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중국도 민간에 맡겼는데… 한국선 '관제 페이'

조선일보
  • 정한국 기자
    입력 2018.08.03 03:08

    수수료 제로 '서울페이' 논란

    지난달 2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제로(0)로 해주는 '서울페이'의 업무 협약식이 열렸다. 행사엔 허인 국민은행장과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참여해 "서울시 사업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카드업계에서는 "계열사인 신한카드나 국민카드를 위협할 수 있는 사업에 같은 금융그룹의 은행들이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희한한 상황"이라는 말이 나왔다.

    서울페이는 수수료를 내야 하는 신용카드 결제망을 이용하지 않고, 스마트폰 앱 등을 이용해 소비자 계좌에서 소상공인 계좌로 돈을 바로 보내는 방식이다. 앱투앱(App to App) 결제라고도 한다. 카드 결제와 직접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부르자 은행들이 '억지 춘향' 격으로 참여를 선언하게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서울페이 같은 수수료 없는 결제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금융권에선 수수료 인하를 명분으로 공공 영역이 시장에 개입하는 '관제(官製) 페이'를 '정부 만능주의' 산물로 보고 있다.

    ◇"소비자가 페이 쓰라고 정부가 결정하는 꼴"

    신용카드, 앱투앱 결제 등 결제방식이 경쟁하면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더 편한 것, 더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관제 페이는 정부·지자체 등 공공 영역이 민간에 개입해서 수수료와 혜택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페이의 수수료가 '제로(0)'가 되는 것은 참여하는 민간 은행·기업이 수수료를 받지 않는 걸 전제로 한 것이다. 민간이 비용을 부담하는데 관(官)이 생색을 내는 셈이다. 여기에 40% 소득공제율이라는 당근까지 꺼내들고 한쪽을 편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가맹점이 수수료를 부담하는 '신용카드 결제' 방식은 나쁘고, 수수료가 없는 '서울페이' 방식은 '착한 소비'라고 선을 그어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전체 카드 사용액 중 카드 종류별 비중 그래프

    관제 페이가 알뜰주유소처럼 존재감 없는 성과에 그친 관(官) 주도 시장개입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알뜰주유소도 2011년 "유가를 낮추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도입했지만, 알뜰주유소가 기름값 인하에 기여했는지는 지금도 논란이다.

    ◇이미 민간이 하던 사업… '옥상옥' 우려

    금융권 안팎에선 서울페이라는 앱투앱 결제가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한 소비자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서울시가 내건 '소득공제율 40%' 혜택도 세수가 줄어들 수 있어, 부처 간 협의에서 관철될지 장담할 수 없다.

    소득공제 혜택이 확정되어도 소비자들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 앱투앱 결제는 은행 계좌에 잔액이 남아 있어야 결제가 가능한 체크카드와 유사하다. 이에 비해 신용카드는 계좌 잔고가 부족해도 어디서나 물건을 살 수 있고, 카드사가 제공하는 포인트 적립이나 각종 혜택도 많다. 이 때문에 30% 소득공제 혜택이 있는 체크카드도 사용 비중이 최근 3년째 2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실은 잘 모른 채 소상공인 수수료 인하라는 정치적 구호만 앞세운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욱이 앱투앱 결제는 카카오나 페이코는 물론 핀테크 스타트업 서비스인 토스 등이 이미 민간에서 만들어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은행권도 내년 상반기에 비슷한 형태의 결제시스템을 내놓기로 했다. 앱투앱 결제를 포함한 전체 간편결제 금액은 작년 하루 평균 672억원으로 전년보다 158% 늘었다. 그러나 하루 신용카드 결제액 1조7600억원과 비교하면 3.8%밖에 되지 않는다. 규제에 막힌 게 아니라 시장에서 선택을 받지 못한 서비스이기에, 공공 영역이 개입하면 자칫 효율만 떨어뜨리는 '옥상옥'이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 게 아니라 민간이 만든 신규 비즈니스에 문제가 없도록 지원만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앱투앱(App to App·앱에서 앱으로) 결제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자기 계좌에서 상점 계좌로 바로 돈을 보내는 방식으로 물품이나 서비스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는 VAN(밴)사 등 카드 결제 시스템을 관리하는 중개 업체를 거쳐 결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도중에 수수료가 발생한다. 하지만 앱투앱 결제는 밴사 등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중개 수수료가 훨씬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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