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 PB상품 확대에 제조업 '흔들'...미국은 '아마존 PB 규제법' 추진

조선비즈
  • 유윤정 기자
    입력 2019.05.08 06:00

    "경쟁을 불법적으로 저해하는 거대 기업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 가장 크고 힘있는 기업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자는 뜻이다."

    2020년 대선에서 정권 탈환을 노리는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의 최근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아마존·구글·페이스북 등 거대 IT 기업들의 독점적 지위를 규제하고 기업사냥식 인수합병(M&A)을 막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연 매출 250억달러(약 28조원) 이상인 기업들은 시장에서 상품을 분리해 판매하도록 하는 규제를 담고 있다.

    ◇ 유통공룡 ‘아마존’ PB만 456개…美정치권 PB규제 움직임

    워런 의원의 법안대로라면 아마존은 앞으로 아마존닷컴에서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팔 수 없다. 워런 의원 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 중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 상원의원 등도 아마존에 대한 영향력 축소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존 PB제품 ‘해피벨리’와 ‘마마베어’
    이같은 배경에는 미국 온라인 유통시장의 49%(매출 기준)를 장악한 아마존이 PB상품을 대폭 늘리면서 기존 제조기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PB상품이란 다른 유통업체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고유 상품을 말한다. 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가 가능하고 충성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년말 기준 아마존이 직접 출시한 PB상품은 135개. 여기에 아마존에서만 상품을 판매하도록 독점 계약을 맺은 PB상품(330여개)까지 더하면 약 456개 품목에 달한다.

    아마존은 지난 2월 지난달 자체 식품 브랜드 ‘해피벨리’를 통해 새 우유 제품을, 건강식품 브랜드인 ‘솔리모’에서 코코넛 음료를 출시하는 등 자체 개발 브랜드를 연달아 선보였다. 최근엔 PB 화장품 ‘패스트뷰티컴퍼니’를 출시했다. 기저귀 브랜드 ‘마마베어’, 파스타·그래놀라바·김 스낵 등을 판매하는’ 위키들리 프라임’과 ‘올내추럴아이스크림’도 아마존 PB다. 이들은 사이트 상단에 노출돼 기존 브랜드들을 위축시킬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 국내 대형마트·이커머스도 PB 확대...중소·지역 제조사 하청업체 전락 우려

    국내 유통업체도 PB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대형마트다. 이마트는 노브랜드와 가정간편식(HMR) 피코크, 화장품 브랜드 스톤브릭을, 롯데마트는 온리프라이스와 요리하다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홈플러스도 심플러스와 올어바웃푸드를 판매중이다. 편의점·홈쇼핑은 석류즙·두유 등 건강식품을 비롯해 속옷·리빙·가전제품까지 PB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쿠팡·티몬·11번가 등 이커머스 업체들도 PB를 확대하는 추세다. 쿠팡은 휴지와 생수 등 생필품과 반려동물 용품을 중심으로 한 PB제품 ‘탐사’를 출시했다. 최근 생수의 온라인 판매가 늘자 ‘탐사수’ 공급을 늘리고 공격적인 판매에 나서고 있다. 또 유아동용품 ‘타이니스타’ 생활용품 ‘마케마케’ 건강용품 브랜드 '비타할로' 등 8개의 PB 브랜드를 선보였다.


    쿠팡 생수PB ‘탐사수’와 티몬 계란PB ‘236:)’
    티몬은 PB '236:)' 브랜드에서 70여종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물티슈·화장지·타월·생수·쌀·식기건조대 등 품목도 다양하다. 11번가는 화장품 PB인 ‘싸이닉’을, G마켓·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패션PB '어라운드뮤즈’를 선보였다.

    온·오프라인 유통플랫폼이 PB 확대 전략에 집중하면서 중견업체들이 대형 유통업체의 생산 하청회사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제조사들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하지만, 브랜드가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 업체들은 가격경쟁에서 밀려 도태될 수 있어서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신라면·바나나우유처럼 브랜드 힘이 있는 제품은 PB와의 경쟁에서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다"며 "하지만 소비자 충성도가 높지 않은 브랜드는 이미 가격부터 PB 제품에 밀려 하청업체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국내 정치권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이를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2일 지역업체가 만든 제품을 대형마트 전체 품목의 10% 이상으로 구성하도록 하는 유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쿠팡·11번가 등 이커머스 업체를 유통공룡들이 운영하는 쇼핑몰과 같은 법적 지위를 갖도록 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안승호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마트나 이커머스의 PB상품을 규제하면 해외에서 제품을 소싱(구매)해 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 제조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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