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작업 줄고 화물 위치 정확히 파악…블록체인에 눈 뜬 해운업계

조선비즈
  • 조지원 기자
    입력 2018.03.22 06:00


    “블록체인이 해운·물류에 완전 도입되면 무역 장벽이 낮아진다. 아프리카 등 무역 기반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도 무역이 쉬워질 것이다.”

    현대상선(011200)블록체인 프로젝트 담당자인 곽광용 PI추진팀 과장은 해운산업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무역 거래를 쉽고 간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은 일부 기업에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역에 참여할 수 있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해야 한다”며 “무역 자체가 촉진돼 거래가 많아지면 결과적으로 선사들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도 커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현대상선 제공

    ◇ 해운·물류업계, 블록체인에 관심

    블록체인에 대한 해운·물류업계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기록을 분산된 네트워크에 공유된 장부로 두며, 중앙 관리나 통제 없이 참여자들이 서로 확인하고 인증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운송 중인 화물이 어디쯤 있는 지 알 수 있는 가시성(Visibility) 확보,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 관리, 거래 신뢰성 제고 등으로 해운·물류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기술로 평가 받는다.

    해운업계에서는 블록체인이 전면 도입되면 까다로웠던 서류 문서 작업이 대폭 간소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지정된 수신자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선하증권 등 기존 신용장 거래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종이 서류나 전자문서교환(EDI) 대비 효율성이 크게 높아져 무역 거래가 쉬워질 것이란 이야기다.

    글로벌 선사들은 블록체인 공부에 나섰다.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는 IBM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을 준비 중이다. 현대상선도 지난해 삼성SDS(018260)가 주도하는 해운·물류 블록체인 컨소시엄에 참여해 기술 도입을 준비해왔다. 해운·물류 블록체인 컨소시엄에는 현대상선, 삼성SDS 등 38개 민·관·연 기관이 참여해 중국·베트남·인도·유럽 항로에서 시험 운항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현대상선은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블록체인 기술을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작년에 시범 운항까지 마쳤지만 화주가 당장 이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서비스는 마땅치 않고, 기술 여건상 전면적인 도입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블록체인 기술을 전면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을 한정한 뒤 최대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하는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곽 과장은 “작년까지 진행한 테스트는 해운 물류 전반에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며 “올해는 구체적인 업무를 대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효과를 실제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2017년 12월 21일 열린 ‘2017년 해운물류 블록체인 컨소시엄 결과발표’ 행사장에서 삼성SDS를 포함한 기업, 정부, 연구소 등 총 38개 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삼성SDS 제공

    ◇ 영국 슈퍼마켓서 인도네시아 어부가 잡은 참치 정보 확인

    블록체인은 해운업에서 가장 중요한 물류 가시성 확보에 최적화된 기술이다. 가시성은 원료 공급지부터 최종 소비자까지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의 흐름을 파악하고, 화물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물류 업체들은 가시성 확보가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보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블록체인 기술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블록체인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프로버넌스(provenance)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인도네시아 어부가 잡은 참치가 영국의 슈퍼마켓에서 판매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했다. 인도네시아 어부가 휴대전화로 참치 정보를 등록하면, 이 정보가 참치통조림 공장을 거쳐 유통업체에도 기록된다. 소비자는 바코드로 유통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가시성은 대금 결제에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대금 결제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은 실제 화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출업자가 낸 서류만 보고 금융을 제공했다. 이를 악용해 가짜 서류를 내고 사기를 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실제 컨테이너가 어디쯤에 있는지 바로 확인하게 되면 허위 거래를 쉽게 걸러낼 수 있게 된다.

    ◇ 케냐에서 네덜란드까지 필요한 서류만 200개…블록체인으로 간소화

    무엇보다 까다로운 서류 작업이 사라진다. 해운 물류는 단순히 화물만 옮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동반하는 수많은 서류를 처리하는 것까지 중요한 업무다. 모든 정보 교환이 서류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머스크에 따르면 아프리카 케냐에서 유럽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화훼 화물을 옮기는데 관련된 기관만 30곳, 필요한 서류만 200종류가 넘는다. 이를 처리하는 기간은 한 달이 넘는다.

    전자문서교환(EDI) 방식 도입으로 서류 전달 시간을 단축했다고 하지만, 내용을 확인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EDI도 양 당사자 간 양식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서류 작업에 골머리를 앓던 해운·물류 기업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블록체인 장점 중 하나로 꼽히는 거래 신뢰성은 해운·물류 거래 방식마저 바꿀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원 확인이 이뤄지고 참여 절차가 투명해지면, 블록체인 내 거래에 사기나 위-변조가 없다는 신뢰가 생긴다. 그럴 경우 선하증권 등 신용장이 사라질 수 있다.

    선하증권은 해상운송계약에 따라 운송물의 수령‧선적을 인증하고 물품의 인도청구권을 문서화한 증서를 말한다. 선하증권 등 주요 문서는 한 글자만 틀려도 처리가 안 될 뿐 아니라 수정하려면 수수료를 더 내야 한다. 선하증권만 맡아서 처리하는 전담 인력이 있을 정도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하증권 등 신용장을 주고 받는 단계만 사라져도 2주일 걸리는 서류 작업이 2~3일로 단축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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