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요청대로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 '반도체 클러스터(집적 단지)'가 만들어지면 경기도 남부 지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 거점으로 부상한다.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용인시 원삼면의 바로 옆에는 삼성전자의 17개 메모리 공장(기흥·화성 라인)이 있다. 여기에 경기도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의 기존 반도체 단지까지 합치면 '반도체 트라이앵글(삼각형)'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삼각 벨트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500곳 안팎의 국내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 몰려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예상대로라면 반도체 트라이앵글에서만 연간 70조~100조원의 반도체가 제조될 것"이라며 "중국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에 맞설 강력한 대한민국 제조창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SK그룹이 주도하는 SPC(특수목적법인)인 용인일반산업단지가 반도체 부지 조성을 위한 투자의향서를 제출하자, 용인시와 경기도는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경기도는 "투자 당사자인 SK 측이 용인을 신설 공장의 최적지로 꼽은 만큼 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 입지를 선정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10년간 이 지역에 120조원이 투자되면 1만7000여명의 직접 고용 효과는 물론이고, 협력업체의 고용 인력까지 감안하면 고용 파급 효과는 1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용인시 원삼면 일대 부동산 가격이 2~3개월 새 2배 이상 뛰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의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이 지역의 부동산 중개소 사장은 "비싸게 주고 땅을 사고 싶어도 매물이 싹 다 들어갔다"고 말했다.

◇기존 반도체 단지와 상승효과

SK하이닉스 측이 용인시를 선택한 이유는 주변에 다른 반도체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기흥·화성 반도체 공장을 중심으로 장비·부품 협력사가 대거 밀집해 있다. 여기에 용인은 수도권에 사는 연구원이 출퇴근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우수 인재 확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서울과의 거리가 무시 못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측은 "정부의 반도체 단지 승인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즉각 수십조원 단위의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산업 클러스터’로 지목된 용인시 원삼면 일대. SK하이닉스는 이곳 부지 448만㎡(135만평)에 향후 10년간 1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도 민간의 투자 의욕을 돕기 위해 각종 절차를 서두르는 분위기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앞선 이달 중순 "다음 달까지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입지를 선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정부의 승인 절차를 모두 거친 뒤, SK하이닉스가 실제 투자를 집행할 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수도권은 공장 신설이 제한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재하는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공업 용지로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다 교통·환경 등 각종 영향 평가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 엄청난 규모의 부지 조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땅을 고르는 작업에만 1년 정도 걸린다. 평탄 작업에만 1조원 이상이 드는 대공사이기 때문이다. 특수목적법인이 부지를 조성하고 SK하이닉스에 분양하는 2022년 초에야 반도체 공장이 착공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목표는 2024년 중반부터 이곳 4개 신설 공장에서 D램 메모리 반도체와 차세대 반도체를 양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中 굴기에 맞설 '한국 반도체 삼각 벨트'

용인·화성·이천 일대의 반도체 트라이앵글 제조 거점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모가 될 전망이다. 3곳 단지에서 일하는 반도체 인력만 7만명에 달하고 반도체 라인이 20개 안팎으로 가동하는 '세계의 반도체 공장'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면 상승효과(시너지)는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얻을 수 있다. 삼성전자의 관계자는 "당장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최고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도 이곳을 한번 들르지 않고서는 안 되는 거점이 될 것"이라며 "삼성과 SK가 우수한 협력사를 대거 육성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말했다. 당장 중국의 반도체 굴기 위협에도 상당한 견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신규 반도체 단지 유치를 희망했던 경기 이천, 충남 천안, 충북 청주, 경북 구미 등 다른 4개 지자체는 반발하고 있다. 천안시의회는 "신규 반도체 단지의 용인시 입주는 국가 균형 발전과 자치분권이라는 현 정부의 기조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치적인 지역 안배와 같은 돌발 변수가 나오면 예상 일정보다 더 늦게 정부 승인이 날 수도 있다"며 "벌써부터 지역의 표심을 의식해 최종 결정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룰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