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WD의 훼방 작전 통했다...도시바, 입찰관례 파기 '논란'

조선비즈
  • 황민규 기자
    입력 2017.08.28 06:00

    도시바, 국제 입찰관례 무시하고 반도체 매각 대상자 교체
    WD ‘소송전·시간끌기 전략’에 다급해진 도시바, 매각 작업 속도 낼듯
    전문가들 “세계 메모리 시장에 큰 여파 없을 것”

    올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최대의 이슈인 도시바 반도체 매각이 결국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승리로 기우는 분위기다. 도시바는 당초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한·미·일 연합과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이르자 WD가 포함된 ‘신(新) 미·일 연합’에 우선권을 주고 이달 중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27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오는 31일 WD와 미국의 투자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일본 산업혁신기구·일본정책투자은행이 결성한 신(新) 미·일 연합과 마무리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기존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한·미·일 연합에서 SK하이닉스, 베인캐피털이 빠지고 WD와 KKR이 합류한 셈이다.

    도시바는 오는 31일 WD와 미국의 투자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일본 산업혁신기구·일본정책투자은행이 결성한 신미일연합과 마무리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제공
    도시바와 WD 측은 세부 사항에 대한 조율을 거쳐 이달 내에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매수액은 한·미·일 연합이 제시했던 것과 같은 2조엔(20조54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WD는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채 형식으로 도시바 메모리에 1500억 엔(1조5400억원)을 투입할 걸로 알려졌다.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15% 남짓한 의결권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한·미·일 연합에 포함돼 있던 SK하이닉스(000660)는 당혹스러운 기류가 역력한 가운데 입장 표명을 피하고 있다. 도시바가 국제 입찰 관례를 무시하고 매각 대상자를 교체한 것은 비판의 여지가 크지만,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기도 어렵다는 것이 내부 반응이다.

    ◆갑작스런 도시바의 변심 "한국에는 메모리 기술 못줘"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WD는 유력 인수후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도시바 매각 작업이 본격화된 이후 처음에는 미국의 브로드컴, 한·미·일 연합 등이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혀 왔다. WD의 경우 도시바 최대 공장인 요카이치 공장의 지분을 절반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매각 절차 자체에 반대했었다. WD는 입찰이 진행되던 5월부터 “도시바가 우리 동의 없이는 회사를 못팔게 해달라”며 국제 소송을 걸기 시작했다.

    도시바는 오는 31일 WD와 미국의 투자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일본 산업혁신기구·일본정책투자은행이 결성한 신미일연합과 마무리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제공
    일본 현지 여론에서 "한국에 반도체 기업을 팔면 안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도시바 경영진이 공공연히 SK하이닉스(000660)가 향후 지분 전환을 통해 15~25% 수준의 의결권을 확보할 것이라는 점을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고, 이는 현지 반발 여론을 일으켰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처음에는 지분 확보를 하지 않는 융자 형태로 3000억~5000억엔(한화 약 3조~5조원)을 출자한 뒤 추후에 지분 전환을 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때부터 계약서에 명시된 부분"이라며 "여론의 힘을 빌어 결국 SK하이닉스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 역시 지분 확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최대 5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쏟아부어 놓고서 지분 확보를 하지 못할 경우 인수전을 직접 주도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등 핵심 경영진의 책임론이 대두될 가능성도 적지않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의 경쟁자인 도시바의 회생에 힘만 보태고 결국 아무런 실익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훼방놓은 WD, 결국 승기 잡아...SK하이닉스에 미치는 영향은

    도시바가 상장 폐지를 피하기 위해서는 2018년 3월 말까지 부채를 정리해야 하는데, 각국에서의 매각 승인 절차 등을 감안하면 올해 3분기 중에는 매각 작업을 끝내야 한다. 도시바가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WD는 도시바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며 시간 끌기에 나섰다. WD가 법적 문제를 물고 늘어질 경우 미 당국의 심사가 늦어지게 된다.

    도시바와 한·미·일 연합의 최종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다급해진 도시바는 국제 관례를 무시하고 WD와 협상에 나섰다. SK의 한 관계자는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을 원만하게 매각하기 위해서는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매각 작업을 서두르기 위해 결국 다시 WD와 협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도시바가 WD와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서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기술력을 강화하려던 SK하이닉스의 시도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선 삼성에 이어 확고한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시장 점유율이 10% 안팎에 불과한 4, 5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한편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도시바가 WD에 넘어가도 기존의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구도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 대만 등 신흥 국가의 기업에게 메모리 기술이 넘어가지 않게 되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분석도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WD가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하는 건 (국내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재 메모리 시장에서 크게 바뀌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도시바, WD의 감정적 갈등이 커 시너지 효과가 의문스럽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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