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고급 수입車, 다시 늘고 있다

조선일보
  • 김성민 기자
    입력 2017.10.19 03:01

    [운행기록부 도입 이후 감소했다가… 1년 만에 반등]

    - 수억대 스포츠카까지 법인용으로
    5000만원 이상 법인 수입차 판매, 올 5만여대… 작년보다 11.7% 증가

    - 실효성 없는 운행기록부
    출퇴근 업무용 사용 거리와 주행 전·후 계기판 거리만 기재
    사적인 이용 땐 걸러낼 장치 없어

    최고 출력이 608마력이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이 4.1초인 벤틀리 럭셔리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벤테이가'는 가격이 3억4400만원이다. 올 1~9월 국내에서 총 64대가 팔렸는데, 그중 57대(전체 중 89%)가 법인 차다. 3억원에 달하는 수퍼카 람보르기니 '우라칸'도 올 들어 국내에 22대가 팔렸고 그중 19대가 법인 차다.

    정부의 법인 차 과세 강화로 인해 작년 한 해 주춤했던 고가(高價) 수입 법인 차 판매가 1년 만에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고가 수입 법인 차 사적 유용을 막기 위해 2016년부터 법인 차 연간 감가상각액과 유지비가 1000만원을 넘으면 운행 기록부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작년 한 해 고가 수입 법인 차 판매량이 주춤했다. 하지만 운행 기록부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올 들어 고가 수입 법인 차가 다시 증가하고 세금 누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 증가한 고가 수입 법인 차

    자동차 업계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1~9월 기준 가격이 5000만원 이상인 고가 수입 법인 차는 총 5만1858대가 팔렸다. 5000만원 이상 고가 수입 법인 차는 2015년 같은 기간 5만3135대 팔렸다가, 2016년 정부 규제 강화로 4만6420대로 줄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시 작년에 비해 11.7% 늘었다.

    우리나라 표준 운행기록부(위)는 운행 내역을 거리(㎞)로 표시하면 되지만, 호주의 운행기록부(아래)는 자택 주차일수와 목적지, 사용 목적 등을 자세히 서술해야 한다.
    우리나라 표준 운행기록부(위)는 운행 내역을 거리(㎞)로 표시하면 되지만, 호주의 운행기록부(아래)는 자택 주차일수와 목적지, 사용 목적 등을 자세히 서술해야 한다. /국세청·호주 국세청

    특히 7000만~1억원 이상 고가 수입 법인 차는 증가율이 더 컸다. 2015년 1~9월에 7000만~1억원 수입 법인 차는 1만6635대가 팔렸고, 2016년엔 이보다 2640대 줄어든 1만3995대가 판매됐다. 하지만 고가 수입 법인 차는 올해 작년보다 28.1% 늘어난 1만7925대가 팔렸다. 규제 전인 2015년보다 더 많다.

    업계에서는 사업자들이 고가 수입차를 개인용으로 타면서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법인 명의로 등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법인 차를 탈 때 연간 감가상각액과 유지비 등 1000만원에 대해 법인세법상 손실금으로 처리해주고, 법인 차를 100% 업무에만 사용했다고 운행 기록부에 작성하면 차량 구입비를 전액 사업 경비로 인정받아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다. 6000만원짜리 벤츠를 법인 명의로 100% 업무용으로 탈 경우 1700만원 할인 효과가 있다.

    ◇법인 차 1위 수입차는 벤츠 E클래스

    수입차 중에서 법인 차로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가 가장 많이 팔렸다. 벤츠 E클래스(E220d, E220d 4매틱, E300, E300 4매틱 등 4개 차종 포함)는 올 1~9월 법인 명의로 7829대가 팔렸다. 올해 전체 수입 법인 차 판매(6만956대) 10대 중 1대는 벤츠 E클래스인 셈이다. 단일 차종으로는 기준 가격이 6630만원인 BMW의 '520d'가 1~9월 동안 법인에 3020대가 팔려 가장 많았다.

    수입 법인차 가격대별 판매 추이 그래프

    1억원이 넘는 초고가 럭셔리 카와 고급 스포츠카도 법인 업무용 차로 많이 판매됐다.

    럭셔리 카 대명사인 '롤스로이스'도 1~9월까지 법인이 60대를 구매해 작년(41대)보다 46%나 증가했다.

    ◇수입 법인 차 운행 기록부 관리 체계 미흡

    고가 수입 법인 차 판매가 다시 증가한 원인으로는 정부 관리·감독 부실이 꼽힌다. 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세청 차원에서 개정법 시행 1년이 지난 지금도 고가 차량의 법인 소유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세무조사도 하고 있지 않다”며 비판했다.

    정부는 고가 수입 법인 차 사적 사용을 막기 위해 작년부터 법인 차 운행 기록부를 작성토록 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표준 운행 기록부는 주행 전 계기판 거리와 주행 후 계기판 거리, 출퇴근 사용 거리, 업무용 사용 거리만 숫자로 기입하게 돼 있다. 반면 미국과 호주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업무용 차의 사적 이용을 막기 위해 운행 기록을 자세히 적도록 한다. 미국에서는 운행 기록부에 도착지, 사용 목적, 운행 중 기름 값, 톨게이트 비용 등 유지비까지 기재해야 한다. 호주에서도 자택 주차일수, 운행 내용을 직접 서술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회사 대표 가족이 비상임이사 등으로 고가 수입 법인 차를 개인적으로 이용하며 숫자만 거짓으로 기재해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운행 기록부 작성 규정 도입 이후 허위 기재 등으로 규제를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학습했기 때문에 올 들어 고가 수입 법인 차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러한 고가 수입 법인 차 사적 이용을 철저히 관리해 과세하면 연간 5000억원 이상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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