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안녕? 여긴 인도 하이데라바드야. 오늘 페미니스트 모임에 가서 젠더 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 (중략) 따라와."

러시아 여성 디나라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의 도입부다. 언뜻 보면 인도를 여행 중인 외국인 여행자의 영상 같지만, 사실 그는 여행이 아니라 수업 중이다. 하이데라바드 거리 곳곳과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교실이고 선생님이다. 10분 남짓 영상에는 그가 머무는 도시의 일상 풍경, 현지인들과 진행 중인 프로젝트 모임 현장, 그가 다음 날 수업에 앞서 수업 자료를 예습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디나라는 세계적인 혁신 대학으로 주목받는 미국의 ‘미네르바스쿨’ 학생이다. 이 학교는 강의실도, 도서관도 없다. 대신 학생들은 4년 동안 세계 도시 속으로 흩어져 공부한다. 1학년 샌프란시스코, 2학년 서울·하이데라바드(인도), 3학년 베를린·부에노스아이레스, 4학년 런던·타이베이로 수업 장소를 옮긴다. ‘포브스’는 최근 기사에서 미네르바스쿨을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평가했다.

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한곳에 모일 필요가 없다. 정해진 시간에 아무 데서나 온라인에 접속해 강의를 듣는다. 수업도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미리 준비해온 주제로 토론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학교와 연계된 기업인 아마존, 우버, 애플 등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현재 2학년 2학기를 하이데라바드에서 보내고 있는 디나라는 앞선 1학기에는 서울에서 공부했다. 그와 동급생들은 카카오, SK엔카닷컴 등 국내 기업 프로젝트에 투입돼 현장을 경험했다.

벤 넬슨(Ben Nelson) 미네르바스쿨 창립자,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스냅피시 창업자

미국의 벤처투자자 벤 넬슨이 창립한 미네르바스쿨은 대학계의 ‘스타트업’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대학 혁신 추진체 ‘미네르바 프로젝트’에 1억2000만달러(약 1400억원)의 투자금이 모였고, 이 프로젝트가 미국 대학 연합체인 ‘KGI’의 인가를 받아 학교를 설립했다. 2014년 29명으로 첫 수업을 시작한 미네르바스쿨에는 매해 지원자가 늘었다. 2017년도 학생 모집에 70개국 출신 2만3000명이 지원했고, 합격률 1.9%로 ‘하버드(4.6%)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전체 학생 600명 중 한국 국적을 가진 학생 수는 10명 정도다.

그런데 미네르바스쿨의 교육 혁신은 자체 개발한 온라인 강의 플랫폼 ‘포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수업은 정원 20명 미만 소규모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플랫폼을 통해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실시간으로 토론할 수 있다. 교수는 학생 의견을 즉시 취합해 피드백을 하고, 발표량이 적어 빨간색으로 표시된 학생에게는 추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모든 수업이 녹화돼 교수는 수업을 마친 후 다시 영상을 돌려 보며 자세한 피드백을 준다.

에듀테크로 대학 교육을 혁신하고 있는 벤 넬슨 창립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미네르바스쿨의 수업은 100% 온라인으로만 이뤄진다. 학생이 어디에 있건 상관 없다. 사진은 미네르바스쿨이 개발한 온라인 강의 플랫폼 ‘포럼’에서 토론 수업 중인 학생들의 모습. 학생들의 발언량에 따라 빨강, 노랑, 초록으로 표시된다.

올해 미네르바스쿨의 첫 결실인 1회 졸업생이 배출된다. 이들의 진로는 어떤가.

"졸업식은 5월 말이라 아직(인터뷰는 4월 25일 진행) 학생들의 최종 결정을 공개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졸업생들의 진로가 명문대 졸업생과 비교해서도 손색없다고 자부한다. 예를 들자면 금융에 관심 있던 몇몇 학생은 졸업 후 바로 헤지펀드, 벤처캐피탈로 가게 됐다. 졸업하자마자 이런 곳에 취직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중간에 투자은행을 거치는 식인데, 이 학생들은 이 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아이비리그 졸업생들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네르바식(式) 교육의 장점은.

"학생들은 4년 동안 세계 각지를 다니며 기업과 비영리단체·공공기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현장 경험을 쌓는다. 동시에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실시간 토론 수업을 통해 비판적 사고, 창의성,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키운다. 고등교육기관이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대학은 과거 교육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건물을 올리고 스포츠팀에 투자하는 데만 골몰한다. 나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본연의 목표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의실을 없애고 학생들을 세계 각지로 보냈고, 수업은 온라인을 통해서만 진행하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미네르바식 교육을 완성하는 중요한 도구가 온라인 강의 플랫폼 ‘포럼’이라고 생각한다.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포럼은 ‘수준별 맞춤 학습(Cross Contextual Scaffolding)’ ‘완전히 능동적인 학습(Fully Active Learning)’ ‘체계적인 피드백(Systematic Formative Feedback)’이라는 미네르바의 세 가지 교육 방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이런 맞춤식 솔루션, 즉 에듀테크가 없다면 미네르바스쿨에서 양질의 교육은 불가능할 것이다."

최근 이 플랫폼을 개편했다. 이유는.

"미네르바 프로젝트의 목표는 다른 고등 교육기관들도 우리 교육 혁명에 동참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들이 미네르바스쿨의 교육 방식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개편했다. 여기엔 수백만달러가 투입됐다. 그동안 소규모 온라인 세미나를 열 수 있는 미네르바스쿨의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 대한 니즈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쓰던 기존 플랫폼으로는 일반 대학에서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미네르바스쿨 세미나 정원이 20명 미만인 데 반해, 도입을 원하는 대학의 강의는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편한 플랫폼으로 올여름부터는 400명의 학생이 동시에 플랫폼에 접속해 토론할 수 있다. 전통 대학에서도 강의 운영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네르바스쿨을 떠나 전통 학교로 돌아간 사례도 있나.

"드물지만 매년 나오는 케이스다. 다만 미네르바 교육에 실망해서 학교를 떠났다기보다는 우리 교육 강도가 과중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 강도가 다소 느슨한 전통 학교로 돌아가곤 한다."

◇Keyword

미네르바스쿨(Minerva School) 미국의 벤처투자자 벤 넬슨이 창립한 고등교육 기관. 대학이 교육 대신 건물을 짓고 스포츠 팀을 꾸리는 대학 사업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는 캠퍼스를 없애고 학생들을 세계 각지로 보내는 현장 중심 교육 모델을 만들었다. 자체적으로 온라인 강의 플랫폼 '포럼'을 개발해 세계 각지의 학생과 교수가 실시간으로 토론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등록금은 3만1000달러 정도로 미국 명문 사립대(약 10만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의 목표는 아이비리그 수준의 교육을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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