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새를 이용해 번식하는 나무의 전략

조선비즈
  •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입력 2018.12.01 05:00

    이런 것도 이상 기후일까요? 첫눈이 휩쓸고 갔는데도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지 않아 정말 이상합니다. 이러다가도 수틀리면 칼바람을 휘몰아치며 폭설을 퍼부어대겠지만 당분간은 이렇게 온순하게 굴어도 괜찮으니 편한 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언젠가 올 추위를 서둘러 맞이할 마음은 추호(秋毫)도 없으니까요.

    낙엽도 끝나가는 가을 풍경
    아무튼 가을의 끝자락에 선 것만은 분명합니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붉다는 낙상홍(落霜紅)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지도 오래입니다. 붉은 열매가 아름다워 많이 심기 시작한 낙상홍은 일본 원산의 조경수입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수목원과 식물원은 물론이고 길가나 공원 주변에도 많이 심습니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붉다는 낙상홍의 열매
    고속도로 주변에는 미국낙상홍을 심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낙상홍은 낙상홍보다 열매가 더 커서 무리 지어 심어놓으면 겨우내 보기가 좋습니다. 물론 새들이 역시 미제가 일제보다 크다며 좋아할 리는 없지만 말입니다.

    미국낙상홍의 열매는 낙상홍보다 크고 실하다
    이렇게 붉은 열매를 맺는 식물들은 대개 새들에게 열매를 제공해 먹히는 전략으로 씨를 퍼뜨립니다. 새들의 눈에 잘 띄는 색이 붉은색이기 때문입니다. 붉은색으로 익는다고 해서 다 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아니고, 새가 한 입에 삼키기 좋은 크기의 열매여야 합니다.

    낙상홍 같은 것은 작은 새의 먹이가 되어 주변 숲으로 배설되므로 야생의 공간으로 번져 자라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눈에 띌 정도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수년 후엔 낙상홍이 숲에 넘쳐나는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가막살나무의 열매도 작은 편에 속합니다. 작은 새들에 의해 씨가 운반되기는 낙상홍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막살나무의 붉은 열매
    그런데 수목원에서 가막살나무의 열매를 살펴보다가 거미줄 같은 것이 얽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거미가 이렇게 굵은 줄을 엉성하게 쳤을까 하고 살펴보다가 그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건 겨우살이의 씨에 달린 줄이었습니다.

    끝을 보니 역시나 씨 같은 것이 달려 모빌처럼 대롱거리고 있었습니다. 겨우살이는 노란색 열매를 맺고(붉은겨우살이는 붉은색 열매) 새들에 의해 먹히는 전략을 쓰는데, 끈적끈적한 과육 속에 줄 같은 조직이 씨와 붙어 있어 나뭇가지에 부착될 확률을 더욱 높입니다.

    크고 좋은 나무에 떨어질수록 세 들어 살기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게 안 되면 작은 나무에라도 붙어 살아볼 때까지 살아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양분의 공급이 풍족하지 못하다 보니 관목에 붙은 겨우살이는 오래 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땅바닥에 떨어져버리면 그걸로 끝장이고요.

    줄이 걸려 늘어져 달린 겨우살이의 씨
    백당나무도 열매가 붉게 익는 나무입니다. 낙상홍이나 가막살나무보다는 큰 열매니까 아마 산에 사는 좀 더 큰 새한테 배달을 맡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 새들은 아무래도 행동반경이 넓을 테니 식물의 씨를 좀 더 멀리 실어다 줄 겁니다.

    백당나무의 열매는 약간 큰 편이다
    사실 고등한 식물일수록 자식을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라게 하려는 전략을 씁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일단 부모와의 경쟁을 피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자식이 가까이서 산다는 건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식이 부모의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해 빛과 물과 양분을 놓고 싸워야 함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가까이서 산다는 건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커다란 잎과 가지가 햇빛을 가려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서로가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보다 넓은 지역에까지 종족을 퍼뜨리려는 의도입니다. 한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식물이다 보니 후손이라도 멀리 퍼뜨려야 종족 보존의 목적을 달성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을 겁니다. 부모가 살던 곳과 다른 환경조건을 가진 곳이더라도 적응해 살 수만 있다면 지구 정복의 꿈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셈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사람과는 참 대조적입니다. 사람의 경우 부모 눈에 자식은 언제나 자식으로 보여서 가까이에서 끝까지 부모 역할을 하려 하니까요.

    붉은 열매는 아니지만 후박나무의 큼지막한 열매는 커다란 체구의 흑비둘기에 맞춰져 있는 듯합니다. 천연기념물 제215호인 흑비둘기는 후박나무의 열매를 즐겨 찾는데 후박나무의 열매 크기가 흑비둘기의 입 사이즈에 딱이다 싶은 걸 보면 자연의 이치가 참 오묘하다 싶습니다.

    후박나무 큰 열매를 따먹는 큰 체구의 흑비둘기
    처음에는 아마 새들이 자신의 입 크기에 맞는 열매를 선택했을 겁니다. 그러다 나무들이 자신의 열매를 효과적으로 멀리 퍼뜨려줄 입 크기를 가진 새들을 선택해 열매가 지금의 크기가 되도록 조율했을 겁니다. 일종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사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상당수의 동식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중입니다. 진화는 끊임없이 진행되는 것이므로 완성형은 어디에도 없고 모두 다 진행형입니다.

    소나무는 씨에 얇은 날개가 달려 있으므로 바람의 힘을 빌려 멀리 퍼져 나가는 방식으로 번식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일전에 쇠박새가 소나무의 솔방울에 매달려 씨를 꺼내먹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나무가 의도한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소나무의 씨가 작은 새의 먹이로도 제공되는 것이었습니다.

    솔방울 속의 씨를 빼 먹는 쇠박새
    식물이 꼭 한 가지 방법으로 씨를 퍼뜨릴 거라는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서라도 의도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지금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필연이 알고 보면 우연한 시작을 출발점으로 해서 거듭되고 거듭되면서 최적화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침엽수 중 일부가 바람보다는 새를 이용하는 방식이 좋겠다 싶어 씨에 달린 날개를 점점 줄이면서 맛난 부분을 만들어 씨를 둘러싸기 시작한 몇 천만 년의 결과가 혹시 주목이나 개비자나무 같은 나무의 출현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주목의 붉은 열매
    너무 엉뚱해서 말도 안 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일보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세상입니다. 콘 모양의 열매를 맺는 침엽수가 어째서 달착지근한 헛씨껍질에 싸인 열매를 만들게 됐는지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면 상상력에서 답을 뒤적이는 게 나을지 모릅니다. 어차피 과학이란 상상력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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