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반(反) 암호화폐 정책에 대한 지방 정부의 저항이 시작됐다

입력 2018.07.28 06:00

한국은 암호화폐공개(ICO, 가상화폐공개)를 금지한 전 세계 2개 국가 중 하나다. 다른 한 곳은 중국이다. 지난해 9월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기술·용어 등과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할 방침”이라고 엄포한지 어느새 1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올 초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연이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 블록체인 엑스포 2018’에 가보니, ‘한국인과 중국인은 우리 프로젝트 ICO에 참가하지 마라. 불법이다’라는 안내문을 내건 부스가 있었다. 반(反) 암호화폐 정책 경쟁에서는 한국 정부가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최근 정부의 행보에 ‘조직적’ 반기를 드는 집단이 있다. 자금 조달을 원하는 스타트업도 아니요, 국가 통제에 반발하는 시민 단체도 아니요, 암호화폐로 이익을 얻어보려는 투자자들도 아니요, 또다른 정부라는 점이 흥미롭다. 바로 지방 정부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더불어 민주당)은 지난 6·13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한국(부산)에도 스위스 추크(Zug)와 같은 크립토 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크립토 밸리는 암호화폐를 뜻하는 ‘cryptocurrency’와 마을을 의미하는 ‘valley’의 합성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추크에는 ICO를 하려는 250여개 블록체인 기반 기업이 몰려 들어 디지털 금융 허브로 거듭나고 있다. 11만명에 달하는 새 일자리도 생겼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무소속) 당선인은 ‘제주 코인’ 발행을 꿈꾸고 있다. 원 후보는 “제주미래투자(가칭)를 설립해 제주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교통, 행정, 공항, 항만, 물류 등 공익 목적으로 상용화하겠다”며 ‘블록체인 특구' 제주시 청사진을 내놓았다. 크립토 밸리 아이디어는 이철우 경북 도지사 당선인,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낙선)한테도 나왔다.

’행정 수도’ 세종시도 코인 기반 생태계를 그리고 있다. 스마트 시티 국가 시범 도시로 선정된 세종시는 시민들로부터 개인정보를 받고 그 댓가로 ‘세종코인’을 기본소득으로 제공하는 파격 실험에 나선다. 시민들은 공유 차량을 이용한 댓가로 세종코인을 낸다.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들은 수억~수십억원을 들여 해외에서 ICO를 진행했다. 보스코인은 스위스, 글로스퍼는 홍콩, 메디블록은 지브롤터에 각각 재단을 설립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해외 법무, 회계 법인의 배를 엄청 불려줬다. 모스코인을 만든 손우람 대표는 “정부 정책에 반대되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싱가포르에서 ICO를 했다”고 말했다.

ICO 불허,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엄포 등 중앙 정부의 일련의 조치에 대해 기업들은 순응하고 제 살길 찾아 해외로 떠나지만,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의 정책에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방정부들이 저마다 크립토 밸리를 조성하거나 코인을 발행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재원 마련이다. 블록체인 기업을 유치해 세수를 확보할 수도 있고 자체 코인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둘째는 거주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도시 거주 만족도를 높이는 데 코인이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방 정부의 행보가 중앙 정부의 입장 변화에도 영향을 줄까. 아니면 정부 - 정부 갈등으로 치닫게 될까. 통신 기업 KT는 낙관하는 편이다. 이 회사는 지방자치단체의 토큰 발행 수요를 간파하고 60여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K토큰' 세일즈에 나섰다. 많은 지자체가 종이 지역화폐를 활용 중이지만 지급·사용·환전 절차가 복잡해, K토큰과 같은 암호화폐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에 블록체인 기업을 만든 A 대표는 “나 같으면 지방 정부의 프로젝트에 기술 제공업체로 참여하지 않겠다. 나중에 중앙 정부가 위법이라고 하면 어떡하나. 기업에 가장 큰 리스크(위험 요인)는 ‘불확실성'이다"라고 말했다.

안타까운 것은 기업들의 ‘탈(脫) 한국’ 러시, 지방 정부의 조직적 저항에도 법무부나 금융위 등 당국은 암호화폐 정책 고도화를 업무 우선 순위에 올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가상화폐 급등과 투기 열풍에 급제동을 걸었던 것만으로도 제 할 일 했다고 자족하고 있다.

한 네티즌의 코멘트를 그대로 옮겨 적는다. 원희룡 지사가 해외에서라도 ICO를 추진해 제주 토큰을 발행하고 지역 발전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뒤다.

“무소속으로 유일하게 당선이 된 원희룡 지사에게 정부가 힘을 실어줄 지는 미지수입니다. 아이러니하게 국내 ICO 금지로 해외에서 ICO를 유치한다고 하는데 황당한 거 같네요. 국내 도지사가 발행을 한다는 코인을 해외에서 ICO를 한다는 이 아이러니한 일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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