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머리띠'에 무너지는 고용원칙

조선일보
  • 곽창렬 기자
    입력 2018.12.01 03:08

    잡월드, 공개채용 원칙 깨고 민노총 138명을 자회사 정규직 전환
    민노총 실력행사에 굴복… 잡월드 노조 "청년 일자리 외면" 비판

    어린이와 청소년의 직업 체험 전시관을 운영하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한국잡월드' 노사(勞使)가 30일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직원 138명을 추가로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회사의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인 민주노총에 정부와 공공기관이 끌려 다니다 굴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잡월드 노경란 이사장과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은 이날 16시간 마라톤협상 끝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은 민노총 조합원 138명을 자회사인 '한국잡월드파트너즈'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합의안에 서명했다. 합의안에는 향후 비정규직 근로자의 직접고용 등을 협의할 기구인 '상생발전협의회'의 출범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19일부터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던 민노총 소속 비정규직 직원들은 이날 43일 만에 파업을 끝냈다.

    행정·사무 담당 정규직 56명과 직업체험강사 등 비정규직 338명이 근무하는 한국잡월드는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에 따라 작년 8월 노·사·전문가협의체를 꾸렸다. 이 협의체에서 잡월드 본사가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를 만들어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협의체에 참여한 비정규직 대표 9명 중 7명도 찬성했던 방안이다. 그런데 민노총이 이를 제지했다. 이들은 "잡월드가 직접 고용하라"며 파업을 시작했다. 한국잡월드는 민노총 조합원들에게 "11월 8일까지 자회사 채용에 응하지 않으면 빈자리는 청년 구직자에게 기회를 주는 '공개경쟁채용' 방식으로 채우겠다"고 최후 통보했다. 민노총은 계속 떼를 썼다. 잡월드와 고용부 경기지청을 점거했고,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 열흘간 단식농성했다.

    이날 사측이 민노총에 대폭 양보함으로써 정부와 공공기관의 고용 원칙은 무너지게 됐다. 잡월드 자회사의 공개 채용 계획도 없던 일이 되면서 청년들의 취업 기회도 사라졌다.

    잡월드 사태는 결과적으로 '민노총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환 정규직 노조위원장은 "11월 8일 까지 자회사 채용에 응시하라고 기회를 줬는데도, 또 한번 채용에 응시할 기회를 준 것은 민노총에 채용 특혜를 베푼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향후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자화자찬했다.

    한편 이날 합의안에는 노사동수(同數)로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과 처우 개선 등을 마련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자회사 소속 민노총 조합원들은 앞으로 협의회를 통해 본사 직접고용을 계속 주장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잡월드 내부는 심각한 갈등에 휩싸이게 됐다. 민노총 소속 비정규직 직원들은 자회사 채용에 미리 응한 기존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배신자'라는 꼬리표 붙이고, 근무지에서 에워싸는 등 비판해왔다. 자회사 채용에 응한 한 직원은 "우리를 신체적·언어적으로 힘들게 한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게 두려워 퇴사를 고려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협상을 이끌었던 노경란 잡월드 이사장은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민노총에 원칙을 고수하며 강경 대응해 왔다. 하지만 지난 26일부터 "민노총 직원들에게 추가 채용 기회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식으로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이 때문에 이번 협상 타결에 윗선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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