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현장답사] '평균연봉 8천만원' 모비스, 거대 핵융합실험로 제어하는 숨은 실력자

조선비즈
  • 전준범 기자
    입력 2017.03.20 11:34 | 수정 2017.03.20 11:53

    “대기업 하청업체로 계속 남더라도 미래가 불투명한 건 똑같았습니다. 한번에 망하진 않더라도 서서히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과감한 도전이 필요했습니다.”

    2009년 초 정보기술(IT) 솔루션 전문업체 모비스의 임직원 40여명이 회의실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김지헌 대표는 “대기업들의 IT 하청업체 생활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순간 회의실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던 직원 상당수가 이 결정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그래도 김 대표는 폭탄선언을 번복하지 않았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사업에 도전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기초과학 분야를 주목했다. 이후 모비스는 2010년 1월 핵융합실험로와 같은 기초과학 거대시설물에 정밀제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초과학 특수정밀 제어회사로 탈바꿈했다. 약 2년 반 뒤인 2012년 9월 이 회사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중앙제어시스템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KAIST), 연세대 등 주요 명문대 출신의 석·박사급 연구진 25명이 글로벌 수준의 제어 프로그램을 개발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의재 연구개발총괄(CTO)와 김형기 핵융합 이사는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이고, 신남수 미래제어기술 이사는 포항 가속기연구소 책임연구원 출신이다.

    하나금융8호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내일(3월21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는 모비스는 ITER 뿐 아니라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 대전 중이온 가속기 등에 정밀제어시스템을 납품한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5억5300만원, 영업이익은 7억4500만원이다. 영업이익률은 16%다.

    이달 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모비스 본사를 찾았다. 김 대표는 “회사의 주력 사업 분야를 갑자기 변경한 후 3년 가까이 (신사업 분야에서) 100원도 벌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며 “기초과학과 IT를 융합해 강력한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김지헌 모비스 대표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모비스 본사에서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 전준범 기자
    ◆ 삼성 하청에서 거대과학으로 주력사업 변경

    지난 2000년 문을 연 모비스는 삼성전자(005930), KT(030200)등 대기업에 IT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업체로 사업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들이 의기투합해 이 회사를 세웠다. 설립 당시 김 대표는 덕산메카시스라는 빌딩자동화 전문기업의 창립자 겸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었다.

    김 대표가 모비스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건 2005년의 일이다. 김 대표의 카이스트 동창이자 창업자 중 한 사람인 김형기 이사가 김 대표의 경영 능력을 보고 합류를 제안했다. 김 대표는 모비스가 보유한 우수한 IT 기술력에 희망을 걸고 동창의 러브콜을 수락했다. 처음에는 두 회사의 대표직을 겸하다가 1년쯤 지난 후 덕산메카시스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모비스로 완전히 넘어왔다.

    김 대표는 모비스에 합류하자마자 사업 체질 개선을 꾀했다. 첫 번째 도전은 화상 전화기 개발이었다. 당시 모비스는 대형 통신사인 KT에 이 전화기를 납품했다. 김 대표는 “KT가 가입자들에게 화상 전화기를 공짜로 제공하고 약정을 걸면 수익이 안정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소비자들은 애플 아이폰이나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에 열광했다. 중소기업 모비스가 만든 이름 모를 단말기는 외면 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회사 사정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결정타가 됐다.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시기가 다가왔다. IT 솔루션 하청업체로 남으면 회사가 근근이 먹고 살 순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 대표는 “(하청업체에 안주하는 건)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며 “새로운 분야에 재도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대표는 “하청업체 생활 종료”를 선언한 후 모비스 엔지니어들이 보유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기초과학 거대시설물 분야였다. 그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장비·시스템들을 통제하는 일이야말로 모비스가 가장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ITER의 모습 / ITER 제공
    ◆ 국제핵융합실험로·가속기 등 잇따라 수주

    기초과학 특수정밀 제어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한 후 약 3년간의 ‘고난’이 시작됐다. 하루 아침에 거의 모든 하청 거래를 중단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모비스 임직원들은 매출을 포기한채 3년간 방사광 가속기, 핵융합실험로 등에 대해 공부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하청업체 시절 모아둔 자금과 정부과제 참여 지원금, 투자금 등으로 버텼다.

