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대학의 저명한 금융경제학자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교수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고 자신의 신작 '제3의 기둥'에서 주장했다. 그가 시장 자유주의의 본산인 시카고대학에 몸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로 들린다.

시장 메커니즘의 우수성은 인정하되 그에 대한 맹신은 경계해야 하고, 국가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의 주장이 특이한 것은 여기에 공동체의 역할을 추가해 국가·시장·공동체의 3각 기둥이 균형 있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역사는 이 세 기둥이 서로 번갈아가며 득세와 후퇴를 반복해 온 과정이었다. 근대 이전은 경제 기구로서 공동체가 우위를 점했던 시기였다. 계몽과 진보보다는 미개와 야만이 압도적이었다. 교회와 영주가 그 중심에 있었다. 자유와 권력은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 권위의 실추, 지리상의 발견과 교역 확대, 계몽사상의 확대가 이어지면서 근대 이후 지금까지 주도권은 주로 시장과 국가가 번갈아가면서 가져갔다. 자유시장이야말로 기득권을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기제였지만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약자는 늘 고통받았다. 반면에 이를 막는다는 구실로 국가나 공동체가 과도하게 득세할 때마다 규제와 정실주의가 횡행하면서 오히려 특권층을 강화하곤 했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승자와 낙오자가 동시에 등장했다. 19세기에는 자본가가 새로운 승자로 부상했지만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은 배제됐다.

선진국 경제의 고령화와 청·장년 노동 인구 감소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국가 간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즉 적극적 이민 장려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포용적 지역주의(inclusive localism), 즉 누구든 출신 지역이나 국가로 차별받지 않으면서 평등하게 교육과 사업 기회를 제공받고 문화 다양성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이민국의 헌법이 규정하는 가치와 의무에 철저히 복종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에는 단지 경제적 이익과 계약만으로는 설명되거나 충족되지 않는 인간 행동의 동기와 심리가 있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경제학자들은 바로 이 무형의 요소가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경제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회 일각에서 보이는 이념에 치우친 그릇된 공동체 주의나 맹목적인 자유주의를 바로잡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