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인사이더] '한국판 YC' 스파크랩 김유진 대표 "머리 보다 발로 뛰는 실행가 선호"

조선비즈
  • 박원익 기자
    입력 2019.04.01 06:00

    작년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스파크랩(SparkLabs) 데모데이(demoday·사업 모델 발표회) 현장.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박진영이 무대에 오르자 객석이 술렁였다. 공연을 하러 등장한 게 아니었다. JYP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이자 한 명의 기업가로서 회사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 그는 이날 CIC(사내 기업·Company In Company) 설립을 골자로 한 ‘JYP 2.0’ 전략을 발표해 큰 박수를 받았다.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열리는 스파크랩 데모데이는 한국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관계자들의 축제로 불린다. 창업가와 벤처 투자가를 연결하기 위한 행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화려한 조명에 힙합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지고 창업가들은 쇼를 선보이듯 사업 모델을 발표한다. 데모데이로 유명한 미국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 못지 않게 역동적이고 흥겹다.

    김유진 스파크랩 대표. /박원익 기자
    이런 분위기는 스파크랩의 DNA에서 비롯됐다. ‘창업가들이 창업가를 위해 설립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투자·육성회사)’란 DNA다. 제너럴 파트너 4명 모두 창업가 혹은 초기 창업 멤버 출신인 까닭에 창업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한 발 앞서 간지러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 투자할 때도 머리만 쓰는 전략가보다 발로 뛰는 실행가를 선호한다. 저돌적으로 미국·중국 시장을 개척해 K뷰티 간판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미미박스가 스파크랩 1기 투자기업이다.

    2012년 시작한 1기부터 12기까지 스파크랩의 투자를 받은 한국 스타트업은 총 125개. 이들의 기업가치 총액은 1조6000억원 이상이다. 교육 스타트업 노리, 맛집 정보 앱 망고플레이트, 해외 송금 서비스 센트비, 공유 민박 업체 H2O호스피탈리티 등 투자 분야도 다양하다. 최근엔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를 벤처파트너로 영입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지난 14일 역삼동 스파크랩 본사에서 김유진 대표를 만나 스파크랩의 전략과 비전을 들었다.

    ◇ NHN·포도트리·텐센트 거쳐…"스파크랩은 한국의 YC"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경제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부모님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는 안정적인 길을 권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95년 대학 입학 후 웹브라우저와 이메일의 확산을 지켜보며 인터넷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닷컴붐이 일었던 2000년 SK 계열 벤처 기업인 더컨텐츠컴퍼니에 입사했다. 2004년부터는 NHN에서 일하며 NHN의 미국 진출 업무를 도맡았다. 2005년부터는 미국으로 건너가 NHN USA 소속으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김범수 당시 NHN 대표(현 카카오 의장) 등과 같이 일했던 때다."

    스파크랩은 ‘창업가를 위해 창업가들이 세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를 표방한다. 스파크랩 제너럴 파트너 4명 모두 창업가 출신이다. 김호민 파트너는 소프트웨어 회사 N3N을, 버나드 문 파트너는 웹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비드퀵(Vidquik), 이한주 파트너는 서버 호스팅 기업 호스트웨이, 클라우드 업체 베스핀글로벌을 설립했다. /스파크랩 홈페이지 캡처
    -벤처 1세대의 성공에 영향 받은 걸로 보인다.

    "닷컴붐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창업하겠다고 NHN에서 나왔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2007년부터 버티고우 게임스란 곳에서 1인칭 슈팅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했다.

    2010년 말엔 이진수 당시 포도트리(현 카카오페이지) 대표의 제안으로 포도트리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이 대표도 NHN USA에서 함께 일한 멤버였다. 2012년엔 텐센트코리아에서 게임 라이센싱, 해외 파트너 지원 등 사업 개발 업무를 했고, 이듬해 말 스파크랩에 조인했다."

    -투자자로 변신한 계기가 있나.

    "사실 투자쪽은 잘 몰랐다. 다만 스파크랩 설립 취지가 좋았다. 액셀러레이팅은 투자뿐 아니라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사업개발, 네트워킹을 돕는 일인데, 다 해봤던 업무였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스파크랩 합류를 결정한 후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무엇인지, 이런 투자 모델을 처음 고안한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YC)는 어떤 회사인지 열심히 공부했다.

    초기 단계 투자를 받지 못하고 글로벌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스타트업을 위해 YC 같은 회사를 만들어 창업가들이 창업가를 돕자는 뜻으로 시작했다."

    -한국 최초 액셀러레이터로 불린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창업 보육만 담당하는 인큐베이터는 당시에도 있었는데, YC 같은 모델은 없었다. 스파크랩은 한국의 YC였던 셈이다. 창업 경험 있는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적은 액수를 투자하고 노하우와 자원, 네트워크를 제공해 성장을 돕는 모델이다."

