로 전 세계인을 연계하는 서비스를 만든 H사 등 AI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이 구글의 AI 기술 '텐서플로'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자체 AI 기술을 내세운 국내 기업의 상황은 수월치 않다. 삼성전자는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와 애플 '시리(Siri)'에 맞서 '빅스비(Bixby)'라는 자체 AI를 내놨지만, 글로벌 시장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이버도 자체 AI 플랫폼 '클로버'를 내놓고 금융권과 국내외 제조 업체를 중심으로 이 기술의 확산을 시도하고 있지만 미·중 AI 기술과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I 업계 관계자는 "몇몇 AI 기술 벤처와 스타트업이 자체적 AI 기술로 국내 기업 시장을 뚫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 괄목할 만한 성과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공공 부문을 통해 국내 AI 업체의 시장을 창출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도 기술 속국 될까

전문가들은 원천 기술은 외국에 의존하면서 응용·생산 기술로 연명해 온 과거 한국 제조업의 상황이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계속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MS와 구글의 운영체제(OS)를 탑재한 PC와 스마트폰 등 IT 기기가 우리나라의 주력 상품이 됐듯, 미래에는 외국산 AI 기술을 탑재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국내 AI 기술 업체 대표는 "빅데이터를 다루고, 또 그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기술"이라며 "외국의 AI 기술에 의존하면 할수록 우리의 데이터를 그쪽에 고스란히 노출하고, 우리 기업·정부보다 외국 기업·정부가 우리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이 평소에 무엇을 먹고 마시고 사는지, 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떤 인간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를 국내 기업이나 정부보다 미국 구글이나 애플이 훨씬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AI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의료와 복지, 금융 등 이른바 공공 분야에 폭넓게 쓰이게 될 때 이러한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김창경 한양대 교수(과학기술정책학)는 "AI 핵심 기술은 미국 구글, 중국 알리바바 등 소수의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이를 '오픈 소스'로 외부에 공개하면서 기술 지배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자칫하면 외국의 AI 기술을 응용하는 데만 머물다 'AI 기술 속국'으로 남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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