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일 어디서 긁을지… 현대카드는 알고있다

입력 2018.06.07 03:07

혁신의 아이콘, 정태영 부회장 인터뷰
"우린 이제 금융사가 아닙니다, 데이터 사이언스 기업입니다"

보수적인 금융가에서 '브랜드 경영'으로 돌풍을 일으킨 현대카드 정태영(58) 부회장. 정 부회장은 2003년 현대카드 경영을 맡은 이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로 브랜드 경영, 디자인 경영의 등장을 알렸다. 이후 VVIP 고객을 겨냥한 블랙카드 출시, 세계적인 팝스타를 초빙한 수퍼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와 봉평장 살리기 등 이색적인 사회 공헌 프로그램으로 현대카드에 젊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잇따른 차별화 전략이 먹혀들면서 시장점유율 2%에 불과했던 카드사를 10년 만에 14%대로 끌어올렸다. '혁신 아이콘'으로 부상한 정 부회장이 최근 몇 년간은 '튀는 행보' 없이 조용히 지내는 듯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느라 대외활동을 절제했을 뿐이었다.

"5년 전부터 현대카드를 AI(인공지능)·머신러닝 등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를 하는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에 올인(all-in)해 왔습니다."

오랜만에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정 부회장은 "연내에 인프라 구축이 끝나면 내년부터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카드가 구축 중인 AI 기반 정보분석 시스템이란 고객들의 결제 정보를 1500가지 항목으로 분류하고 분석, 이를 사업 전반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매년 수백억원씩 투입하고, 디지털 전문 인력 350명을 추가 채용했다.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1층에는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일하는 공간 ‘카페&펍’이 있다. 지난 5일 ‘카페&펍’ 앞에서 현대카드 정태영(왼쪽) 부회장이 김홍수 경제부장에게 “현대카드를 ‘데이터 사이언스’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모든 금융사가 ‘구글’처럼 될 필요는 없지만, 도태되지 않으려면 금융업에만 갇혀 있어선 안 된다. ‘디지털 회사’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1층에는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일하는 공간 ‘카페&펍’이 있다. 지난 5일 ‘카페&펍’ 앞에서 현대카드 정태영(왼쪽) 부회장이 김홍수 경제부장에게 “현대카드를 ‘데이터 사이언스’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모든 금융사가 ‘구글’처럼 될 필요는 없지만, 도태되지 않으려면 금융업에만 갇혀 있어선 안 된다. ‘디지털 회사’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그는 "시스템이 완성되면 서비스의 질이 업그레이드된다. 예를 들어 30대 여성 고객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평소와 달리 병원을 자주 가고 출산·육아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거린 흔적이 포착되면, AI가 '고객이 임신했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이에 따른 맞춤 서비스·정보를 제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자동차 할부금융·리스를 이용하는 회원들에게 신차 정보를 줄 때 과거엔 타던 차와 비슷한 차종을 추천하는 게 상식이었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성향으로 파악된 고객에게는 과거에 중형차를 탔더라도 '앙증맞은 차'를 추천할 수도 있다"고 했다.

현대카드는 지난 4월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실험적으로 개발한 '피코'라는 스마트폰 앱을 선보였다. 카드 회원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해 취향을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해외의 2000여 개 패션 사이트 중에서 회원이 가장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가진 패션 사이트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정 부회장은 이런 시도를 하는 이유에 대해 "금융산업이 다른 여러 산업들과 직·간접적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왔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분야가 금융이고, 많은 비금융 기업들이 금융권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금융사들도 적극적으로 비금융권의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금융사가 '데이터 사이언스'를 잘 적용한 사례로 중국의 카드업계 사례를 제시했다. 중국 카드사들은 대출 고객이 동의할 경우 고객의 휴대폰에 담긴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 이 사람이 제대로 직장을 다니는지, 친구 관계는 어떤지, 게임 중독은 아닌지를 본다고 한다.

카드론 평균 금리는 18% 수준인데, 휴대폰을 제출한 고객들의 경우 촘촘한 신용평가 덕분에 평균 금리가 12%까지 내려간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예전엔 기술이 없어 못했던 일들이 빠르게 가능해지고 있다”며 “‘디지털 회사’로 체질을 바꾸려는 ‘물밑’ 노력을 해온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의 격차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롭게 펼쳐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무한경쟁에 나서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각종 규제 장벽과 무사안일 탓에 ‘우물안 개구리’처럼 현실에 안주해 있는 상황이 안타까운 듯했다.

정 부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용카드 산업을 ‘공공재’의 시각으로 다루기 때문에 매년 수익이 악화되고 있다”며 “획일적으로 정부가 정해줄 것이 아니라, 소액 카드 결제를 받을지 말지는 가맹점이 알아서 정하고, 가맹점 수수료도 각 카드사가 전략에 맞게 정하도록 해 다양한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이 새로운 시도를 활발히 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카드는 사회공헌활동 분야에서도 타 카드사와 차별화된 행보로 이목을 끌어왔는데, 최근엔 6년여 시간을 들여 제주 가파도 섬 전체에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모델’을 이식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정 부회장은 ‘카드사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정부나 NGO가 할 수 없는 일을 찾아내 기획력, 실행력, 네트워크 등 우리가 가진 자원을 활용해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평창 봉평장, 광주 송정역시장 등 프로젝트 진행 후 상가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면서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얻은 듯했다.

정 부회장은 “앞으로는 현대카드가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고 대신 우리나라 11개 지역을 선정해 각 지역 특색에 맞게 ‘도시 재생’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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