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산업 재발견]⑥ 런던 한복판 지하 차지한 최첨단 농장…"첨단 제조업 닮아가는 1차산업"

조선비즈
  • 조귀동 기자
    입력 2017.05.06 08:00

    스타트업 봇물…기술·돈 모이는 ‘뉴프런티어’


    영국 농업 스타트업 그로우잉언더그라운드의 스티븐 드링 공동창업자는 기업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회사(MRO) 번즐과 기업 대상 설치미술 회사에서 일했고 리처드 발라드(오른쪽부터) 공동창업자는 가구회사 메이드온어스 출신이다. 특별한 기술을 갖고 창업하는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지만, 농업과 IT(정보기술)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우잉언더그라운드 제공
    영국 수도 런던 남부 클래펌. 런던에서 가장 분주한 지하철 역 가운데 하나인 클래펌커먼스역 지하에는 최첨단 영농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팜이 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공습에 대비해 건설된 방공호를 개조한 연면적 6000㎡(1800평) 규모의 농장에는 양상추·순무·겨자·고추냉이·부추·회향·고수 등이 자라고 있다. 하얀색 플라스틱 상자 속에 담긴 수경재배 배지 위에는 채소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다. 이들 상자는 한 번에 5단 정도로 쌓여있는데, 각 상자 위에는 보라색 LED(발광다이오드)등이 켜져 있다. 2014년 1월 창업한 스타트업 그로우잉 언더그라운드(Growing Underground)가 생산하는 채소들이다.

    스티븐 드링 공동 창업자는 “빛·온도·산소량·물·영양분 등 모든 환경을 정교하게 통제하면 기존 온실보다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고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가령 빛은 엽록소가 흡수하는 적색광과 청색광만을 내도록 한다. 다른 파장의 빛을 모두 내는 일반 형광등 대비 에너지 소모가 적다. 대신 식물들이 빛을 충분히 쬘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성장속도를 대폭 끌어올린다. “고수의 경우 일반적으로 파종부터 출하까지 21일 정도가 걸리는데, 여기서는 14일이면 된다”고 한다. 보통 60~90일 정도가 걸리는 배추도 35일만 기르면 된다.

    두 번째 장점은 생육 환경을 조절해 개별 식당 등에서 원하는 형태의 맞춤형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겨자는 광량(光量)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매운맛을 바꿀 수 있다. 그로우잉 언더그라운드는 런던 시내에서 유기농 식자재를 쓰는 식당이나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가정으로 재배한 채소를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그로우잉 언더그라운드처럼 1차 산업에 IT(정보기술)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는 스타트업이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낡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농수축산업에 인재와 자금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농업을 혁신적인 기술과 사업 모델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프런티어(개척지)로 보고 있다.

    3~4년 전부터 농업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CB인사이트 제공
    ◆ 답보 상태 빠진 생산성과 생산량이 오히려 투자 이끌어

    미국 스타트업 투자정보회사 CB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2016년 농업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된 자금은 28억3000만 달러(3조2000억원)로 2015년 20억1000만 달러(2조3000억원)보다 40.7% 늘었다. 2013년(5억2000만 달러)과 비교하면 4년 만에 5.4배가 된 것이다 CB인사이트는 “농업 분야로 돈이 급격히 몰리면서 적당한 투자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1차 산업이 미래의 유망 분야로 꼽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농수축산업이 더 이상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제2차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연평균 10%씩 늘어나던 농업 생산성은 1970년대 이후 연 2%대로 하락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평균 연 1.1%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화학비료와 작물보호제 사용으로 인한 소출 증가가 한계에 달했다. 1960~70년대 신흥국 식량 생산량을 크게 늘린 품종 개량도 벽에 부딪혔다. 더구나 신흥국의 급격한 도시 개발과 선진국 농업 경제성 악화 등으로 경작 면적은 계속 줄고 있다. 지나친 비료 사용으로 인한 경작지 비옥도 저하 문제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물을 풍부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관개 면적’이 한계에 달했다. 글로벌 물 부족 현상 때문이다. 토지와 물이라는 자연적 한계로 경작 면적을 증가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 농업 기술도 정체 상태에 빠진 것이다.

    게다가 신흥국의 인구 증가는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이들 지역의 경제 발전으로 새로운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유엔 등은 2016년 74억명 정도인 세계 인구가 2050년 100억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 중산층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축산업과 수산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령 어업의 경우 2000년 이후 생산량이 0%대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축산업은 전 세계 경작지 가운데 70%가 옥수수·콩 등 사료용 작물을 기르는 데 쓰일 정도로 자원을 잡아먹는다. 가령 육류 1칼로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물 28㎈가 필요하다. 광우병 등 가축의 오염과 질병으로 인한 식품 안전 문제도 공장식 축산업의 고질병이다.

