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토종 검색엔진 레비서치의 안상일(38) 대표에게는 '구글에 도전하는 학생 벤처인'이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8년 초 안 대표는 8억원 빚을 진 실패한 청년 기업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강력한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후보인 하이퍼커넥트의 대표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동영상 채팅 앱(응용프로그램) '아자르(Azar)'로 잘 알려진 하이퍼커넥트는 지난해 매출이 2017년보다 60% 이상 급증하며 1000억원을 돌파했다. 아자르는 전 세계 사용자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유료 앱이다. 비(非)게임 앱 중 전 세계 매출 순위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동 하이퍼커넥트 본사에서 안상일 대표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하이퍼커넥트는 동영상 채팅 앱 아자르로 지난해 전 세계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안 대표는“올해부터 제대로 된 전략 아래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산 고민까지도…모텔촌서 1인 작업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동 본사에서 만난 안 대표는 레비서치의 실패 원인을 "준비 없이 유행을 좇은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청년 창업자였던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검색엔진 '첫눈'을 네이버에 매각해 큰돈을 버는 걸 보고 '검색엔진이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검색 기술이 굉장히 복잡한 것인데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창업했다"고 했다. 안 대표를 포함해 공동 창업자 7명이 모은 자본금 5억6000만원이 사라지는 데는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안 대표는 "수익 모델이 없다 보니 어느 곳에서도 투자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타던 차, 청약저축, 월세 보증금까지 다 털어 직원들 퇴직금을 주고 나니 그에게는 8억원의 빚만 남았다. 하지만 땡처리 업자들이 마지막 남은 사무실 책상까지 들고가던 날, 환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로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안 대표는 "그때부터 빚부터 갚기 위해 모텔촌 한가운데 있는 값싼 오피스텔에서 먹고 자며 프로그램 개발부터 기획안 외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말했다. 병역특례로 일했던 게임회사 네오위즈에 서비스 아이디어를 팔기도 하고 지인과 사진 스튜디오를 동업하기도 했다. 직원들이 퇴근한 뒤 밤새 작업하다가 소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직원들이 오기 전에 일어나는 생활이 이어졌다. 촉망받던 젊은 창업가에서 다시 인턴 생활을 하면서 김밥을 팔고 유리창 청소를 하던 대학생 때로 돌아간 셈이었다. 그는 "사실 개인파산신청도 생각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그건 못 하겠더라"고 했다.

◇채팅앱 아자르로 대성공

그를 다시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는 창업가로 일으켜 세운 것은 채팅 앱 아자르다. 2013년 11월 출시한 아자르는 8주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안 대표는 "어렵게 빚을 갚으면서도 2010년부터 정강식 CTO(최고기술책임자)와 텍스트 채팅, 음성 채팅 같은 앱을 6~7개 만들어 테스트를 시작했다"며 "영상 채팅 앱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자르(스페인어로 우연이란 뜻)'라고 이름을 붙여 출시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름 그대로 우연처럼 성공이 찾아왔다. 그는 당초 시장 규모가 작은 뉴질랜드에 우선 출시해 성공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 했는데 구글플레이 조작 실수로 전 세계 각국에 동시 출시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만에서 대박이 터졌다. 대만에서만 하루에 20만명씩 다운로드를 받아갔다. 대만에 이어 터키 등 중동에서도 인기 앱에 오르며 현재 아자르는 전 세계 230개국에서 19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안 대표는 "출시 첫날 2만원을 벌었는데 이때부터 번 돈은 1년 동안 무조건 페이스북 마케팅에 다시 투자했다"고 말했다. 직원 규모가 채 30명이 되기도 전에 회계사, 변호사를 뽑을 정도로 재무와 경영에도 신경 썼다고 했다. 그는 "실패 경험을 거울삼아 매출이 0이 되더라도 24개월은 버틸 수 있는 자금을 은행에 넣고 건드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퍼커넥트는 올해 아자르의 비즈니스 모델을 다양화하고 인공지능(AI)·머신러닝(기계학습) 분야 신사업을 시장에 안착시키며 해외 시장 공략을 확대할 방침이다. 그는 "시장 검증을 마친 AI 카메라 앱 '피카이' 등을 조만간 출시한다"며 "지금까지는 운 좋게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냈다면 올해부터는 제대로 준비해 해외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