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상환 못하고 폐업하면 '관련인' 등록… 기업인 신불자 전락
정부 규제 개선 추진한다지만, 소급적용 여부 불투명
2015년부터 뷰티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해온 A대표는 최근 경영난으로 폐업을 결정했지만, ‘서류상’ 폐업은 미루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신보) 대출을 갚지 않은 채 폐업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신보와 기술보증기금(기보)이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때 기업 대표이사에게 부과하던 연대보증제도가 완전 폐지됐다. 기업 경영이 어려워져 신·기보에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해도 대표이사가 이를 변제할 의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부실화돼 대출을 갚지 못할 경우 이 기업의 대표이사나 대주주는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되고 전 금융권에 이 정보가 공유된다. 사실상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 재기의 기회를 빼앗기는 셈이다.
A대표는 "채무불이행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 개인적으로 받은 신용대출을 일시 상환해야 하고, 신용카드도 중지될 수 있다"며 "받을 수 있는 모든 대출을 다 동원해 회사에 쏟아부어왔던지라 참 공포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신·기보 등 정책금융기관의 연대보증제를 완전 폐지했지만, 과거부터 내려온 한국신용정보원의 ‘관련인 등록제’가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뒤 상환에 실패한 경우, 법인 대표 또는 대주주 등이 금융거래상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신용정보원은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기업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했을 경우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자를 관련인으로 등록하는 관련인 등록제를 운영하고 있다.
신용정보원의 ‘일반신용정보관리규약’에 따르면 ▲기업의 지분을 50% 초과 소유하고 있는 과점주주 ▲과점주주인 동시에 해당 기업의 등기임원으로서 기업 채무의 연대보증인 ▲지분 30%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최다 출자한 자 등이 관련인에 해당한다.
사실상 대표이사나 최대주주가 지분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 특성상 이런 기준은 대다수 중소기업인에게 해당된다. 신용정보원의 관련인에 등록되면 해당 기업인의 정보가 금융회사 등에 공유돼 금융거래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관련인 등록을 해지하려면 일정 기간동안 정책금융기관에서 빌린 원금 일부를 갚아나가야 한다. 연대보증제도는 폐지됐지만, 결국 중소기업인들에게 연대보증의 짐을 지게 하는 제도다.
업계 관계자는 "관련인에 등재되면 전 금융권이 해당 개인에 대한 부실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신용등급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며 "이 경우 대출 만기 연장, 신용카드 이용 등이 불가능해져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관련인 등록제는 정책금융기관이 세금을 들여 기업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만큼, 관련인이 일정 부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기업이 정책금융기관 보증을 조건으로 받은 은행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기관이 은행에 대신 돈을 갚아주는 경우, 또는 정책금융기관에서 직접 대출을 받았지만 상환하지 못한 경우 규약에 따라 기업 관련인 정보를 신용정보원에 입력할 수밖에 없다"며 "연대보증이 폐지됐어도 관련인에게 채무 불이행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는 금융위가 정책금융기관의 연대보증제를 폐지하면서 관련인 등록제를 손보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다. 관련인 등록제가 중소기업 활동에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에 따라 금융위,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 기관은 제도 개선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연대보증을 면제받은 기업 경영인이 ‘투명경영이행약정’을 준수할 경우, 관련인으로 등록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투명경영이행약정이란 용도 외 자금의 사용 금지, 자금 집행 내역의 주기적 보고 등 기업의 투명성 제고 방안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행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규약 개정 등 관련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소급 적용’ 여부다. 업계에서는 연대보증 면제 대출을 받았음에도 관련인 제도로 인한 피해를 입은 기업인들이 많은 만큼, 소급 적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연대보증 폐지 이후 실행된 대출·보증에 대해서만큼은 관련인 등록을 제한하는 등 소급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금융위에 전달했다"면서도 "기업인도 국민 세금을 사용한 만큼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과 소급 적용은 법 제도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 등에 따라 소급 적용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