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가 성장동력, 금지된 것 빼곤 다 하라" 부처 기능도 통폐합

입력 2019.04.20 03:23

['금융 판'을 바꾸는 프런티어를 가다] [2] 핀테크 허브 싱가포르

"소액 해외 송금 사업을 하려고 싱가포르 금융 당국(싱가포르금융통화청·MAS)에 딱 한 번 찾아갔는데 3개월 만에 국제송금허가증이 나왔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토머스 캉 엠닥(MDAQ) 글로벌본부장은 "싱가포르 정부는 뭐든 핀테크 사업 아이디어가 있으면 자유롭게 해보라고 도와준다"며 이같이 말했다. 엠닥은 저렴한 실시간 외화 환전 시스템을 개발해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에 제공하고 있는 핀테크 기업이다. 동남아 사람들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다른 쇼핑몰에서 살 때보다 환전 수수료가 3분의 1 이상 싸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최근에는 소액 해외 송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과거 한국 씨티은행에서 7년을 일했던 캉 본부장은 "한국에서 사업 허가를 받으려면 1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육성 단지 중 한곳인 80RR에서 젊은 창업자들이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육성 단지 중 한곳인 80RR에서 젊은 창업자들이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80RR 홈페이지
싱가포르는 영국 런던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핀테크 사업 하기 좋은 나라(딜로이트·2018년)로 꼽힌다. 글로벌 핀테크 100대 기업 중엔 그랩을 포함해 싱가포르 회사가 6곳(KPMG·2018년)이나 포함돼 있다. 인구 560만명에 불과한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핀테크 허브'가 된 데는 정부가 핀테크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규제를 풀고 '원스톱' 지원을 하는 데 있다.

◇'안 된다'고 명시한 것 빼곤 '다 된다'

동남아 핀테크 공룡이 된 차량 공유 회사 그랩도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설립된 회사지만, 지난 2014년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그랩의 앤서니 탄(Tan) 창업자 겸 CEO는 "싱가포르는 규제가 적고 정부 지원이 많다"며 이전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안 된다'라고 명시된 것만 못 하게 하고 나머지는 어떤 사업도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의 규제 체계나 전 세계적으로도 낮은 법인세율(최고 17%) 등이 매력적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은 '된다'고 정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의 규제여서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한국은 지난해 법인세율을 최고 22%에서 25%로 올렸다.

◇민간 투자금 유치하면 정부가 3배 지원

주요 국가별 100대 핀테크 기업 숫자 그래프

한국의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을 합친 기능을 하는 MAS(싱가포르금융통화청)엔 핀테크 산업 발전 전략과 규제를 만드는 '핀테크혁신그룹'과 핀테크 기업들을 지원하고 의사소통하는 실무 조직 '핀테크 오피스'가 있다. 경제개발청, 기업청, 국가연구재단 등 다른 정부 부처와 기관에서 각자 제공하던 핀테크 지원 프로그램을 모두 통합해 MAS만 통하면 '원스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싱가포르에선 핀테크 창업가라면 누구나 MAS 핀테크 오피스를 찾으면 된다. 담당자에게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새로운 사업이 기존 규제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받는다. 괜찮은 아이디어로 인정받으면, 보조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 등이 주어진다. 예컨대 설립 6개월 이내 신생 스타트업은 민간 투자금 1싱가포르달러(이하 달러로 표기)를 유치할 때마다 정부에서 3달러를 지원받는다. 스타트업엔 영업이익 10만달러(약 8400만원)까진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금융 당국과 메신저로 수시 소통

창업 5년 이내 기업은 블록71, 배시, 80RR 같은 스타트업 육성 단지의 사무실도 싸게 빌려 쓸 수 있다. 싱가포르엔 핀테크 창업 단지가 30여개 있다. 정부가 100% 소유한 육성 단지도 7곳이다.

창업 육성 단지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은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으로 MAS의 핀테크 담당자와 언제든지 자유롭게 연락한다. 우리로 말하면 스타트업 직원들이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금융 당국 핀테크 담당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는 셈이다.

MAS는 2016년 핀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다. 일정 기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신규 서비스를 검증하게 하는 제도다. 한국은 올해에야 이 제도를 도입했다. 싱가포르는 작년에 2년 이상 소요되던 핀테크 기술 특허 승인 기간을 6개월까지 줄였다. 소프넨두 모한티 MAS 핀테크 최고책임자는 "140여개 기업이 샌드박스에 들어가 이 중 40여개가 크라우드펀딩, 해외송금, 블록체인 등 분야에서 핀테크 혁신 기술을 사업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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