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년 역사의 미국 백화점 시어스(Sears)가 파산했다. 미국 중산층에게 ‘쇼핑의 기쁨’을 느끼게 하며 성장한 미국 최고 백화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어스 파산은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언론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시어스 파산의 주범으로 아마존을 꼽는다. 아마존의 유통혁신이 곧 미국 백화점에 공포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오프라인 리테일기업의 몰락이 정말 온라인 때문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지난 10월 찾은 로스앤젤레스(LA) 빌리지 앳 오렌지 쇼핑몰 내 시어스는 너무 형편없었다. 1층을 꽉 채운건 시대에 뒤떨어진 옷, 액세서리 등이었다. 고객보다 직원이 더 많았다. 시어스는 소비 트렌드가 급변하는데도 현실에만 안주한 채 변화를 거부했다. 가격이라는 가치에 방점을 둔 할인점 시대에 모호한 가격과 타깃 전략으로 소비자와 멀어졌다.

이는 유통업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없는 사모펀드 경영진의 문어발식 사업 다각화, 관료주의적 경영진의 오판 때문이다. 백화점 산업의 호황기를 주름잡던 시어스를 몰락의 길로 인도한 것은 아마존이 아니라 업(業)의 본질을 망각한 리더와 잘못된 전략이었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이미 낭떠러지 앞에 선 전통 유통기업을 아마존은 살짝 밀어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시어스의 파산은 국내 유통업계에도 위기감을 불러왔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유통 대기업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무르며 혁신의 기회를 놓쳐 왔다. 어딜가나 똑같은 천편일률적인 상품과 브랜드, 비슷한 식음시설(F&B), 동일한 구조 등 간판을 떼면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 주말 강제휴무, 생계형 적합업종 등 소비자 편의와 유통산업 변화를 무시한 정부 규제, 상생(相牲)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은 혁신의 날개를 꺾어왔다. 예를 들어 정치권이 추진 중인 복합쇼핑몰 강제휴무 제도는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내 유통 대기업의 모습은 ‘성장통을 회피한 늙어버린 아이’와 같다. 미국 아마존과 국내의 롯데닷컴, 신세계닷컴은 1990년대 중반 같은 시기에 출발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현격히 다르다. 혁신을 주도해야 할 대기업들은 정부의 면허를 주는 면세점 사업을 하겠다며 제로섬 게임에 열중했다.

지금 국내 백화점들은 유통회사라기보다 임대사업자에 가깝다. 브랜드에 매장을 빌려주고 매출의 일정 부분을 임대수수료로 받는 장사를 하다보니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유통의 국경이 사라지고, 아마존·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공룡들의 승자독식 구도가 강해지고 있다. 알리바바는 "예선을 거치지 않고 월드컵 본선으로 간다"는 구호 아래 처음부터 국제화 전략에 집중했다. 반면 국내 유통기업은 아직 이렇다할 글로벌 전략이 없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칸타월드패널은 아시아 이커머스 시장을 앞으로 중국, 한국이 선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국내 유통업계는 글로벌 이커머스 전략은 없고, 공인인증서가 외국 기업을 막아준 국내 시장에서만 힘을 쓰고 있다.

지금 한국 유통업계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장기전략 없이 임시변통적 대응에 나서면서 또 다시 20년을 잃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혁신으로 글로벌 기업과 제대로 경쟁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