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면세점]② 아사(餓死) 직전 중견·중소면세점...근본 대책 시급

입력 2017.07.04 06:15

지난 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지하 1층 명품관. 에르메스, 펜디, 프라다, 마크제이콥스 등 글로벌 고가 브랜드 매장들에 어울리지 않는 ‘최대 50% 할인’ 팻말이 걸려 있다. 매장별로 유니폼을 입은 직원 3~5명이 있었지만 정작 손님이 1~2명이라도 있는 곳이 드물었다. 빈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녀시대, 샤이니 등 한류 아이돌그룹 노래는 적막함을 더했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전만 해도 ‘면세점 대박’을 일군 한방화장품과 마스크팩 등을 판매하는 3층 국산 화장품 매장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아랍계로 보이는 관광객 한 무리만 설화수 매장 앞에 모여 있을 뿐 다른 매장은 직원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적했다.

◆ 중소·중견 면세점 대부분 적자...매출 비중 5% 불과

롯데, 호텔신라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만 중소·중견 면세점 대부분은 아사(餓死) 직전의 상태다. 1979년 ‘국내 1호 시내면세점’으로 문을 연 이후 30여년간 경쟁력 있는 중견 면세점으로 자리매김했던 동화면세점의 추락은 중소·중견 면세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에만 해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3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던 동화면세점은 중국인 관광객(유커·游客) 급감에 최대주주의 경영권 포기 논란이 겹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3일 오후 관광객이 찾지 않아 한적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1층 고가품 매장 일대. /윤민혁 기자
특히 지방 중소·중견 면세점 대부분은 적자의 늪에 빠져있다. 4일 관세청에 따르면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유커가 급감하기 전이었던 지난해에도 지방 면세점 중 신우면세점과 그랜드면세점, 진산면세점 정도만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을 뿐 나머지 면세점은 큰 폭의 적자를 냈다. 중소중견면세점연합회에 따르면 지방면세점의 연간 매출액 대비 영업 손실률은 10~30%에 달한다.

면세점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중견 면세점이 경영난에 직면한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없으면 중소·중견 면세점의 설 땅은 아예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8월 기준 면세점 전체 매출액 7조8878억원 중 중소·중견 면세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했다

◆ ‘도입 취지와 현실의 괴리’....구매력·브랜드 등 열위 ‘예정된 부실화'

관세청이 2012년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를 확대하는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만들면서 중소·중견 면세점의 수가 급증했다. 그 해만 중견·중소 면세점 9곳이 새로 생겼다. 당시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는 “기존 시내면세점이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시내면세점을 확대하는 것이 지역경제활성화와 관광진흥에 바람직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중국정부가 단체 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금지한 이후 폐업한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한 건강식품 전문 사후 면세점. /연합뉴스 제공
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중소·중견 면세점 30개가 전국에 포진했다. 숫자로만 보면 전체 면세점 50개(대기업 17개, 공기업 3개 포함) 중 60%에 달하는 수준이다. 중소·중견 면세점으로는 서울의 동화면세점, 하나투어면세점(옛 에스엠면세점) 등을 비롯해 지방에 신우면세점(대전), 그랜드면세점(대구), 진산면세점(울산), 엔타스듀티프리(인천), 앙코르면세점(수원), 중원면세점(청주), 대동면세점(창원), 듀티프리원·듀프리토마스쥴리(부산), 제주관광공사면세점(제주) 등이 있다. 지방 면세점의 경우 관광객이 자주 찾는 부산과 제주지역을 제외하면 연 매출이 적게는 2억원, 많아야 수십억원 수준이다.

중소·중견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구매력 ▲브랜드 ▲노하우 등 경영상 필요한 요소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면세점은 백화점과 달리 물품을 직매입하기 때문에 사업자의 구매력이 가장 중요하다. 대량 매입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이익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중소 면세점은 대기업에 비해 구매력이 떨어져 수익성이 뒤질 수밖에 없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도 아킬레스건이다. 한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관광객이 물건을 산다면 롯데 등 인지도가 있는 면세점을 찾으려 한다”며 “중소기업 면세점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런 문제점은 송객 수수료 부담으로 이어진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중견 면세점의 송객수수료율(여행사나 가이드가 모집해 온 관광객으로부터 발생한 매출액의 일정액을 여행사 등에 지급하는 비율)은 평균 26.1%로 대기업 면세점의 평균 20.1%보다 훨씬 높았다. 중소·중견 면세점이 해외 단체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송객수수료 지급이 저가 관광상품 양산, 관광 만족도 하락 등 관광산업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중소중견 면세점의 경영악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충북 청주 라마다플라자 청주호텔 1층에 위치한 중원면세점 전경. / 홈페이지 캡처
◆ 협업·차별화 등 생존 방법 찾아야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중견기업은 유통 노하우 면에서 대기업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역경제활성화란 명목으로 낸 무분별한 허가를 거두고, 경쟁력 있는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의 협업 등으로 생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일례로 국내 1위 면세사업자인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8월 충북 청주 중원면세점과 경영지원계약을 체결했다. 롯데면세점이 사업 노하우를 전하고, 중원면세점은 이익의 일부를 수수료로 지급하는 형태다.

하나투어 면세점은 아예 입점한 490여개 브랜드 중 60% 정도를 중소·중견기업 제품으로 채우며 상품 특성화에 나섰다. 고가품 유치 경쟁에 힘을 빼느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한류 관련 제품 위주로 구색을 갖춘 것이다. 한국 대표 시계 브랜드로 성장한 '로만손'을 포함해 해외에서 더 유명한 ‘삼해상사’의 명가김, 건강식품으로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삼다원’의 공진단 등이 하나투어 면세점에 입점했다. 5층 '코리아 드라마몰'에서는 한류 인기 드라마에 등장한 70여개 중소·중견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

하나투어 면세점 관계자는 “단체 위주였던 외국인 관광객 쇼핑 문화가 개별 트렌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규모가 작은 면세점에는 기회”라며 “아직 어려움이 많지만 대기업 면세점과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봉 중앙대 교수는 “면세점 사업이 일부 사업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특혜사업’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면세점 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이 실패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롯데 호텔신라 등 대기업들이 중소·중견 면세점과 컨소시엄을 이뤄 해외에 진출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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