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Notch]64 디지털 검열 vs 디지털 사생활··· 러시아·이란, 텔레그램 불법화

조선비즈
  • 방성수 기자
    입력 2018.04.22 10:00

    페이스북 ‘데이터 스캔들’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이 소셜 미디어, 포털 등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이란 정부가 암호화 메신저인 텔레그램 사용을 불법화했다.

    ‘러시아의 마크 주커버그'로 불리는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는 “디지털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며 ‘디지털 저항(Digital Resistance)’을 선언했다.

    국가 안보 vs 사생활 보호, 공공 질서 유지 vs 사상·표현·통신의 자유 등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을 계기로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정부가 최근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 사용을 금지했다./사진=블룸버그
    ◆ 러시아·이란, ‘“텔레그램이 민심 선동, 안보 위협”

    러시아의 미디어·통신 감독기관인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4월16일(현지시각) 텔레그램 퇴출 작업에 착수했다. 이틀 뒤 이란도 국가 기관의 텔레그램 이용을 금지했다. 중국은 2016년 텔레그램 사용을 금지했다.

    러시아 정부가 텔레그램 사용을 막기 위해 아마존과 구글의 1800만개 IP 주소를 차단하면서 러시아의 여러 웹사이트 운영이 중단되고 택배와 온라인 쇼핑이 먹통이 됐다. 러시아는 텔레그램의 앱 스토어 등록을 취소하라고 애플과 구글에게 요구했다.

    러시아 정보기관 FSB는 2016년 7월 “암호화된 SNS가 테러에 이용될 수 있다”며 인터넷 정보 사업자들에게 온라인 통신 암호 해독 자료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텔레그램이 요청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모스크바 법원은 4월13일 “연방보안국(FSB)의 메시지 암호 해독 키(Key) 제공 요청을 거부한 텔레그램의 행위는 러시아 안보를 위협한다”며 텔레그램 퇴출 판결을 내렸다.

    이란 정부는 4월18일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텔레그램 등 외국에서 개발된 스마트폰용 메신저 앱 사용을 금지했다고 ‘가디언’과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란은 작년 말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시위대의 연락 수단으로 사용되는 등 국가 안보를 해치고 민심을 선동한다”며 텔레그램 사용을 열흘간 금지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이용이 금지된 이란에서 텔레그램은 가장 널리 쓰이는 메신저로 알려져 있다. 4000만명의 이용자가 개인 통신, 상품 광고 등에 이용하고 있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는 “사생활은 파는 것이 아니다"며 러시아 정부의 금지 조치와 싸우겠다고 밝혔다./그래픽=방성수 기자
    ◆ 두로프 CEO, 해외 떠돌며 ICO로 17억달러 모아
    텔레그램은 러시아의 최대 소셜 미디어 서비스 ‘브콘탁테(VKontakte·VK)’ 설립자인 니콜라이 두로프(38)와 파벨 두로프(34) 형제가 개발한 무료 모바일 메신저다. ‘러시아의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VK’ 이용자는 4억명에 달한다.
    광고가 없는 오픈 소스 메신저인 텔레그램은 메시지, 사진, 문서 등을 무작위로 암호화해 전송하는 기술을 적용, 높은 보안 수준을 자랑한다. 대화 내용이 저장되지 않고 비밀 대화 기능을 이용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대화 내용이 삭제된다. 러시아 정부의 검열을 피해 서버는 독일에 두고 있다.
    2013년 8월 첫 서비스를 시작, 한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멕시코 등 세계에서 2억명 이상의 이용자(월간 이용자)를 확보, 하루 250억개의 메시지가 오가는 것으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이용자는 1300만명으로 추산된다.
    텔레그램을 개발한 파벨 두로프 CEO는 2014년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거부한 뒤 ‘브콘탁테(VK)’ 를 빼앗기고 러시아를 떠나 해외를 떠돌고 있다.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의 데이터 제공 요구를 거부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두로프 CEO는 25만달러를 주고 카리브해 연안국의 국적을 취득한 뒤 한 곳에서 5주 이상을 머물지 않고 거주지를 옮기면서 인터넷을 통해 텔레그램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암호화폐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를 통해 텔레그램 개발, 운용자금 17억달러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이 테러 방지 명목으로 소셜 미디어, 암호화 메신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2017년 6월 런던 테러 직후 런던 경찰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사진=블룸버그
    ◆ “테러방지"냐 vs “사생활 보호”
    텔레그램이 국가 검열에서 자유로운 미디어라는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다.
    IS(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들이 애용하는 ‘테러리스트 메신저’라는 비판도 거세다. 2015년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범들이 텔레그램을 이용해 교신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란에선 반체제 운동의 선전 도구로 지목됐다. 두로프 CEO는 “테러범들이 텔레그램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두로프 CEO는 러시아의 텔레그램 퇴출 조치에 대해 “테러범을 잡는 것 보다 사생활 보호가 더 중요하다. 인권이 공포, 탐욕 때문에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며 정부의 검열에 반대하는 ‘디지털 저항’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안보와 테러 위협 등을 명목으로 한 국가의 미디어 통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권위주의 정권은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등 모든 미디어를 통제했다. 아직도 팩스밀리 이용까지 감시하는 ‘통제 국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국가 통제는 어떨까? 러시아 정부가 텔레그램 이용을 금지 했지만, 러시아의 텔레그램 이용자는 오히려 급증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텔레그램이 다양한 IP 주소를 이용할 수 있고 IP를 우회하는 프로그램도 많아 러시아 정부가 아무리 많은 인력과 비용을 도입해도 텔레그램 퇴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 미디어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국가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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