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로봇 사용률 1위인 한국, 로봇 만드는 기술은 '걸음마'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입력 2019.03.04 03:08

    [질주하는 세계 - 기업] 초라한 한국의 로봇 산업
    제조업 강국이라는 한국, 알고보니 일본산 로봇에 의존
    삼성, 갤럭시 제작 위해 1억원짜리 화낙 제품 2만대 주문

    한국은 반도체·자동차·디스플레이·철강·조선 등 제조업 분야의 세계적인 강국(强國)이다. 이렇다 보니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을 가장 많이 쓰는 국가이기도 하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한국은 근로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대수가 710대(2017년 기준)로 세계에서 가장 로봇 밀집도가 높은 나라다. 세계 평균 로봇 밀집도(85대)보다 8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연간 산업용 로봇 구매 대수도 3만9700대로 중국(13만7900대), 일본(4만5600대)에 이은 3위다.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 이용률 가장 높은 한국 외
    하지만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한국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상위 10위에는 일본·독일·스위스 기업들이 즐비하지만, 한국 기업은 현대중공업지주 한 곳만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주요 산업 분야가 대부분 정부 주도로 '국산화'가 이뤄졌지만, 로봇만큼은 예외였던 셈이다. IT(정보기술) 업계 관계자는 "지난 30여년간 제조업 강국의 길을 달려온 한국의 뿌리는 결국 일본산(産) 산업용 로봇이었던 셈"이라며 "로봇 시장은 기술 장벽이 높아 일본 의존을 벗어나려고 해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 기반에는 일본 로봇과 부품

    현대중공업지주의 로봇 사업 부문이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3%다. 그나마 대부분 내수(內需) 판매다. 유럽·미국·일본은커녕 중국에도 거의 팔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가 작년 7월 산업용 로봇 중소업체인 로보스타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작년 말 조직 개편을 통해 로봇사업센터를 신설했지만 아직 별다른 반향이 없다. 산업용 로봇뿐만 아니라 재난 로봇, 협업 로봇, 애완용 로봇 등 전 분야를 통틀어봐도 눈에 띄는 국내 기업은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네이버가 각각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 전시회 'CES'에서 노인 돌봄 로봇, 공기 질 측정 로봇 등과 로봇팔 앰비언트를 발표했지만 아직 시장 진입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 산업용 로봇에 의존하는 추세는 앞으로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고 제품을 만들려면 최고의 산업용 로봇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 시리즈의 매끄러운 곡면 처리를 구현하기 위해 일본 화낙에 의존한다. 스마트폰 테두리를 보호하는 철판을 곡선으로 매끄럽게 깎아주는 기술은 일본 화낙의 절삭기기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대당 1억원씩 하는 절삭기기를 한꺼번에 2조(兆)원어치(2만대) 주문해 IT 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애플의 아이폰도 같은 장비를 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경쟁사와 똑같은 기계를 쓰지 않으려 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자동차나 반도체·철강 등 다른 분야도 스마트폰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발목 잡힐라

    전문가들은 산업용 로봇 분야의 일본 의존이 한국의 미래 제조업 경쟁력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이 세계 선두권인 TV·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은 1990년대만 해도 일본이 1위였던 분야다. 일본의 소재·부품을 사서 일본산 공장 기계로 대량생산해 일본을 넘어선 게 우리의 경쟁력이었다. 우수한 인재(人材)들이 밤낮없이 공정 기술을 연구해 일본 경쟁사보다 수율(收率·투입 원자재 대비 완제품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성공 방정식이었다.

    일본 로봇 기업이 주도하는 '완전 무인화' 공장이 확산돼 로봇이 제조를 전담하면 이런 격차가 사라진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이 5G(5세대 이동통신)망과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에 연결되면 사람보다 훨씬 방대한 작업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로봇 스스로가 다양한 업무를 익히고, 주변 로봇들과 의사소통하면서 공장 전체를 관리하기도 한다. 누가 더 좋은 로봇을 배치하느냐가 생산 공정을 좌우하는 것이다.

    한양대 김창경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한국의 제조업 강국이라는 타이틀은 '조립, 제조 공정 기술'에 국한돼 있는데, 앞으로 이 분야까지 일본의 산업용 로봇이 장악할 경우 한국의 제조 경쟁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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