    미국 양식 스타트업 캄파치팜스는 미국 하와이제도 10㎞ 앞 먼바다에서 심해 대형 어종인 갯방어 양식 기술을 개발해왔다. 이 회사는 멕시코만 등에서 대량 양식에 착수할 계획이다. /캄파치팜스 제공
    ◆단백질 합성·심해 첨단 양식…중산층 먹여 살려라

    육류에서 단백질을 얻는 게 힘들어지다 보니 다양한 방식의 단백질 생산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우선 첨단 기술로 바다에서 대규모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양식 어업이 최근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심해 양식 스타트업 캄파치팜스는 깊은 바다에서 자라는 대형 어종으로 초밥이나 회 용도로 쓰이는 ‘잿방어(일본어로 간파치)’ 양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캄파치팜스는 하와이와 멕시코만에서 12m 정도의 폭을 가진 원통형 그물망으로 대규모 양식에 나설 계획이다. “기존 방식에 비해 대규모 양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폐사 문제 등도 해결할 수 있다”고 닐 심스 캄파치팜스 사장은 말했다.

    1800m 깊이의 심해에 설치되는 양식장은 그물망 하나에 잿방어 1만5000마리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다. 소형 어류 등 널리 쓰이는 동물성 사료 대신 콩 등을 활용한 저렴한 식물성 사료도 사용한다. 이를 위해 방위사업체인 록히드마틴과 협력하기로 했다. 록히드마틴은 몇 해 전부터 자사가 보유한 첨단 기술을 활용한 어업에 관심을 보이고 관련 투자를 하고 있다.

    축산업 분야에서는 아예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해 인공 축산물 제조에 나선 기업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벤처기업 모사미트(Mosa Meat)는 소 줄기세포를 활용해 소고기를 배양하는 방식의 인조고기 제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모사미트는 2000년대 초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에서 시작된 인조고기 기술 개발에서부터 시작됐다. 연구 책임자인 마크 포스트 교수는 2009년 자금 조달 문제로 연구를 잠시 접었다가 2011년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가 자금을 대면서 기술 개발을 재개했다. 2013년 인조고기 햄버거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25만유로(3억1000만원)였지만, 이제 8유로(1만원) 정도로 떨어졌다. 포스트 교수는 “5년 내에 인조 배양 고기를 수퍼마켓에서 파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우유·달걀 등 고기 이외의 축산품을 인공적으로 합성하겠다는 회사들도 있다. 캐나다 최초 인조고기 기술 개발팀의 일원이었던 이샤 다타가 2004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한 인조 단백질 기술 개발 비영리단체(NPO) 뉴하베스트는 인조 우유 스타트업 무프리와 인조 달걀 스타트업 클라라푸드를 설립했다. 무프리는 우유 속에 있는 카제인 단백질을 효모를 이용해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한다. 여기에 칼슘·칼륨 등 미네랄 성분을 섞으면 진짜 우유와 비슷한 식감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클라라푸드도 효모를 활용해서 달걀 흰자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인조고기 개발 스타트업 임파서블푸즈 관계자가 자사가 개발한 인조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고 있다. /임파서블푸즈 제공
    ◆ 핵심은 ‘1차산업의 제조업화’

    첨단 기술로 1차산업에 뛰어든 기업들은 IT, BT(생명기술), 생화학 등에서 일어난 발전을 1차산업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현재 정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1차산업의 제조업화’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자연이라는 제약을 넘어서서 자유자재로 동식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가령 토지와 물, 햇빛은 수경 재배와 식물 재배에 최적화된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활용한 스마트팜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 저렴한 비용으로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내고 삽입할 수 있는 일종의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는 단기간에 원하는 형질의 동식물을 만들 수 있다.

    저렴해진 센서 기술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이용하면 경작지 환경을 세밀하게 통제하고, 그 과정에서 드론이나 로봇을 활용하는 기술까지 활용해 전통 경작보다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아예 한발 나아가 인공적으로 단백질을 생산하거나, 곤충 등 이전에 인간이 먹기 어려웠던 생물을 새로운 식량으로 바꾸는 기술도 생화학 발전으로 가능해졌다.

    농업 혁신의 경제성에 대한 전망은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농·수·축산업에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사례들은 여러 건 있다. 가령 양식업의 경우 노르웨이와 싱가포르 회사 5곳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의 영업이익률은 16.3%(2014년 기준)로 한국 한국 1위 기업인 동원산업(5.9%)의 3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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