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공시價 개입은 정당 권한"… 법조계 "재량권 넘어선 직권남용"

입력 2019.01.05 03:07

개입 없었다더니 하루만에 시인

국토교통부가 민간 전문가인 감정평가사들의 표준지 공시지가 평가에 구두(口頭) 개입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국토부 장관에게 해당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량권을 넘어선 것으로 직권남용죄와 권리행사방해죄, 강요죄 등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가 토지만 차등적으로 공시지가를 많이 올리라는 지침을 제시한 것은 헌법상 평등권이나 재산권, 행정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는 4일 보도 참고 자료를 내고 "지난해 12월 중순 표준지 공시지가(안) 심사 과정에서 국토부 실무자가 심사 담당자(감정평가사 등)에게 그동안 시세가 급등하여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토지에 대해 공시 가격의 형평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취지를 전달한 바 있다"고 밝혔다. 3일 본지 통화에서는 "지침을 내린 사실이 없다" "국토부는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국토부는 이날 "감정평가사에게 정부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평가사가 가져온 공시 가격의 적정성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이 국토부에는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희국 전 국토부 차관은 "공시지가를 정부가 정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황당하다"며 "법이 왜 굳이 여러 평가사를 투입하고, 부적정하다고 판단하더라도 다시 평가사에게 재조사하도록 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공시지가 결과를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관계 법령 어디에도 없다"며 "특히 공시지가는 세금을 걷는 잣대인데, 세금을 어떻게 일개 부처가 함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느냐"고 덧붙였다.

'고가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를 100% 올리라'는 구두 지시 외에 추가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4일 감정 평가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 산하 한국감정원은 평가사들이 조사한 공시지가를 입력하는 국가 전산 프로그램에 '공시 참고 가격'이란 항목을 신설했다가 폐기했다. 한 평가사는 "말하자면 '국토부 권장 가격' 같은 것이었는데 평가사들이 항의하자 사흘 뒤 해당 항목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감정원 측은 "평가사 업무를 덜어주기 위한 순수한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국토부는 정부의 권한이라고 했지만 구두 개입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됐고 문서는 전혀 남지 않았다. 한 평가사는 "권한이 있다면 왜 떳떳하게 회의록 등 공식 문서를 남기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배병일 전 법학교수협회장은 "직권 남용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진녕 변호사는 "구두로 구체적 지시를 내린 것은 재량권을 일탈한 위법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또 "감정평가사는 민간인이지만 '공무를 맡은 민간인'(공무 수탁 사인)"이라며 "이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고, 따르지 않으면 징벌적 성격의 '집중 조사'를 받게 한 것 등은 직권남용죄와 권리행사방해죄, 강요죄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검찰 간부는 "현 정부가 적폐 청산에 적용한 직권남용죄가 이 건에도 똑같이 적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 변호사는 "개입 자체를 100% 불법이라고 보기는 어정쩡하지만 정부가 공인한 민간 전문가인 감정평가사를 스스로 유명무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특히 고가 주택만 차등적으로 많이 올리라고 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권이나 행정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국토부 해명에는 앞뒤 안 맞는 부분도 있다. 국토부는 '지역 간 네 차례 가격 균형 회의도 모두 실시한 바 있음'이라고 했지만, 모두 작년 12월 3일 A 사무관이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기 전에 이뤄진 것이다. 지침에 따라 고가 토지만 공시지가를 수정한 뒤에는 균형 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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