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직원들의 업무 성과를 상대평가해 보수와 승진 등을 결정하는 성과평가제가 엉터리라는 사실은 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지난해 '성과관리의 미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맥킨지는 "상대평가제는 (평가에) 시간만 잡아먹고,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동기를 잃게 하고, 궁극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적잖은 기업들이 상대평가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맥킨지는 상대평가제가 실패한 제도로 판명났다고 주장했다. "직원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거의 기여하는 바가 없는 것"은 물론, "직원들로 하여금 등급 평점과 보수에 대해 전전긍긍하게 하고 평가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도리어 업무수행을 해칠 수도 있다"고도 했다.
맥킨지는 특히 상대평가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이미 오래됐지만, 최근 4차 산업혁명 등 변화의 물결 속에서 주요 기업들이 평가 시스템에 변화를 주고 있다고 했다. 기업의 성패가 '규모(노동·자본)'에서 '머리(창의성)'로 바뀌면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던 평가 시스템이 구성원 간 협력을 통한 집단지성을 키울 수 있게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구성원의 창의력을 키우는 조직 문화를 바꾸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2015년 30년 넘게 고수하던 인사 제도인 '10% 룰'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10% 룰은 20세기 경영의 귀재로 불린 잭 웰치가 1981년 GE 경영을 맡으면서 도입한 상대평가제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직원들을 상위 20%(두뇌집단)-중간 70%(중간집단)-하위 10%(꼬리집단)로 나눠 임금과 대우를 차별화하는 것이다. 아이디어와 열정이 있는 상위 집단은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육성하지만 하위 10%는 구조조정을 통해 정리한다는 게 핵심이다. 명확한 신상필벌을 통해 조직에 활력과 긴장을 주는 방식이다. 이 인사시스템은 잭 웰치식 리더십의 대명사로, 지난 30여년간 세계 수많은 기업이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GE는 새로운 시대 흐름에 잭 웰치식 인사 평가제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대신 1년에 한 번 하던 인사평가를 연중 상시 평가로 바꾸고, 상대평가제는 개인별 절대평가로 전환했다. 이를 위해 GE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직원들이 수시로 자신의 성과에 대해 상사와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변화는 긍정적이다. 제니스 셈퍼 GE 조직문화혁신팀 총괄부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피드백 시스템으로 바뀌자 자연스럽게 협업이 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게 됐다"면서 "통상 부하 직원에게 명령하고 평가하던 관리자의 의미도 팀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영감을 부여하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GE만의 변화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직원을 정해진 비율에 따라 1~5등급으로 나누고, 최하등급 직원들을 내쫓던 '스택 랭킹(stack ranking)'이라는 상대평가제를 포기했다. MS는 직원들의 경쟁 의식을 높이려고 상대평가제를 도입했는데 협업 분위기만 망쳐놨다고 털어놓았다. 직원들이 구글 등 외부와 경쟁하지 않고 내부 동료들과 경쟁했다는 자책이었다.
딜로이트, 골드만삭스, 다우케미컬, 액센추어 등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도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다양한 평가·보상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구성원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평가 방식은 물론 보상 방식도 바꾸고 있다. 동기부여 이론에 따르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 두 가지다. 석학들은 돈처럼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물적 보상이나 명예·칭찬·인정 등의 외부로부터의 심리적 보상보다는 일할 때 얻는 즐거움, 열정, 성취감 같은 내적 보상에 주목해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앨빈 토플러와 함께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불리는 다니엘 핑크는 저서 '드라이브'에서 "당근과 채찍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는 유용하지만 결과에 집착하게 하기 때문에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며 "내적 보상에 집중할 때 새로운 미래를 여는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했다.
MS가 유명 필진을 뽑아 16년간 만든 백과사전 'MSN 엔카르타'를 누른 위키피디아가 대표 사례다. 위키피디아가 세계적인 백과사전으로 성장한 데는 아무런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네티즌의 힘이 컸다. 핑크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인간의 동기에 대한 전통적이고 상식적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이제 사람들이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을 보상으로 여기는 시대가 왔다"고 분석했다.
포토샵·PDF로 잘 알려진 '어도비'가 도입한 새 평가방식 '체크인(Check-in)'은 동료들과 상대 비교가 아니라 연초에 설정된 개인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평가한다. 내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인사 제도다. 보상도 각 부서 관리자들이 권한을 완벽하게 부여받아 행사한다. 그 결과 이직률이 30% 감소했다.
세계적인 뇌 과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저서 '승자의 뇌'에서 "이처럼 내적 동기가 활성화되면 직원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보수로 받을 것인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열정을 다해서 일한다"고 했다.
상대평가·징계 없는 기업 마이다스아이티
한국 직장인들 중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80% 정도의 직원들이 '매우 그렇다' 혹은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마이다스아이티(Midas IT)다.
2000년 창업한 마이다스아이티는 직원 약 600명, 연매출 1000억원 규모의 기업이다. 건설 분야 설계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의 강소기업이다.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으로도 유명하다. 대졸 신입사원 공채 경쟁률은 '500 대 1' 수준이다. 외국계 기업 인재들도 입사를 위해 끊임없이 노크한다.
마이다스아이티는 스펙, 징계, 상대평가, 정년이 없는 4무(無) 기업이다. 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대표의 '사람을 키우는 것이 경영'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이 대표의 경영 철학은 '사람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는 점, '회사는 구성원의 행복 놀이터'가 돼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잘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인간 본연에 대한 신뢰 등이다.
그렇기에 마이다스아이티에는 상대평가가 없다. 회사는 그 사람이 가진 능력 자체가 온전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낫고, 못하고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고과를 실시할 때 상대평가 대신 자신이 세운 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판단하는 절대평가를 한다. 또 창립 이후 지금껏 정직이나 해고 등의 징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양혁승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마이다스아이티는 전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일에 대한 몰입을 근간으로 하여 운영되고 있다"며 "구성원들의 주인의식과 자발성, 내재적 동기에 의해 성과를 창출하는 조직문화가 뿌리내린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