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C랩, 低시력 장애인에 빛을 선사하다

조선일보
  • 김경필 기자
    입력 2017.08.21 03:00

    [시각장애인용 앱 임상시험 마쳐]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친 영상, 低시력자 볼수있는 형태로 변환
    기어VR로 高價장비 기능 구현

    실패 부담 없이 혁신에 도전… 아이디어 좋으면 회사 전폭 지원
    프로젝트 18%가 스타트업 전환

    18일 오전 서울 중구 삼성전자 브리핑룸. 기자가 저(低)시력 시각 장애인을 체험할 수 있는 특수 안경을 쓰자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코앞에 글자판을 가져다 대도 글자를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특수 안경 위에 삼성전자의 가상현실(VR) 기기 '기어VR'을 쓰고 글자판을 다시 바라보자 검은색 배경 위에 흰색으로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18일 서울 중구 삼성전자 브리핑룸에서 삼성전자 사내 벤처팀 관계자들이 시각 장애인의 시력을 재현하는 특수 안경을 쓴 채로(왼쪽 2명) 시각 장애인용 앱 ‘릴루미노’를 시연하고 있다. 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가상현실 기기 ‘기어VR’을 쓰고 그림을 바라보면 릴루미노가 기어VR 전면의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영상을 시각 장애인들이 볼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준다.
    18일 서울 중구 삼성전자 브리핑룸에서 삼성전자 사내 벤처팀 관계자들이 시각 장애인의 시력을 재현하는 특수 안경을 쓴 채로(왼쪽 2명) 시각 장애인용 앱 ‘릴루미노’를 시연하고 있다. 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가상현실 기기 ‘기어VR’을 쓰고 그림을 바라보면 릴루미노가 기어VR 전면의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영상을 시각 장애인들이 볼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준다. /삼성전자

    시각장애인용 앱(응용 프로그램) '릴루미노(Relumino·'시력을 되돌려주다'라는 뜻의 라틴어)'가 기어VR 앞에 장착된 스마트폰 카메라에 들어온 영상을 시각 장애인이 볼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줬기 때문이다. 릴루미노 테스트에 참여한 한빛맹학교 교사 김찬홍(42·시각장애 2급)씨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특수 장비인 확대독서기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맨' 아이디어, C랩 만나 기적 일구다

    늘어나는 C랩 성과 그래프

    삼성전자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크리에이티브 랩)'이 시각 장애인들에게 개안(開眼)의 기적을 선사하는 기술을 탄생시켰다. C랩의 릴루미노팀은 문남주 중앙대병원 안과 교수팀과 함께 지난달 임상시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최대 교정시력이 0.1 미만인 저시력 장애인들은 릴루미노를 착용한 뒤 시력이 0.8 이상으로 개선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0.8은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일반인 수준의 시력이다.

    희미한 명암만 구별하는 수준의 '저시력자'는 전 세계적으로 2억5000만명이 있다. 이들은 그동안 1000만원대의 장비를 이용해야 겨우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릴루미노는 이런 고가 장비 기능을 스마트폰 앱으로 구현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영상이 들어오면 물체의 테두리는 실제보다 강조하고 색깔은 장애인이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변환한다. 시야 일부가 가려지는 증상이 있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는 특정 각도에서 들어오는 영상을 보이는 곳에 표시해주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10만원대의 기어VR만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온라인에서 앱을 무료로 내려받아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기어VR과 연동시키면 된다. 릴루미노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릴루미노를 휴대하기 더 편하도록 안경 형태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릴루미노의 아이디어를 처음 낸 이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연구원인 조정훈(44)씨. 아이디어가 C랩 아이템으로 선정되자 삼성전자는 조씨에게 직접 팀원을 선발할 수 있는 권한과 개발비를 지원했다. 조씨는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가 1년간 원래 업무를 면제해줬다"고 말했다.

    파격 지원으로 'C랩 출신 스타트업' 줄탄생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에서 2012년부터 진행한 프로젝트 136개 중 25개(18.4%)가 사업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으로 전환됐다. 63개(46.3%)는 삼성전자 사업에 당장 필요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아 개발팀은 인센티브를 받고 기술은 사업부로 이전됐다. C랩 출신 스타트업 망고슬래브는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작은 메모지를 출력해주는 프린터를 개발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 2017'에서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골프 스윙을 할 때 체중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측정해주는 스마트 신발을 개발한 솔티드벤처도 CES 2017에서 혁신상을 받고 최근 제품을 출시했다. 스케치온은 몸에 지울 수 있는 문신을 새겨주는 프린터를 만들어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대회 '슬러시 2016'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현재도 40여 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올 하반기까지 10여 개가 추가로 스타트업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C랩 출신 스타트업 링크플로우의 대표 김용국(44)씨는 "C랩의 성공 비결은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혁신에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지원"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C랩에 지원할 수 있고,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별도 공간인 'C랩존'에서 기술 개발과 사업화에 몰두하게 된다. 독립할 경우 삼성전자가 최대 10억원을 투자해준다. 이런 혜택이 주어지다 보니 C랩 참가 경쟁률은 100대1이 넘는다.

    성전자는 최근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과 업무협약을 맺어 삼성전자 출신 스타트업들이 최대 30억원의 기술보증을 받거나 양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장은 "변화무쌍한 기술 사업화 시대에 거대 기업이 홀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며 "C랩 출신 스타트업들이 삼성전자의 우군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