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A아파트에 사는 박모씨는 지난 3월 15일 아파트 공시가격이 공개된 후 온라인으로 이의신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그는 "작년 1년간 단지 내 같은 면적 아파트 거래가 없었는데, 공시가격은 7000만원이나 올랐다"며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공시가격을 담당하는 한국감정원은 "관련 법, 주택 특성, 주변 집값 동향 등을 따져본 결과, 공시가격이 적정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짧게 답했다. 박씨는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요구했는데 '제대로 산정했으니 그런 줄 알라'는 식의 답변이 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국 공동주택(아파트, 연립, 다세대)의 공시가격을 30일 공개하자 주택 소유자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 특히 공시가격을 낮춰달라고 이의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사람들의 반발이 심하다. 이들은 대부분 공시가격 인상도 문제지만 이것은 곧 세금 인상을 뜻하는데 산정 기준조차 알려주지 않는 '깜깜이 과세'에 분노하고 있다.

과천 30평대 아파트를 가진 B씨는 "공시가격이 1억원 오른 것을 보고 '인상 근거가 되는 시세를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내부 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세금이 40만원 넘게 늘어나는데 그 이유도 알 수 없나"고 했다.

C씨는 본인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실거래가가 더 비싼 동(棟)보다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의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집값이 오른 만큼 공시가격을 올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더 비싼 집을 가진 사람보다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니 황당하다"고 했다.

올해 이의신청은 2만8735건으로 작년(1290건)의 22배다. 이 중 6183건(21.5%)만 반영됐다. 감정평가 전문가들은 "공시가격을 담당하는 직원은 그대로인데 업무가 20배 이상 늘었으니 제대로 산정하고 검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깜깜이 산정'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 등 10명은 부동산 공시가격 조사·평가, 산정 관련 모든 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지난달 28일 발의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공시가격 인상이 집값에는 별다른 영향을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공시가격 인상 논란은 작년부터 계속됐기 때문에 인제 와서 갑자기 집값이 크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보유세 때문에 사람들이 집을 팔았다면 진작에 거래가 늘었을 것"이라고 했다.

3월 전국 주택 거래는 5만1357건으로 전년 동월(9만2795건) 대비 45% 줄었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많은 사람이 보유세를 줄이기 위해 집을 팔기보다 증여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거래보단 증여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