    스파크랩은 1년 2회 기수제로 스타트업을 선발해 지분 일부를 받고 5만달러(약 5700만원) 규모의 초기 자금(seed)을 투자한다. 프로그램에 선발되면 3개월 간 사무 공간, 멘토링, 클라우드 서비스, 글로벌 네트워크를 지원받을 수 있다. 10기까지 졸업한 스타트업 중 74%가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했을 정도로 보육 성과도 양호하다. 미국, 중국, 호주, 대만 등 해외 6개 지역에 합작 법인이 있으며 벤처캐피털(VC) 계열사인 스파크랩 벤처스, 스파크랩 글로벌 벤처스도 운영한다.

    ◇ 누가 실행력 있느냐의 싸움…본질에 집중하도록 도와

    -실행력을 강조하는 까닭은.

    "90년대와 지금의 창업 환경은 상당히 달라졌다. 돈이 없어도 굉장히 많은 걸 할 수 있는 시대다. 오픈 소스로 필요한 소프트웨어 구할 수 있고, 비교적 저렴하게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할 수 있다. 웹사이트도 혼자 만들 수 있다.

    창업 비용이 거의 안 든다. 결과적으로 스타트업이 많아졌다. 누가 실행력 있느냐의 싸움이 된 것이다. 신속히 가설을 검증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단순히 돈만 투자한다고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게 아니다.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YC 같은 액셀러레이터가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국엔 대형 VC에도 창업가 출신이 많다."

    스파크랩 1기 하형석(왼쪽) 미미박스 대표, 스파크랩 5기 강병규 제노플랜 대표. 미미박스는 스파크랩 졸업 후 2013년 미국 액셀러레이터 YC의 투자를 받았다. 미미박스는 현재까지 약 2200억원을 투자 받았다. 개인 유전자 분석 스타트업 제노플랜은 작년 8월 GC녹십자홀딩스 등으로부터 약 148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스파크랩 홈페이지 캡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 와홈이라는 가사 도우미 중개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1인 가구가 가사 도우미 서비스를 많이 사용할 거란 가설을 세웠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1인 가구는 설거지가 쌓여 더 이상 사용할 접시가 없을 때까지 청소를 안 했고, 오히려 신혼부부나 주부 수요가 많았다. 1인 가구가 한 달에 한 번 청소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신혼부부나 주부는 1~2주에 한 번 서비스를 이용하는 식이었다. 결과가 예측과 다를 때도 많기 때문에 실행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를 수용해 와홈은 빠르게 타깃 고객을 변경했다."

    -스파크랩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리 프로그램을 거친 스타트업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본질에 집중하게 도와준다는 거다.

    바꿔 말하면 정확한 핵심성과지표(KPI)를 선정해 달리고 있는지 점검해주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지표를 목표로 한 사례는 많다. 앱 재방문율이 중요한데, 다운로드 수만 늘리려고 노력하는 식이다. 너무 많은 KPI를 달성하려고 애쓰느라 가장 중요한 지표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부분은 어떻게 돕나.

    "기술 관련 문제가 있다면 기술 전문 벤처파트너가 도움을 주고, 사용자 경험(UX) 전문가, 사업개발 전문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스타트업 팀을 밀착 지원한다.

    파트너들의 해외 네트워크가 풍부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해외 기업과 연결해준 사례도 많다. 음반 제작 스타트업 뮤즈라이브와 세계 최대 음반사 유니버설 뮤직을 연결해 주기도 했다."

    ◇ 한국이 성공하려면 스타트업 성공해야…창업 노하우 공유 필요

    -투자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건은.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건은 크게 두 가지다. 앞서 언급한대로 실행력이 있는지를 본다. 미미박스의 경우 창업 당시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다른 스타트업이 있었고, 후발 주자였는데 결국 경쟁에서 이겼다. 프로그램 기간 중 모바일 앱을 만들라고 조언했더니 한 달 만에 만들어 왔다.

    어떤 창업가는 머리로만 구상을 하는데, 다른 창업가는 구상을 행동을 옮겨 테스트해보고 결과까지 가져온다. 그런 회사에 투자하려고 한다.

    두 번째는 내가 그 회사에 합류하고 싶은지 상상해본다. 내가 이 회사에 도움을 줬을 때 급격한 성장이 가능할지 그려보는 거다. 경험에서 비롯된 직관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팀웍, 시장 등 다른 요건도 검토한다."

    작년 하반기 선발된 스파크랩 12기 스타트업 목록. /스파크랩 홈페이지 캡처
    -목표는 무엇인가.

    "스파크랩에 합류할 때 이한주 제너럴 파트너가 했던 제안이 생각난다. ‘우리가 바꿀거야(We’re gonna change things)’였다. 한국이 성공하려면 스타트업이 성공해야 한다. 한국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실리콘밸리 같은 생태계를 만들려면 연쇄창업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창업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그 경험과 노하우를 다시 공유하는 방식으로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 일들을 하고 싶다."

    -예비 창업가를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한국 젊은이들, 창업가들 정말 훌륭하다. 기술, 아이디어, 실행력 모든 면에서 그렇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는 수준이다.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면 좋겠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