    김 대표는 “나중에는 돈이 모자라 내 사비를 털어 직원들 월급을 줬다”며 “그때 사서 고생한 덕분에 회사의 직원들이 거대시설물 제어 분야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회는 2012년 9월에 찾아왔다. 국제입찰에 참여해 ITER 중앙제어시스템을 수주한 것이다. 해외 프로젝트 경험이 전무한 한국의 중소기업이었지만 기술력 하나로 사업을 따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원래는 포항 방사광 가속기 사업 참여를 목표로 기술을 확보 중이었다”며 “관련 분야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다보니 ITER 사업 참여 기회를 먼저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ITER는 수소와 원자간 핵융합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이것의 상용화 여부, 문제점 등을 점검하는 시설물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온 국제 연구진이 20조원 이상의 돈을 투자해 ITER를 짓고 있다. 핵융합 에너지는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꿈의 에너지로 주목 받고 있다.

    모비스가 납품하는 중앙제어시스템은 ITER에 포함된 수많은 장비들의 작동을 정교하게 제어하는 장치다. 모비스는 응급상황 발생시 시설물을 통제하는 중앙안전관리시스템(CIS)과 전원공급장치 제어시스템 등도 ITER에 제공한다.

    첫 단추를 잘 꿰자 일이 줄줄이 들어왔다. 이후 모비스는 포항 가속기와 대전 중이온 가속기에도 정밀제어시스템과 장비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김 대표는 “그간 이쪽 분야 전문가는 주로 학계에서 나왔고, 산업계 입장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며 “모비스 직원 25명이 새로운 길을 개척한 셈”이라고 말했다.

    모비스는 매주 화요일마다 전직원이 모여 미래 기술 분야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 / 모비스 제공
    ◆ 공부하는 회사…요즘 주제는 ‘인공지능’

    모비스 임직원들은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른 요즘도 공부 삼매경에 빠져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로 각광 받는 ‘인공지능(AI)’ 공부에 주력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직원 20여명이 회의실에 모여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매주 화요일을 스터디 데이로 지정했다”며 “외부 인공지능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을 듣거나 직원들이 각자 읽어온 논문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설명했다.

    거대과학 분야는 특성상 한 번 사업 수요가 발생하면 큰 규모로 진행되지만, 사업 기회 자체가 자주 주어지진 않는다. 모비스 직원들이 인공지능 공부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가속기 쪽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 당분간은 우리가 할 일이 많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기회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 대표는 자신의 또다른 주특기인 빌딩자동화 분야를 모비스의 사업 다각화 방안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 거대과학 분야에서 프로젝트가 소진됐을 때를 대비하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인공지능 기술을 빌딩자동화 분야에 접목할 경우 빌딩에서 발생하는 각종 에너지를 기존보다 훨씬 정교하게 통제하고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코스닥 상장 후에는 인재 영입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모비스 임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8000만원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석·박사급 고급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상장 후 기술력과 외국어 능력을 갖춘 우수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고 말했다.

    ▲액면가: 100원

    ▲자본금: 28억2300만원

    ▲주요주주: 김지헌(29.65%), 이의재(9.25%), 김형기(9.25%)

    ▲상장 후 유통 가능 물량: 전체 2823만427만주 중 32%인 903만주

    ▲주관사(하나금융투자)가 보는 투자 위험

    - 가속기와 핵융합실험로 모두 기초과학연구에 기반을 두는 빅사이언스 시설물이며 구축에 상당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경기변동 및 국가의 재정정책에 따라 연간 예산 집행 등이 크게 좌우될 수 있음. 이 경우 모비스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 수 있음.

    - 현재 배정돼 있는 가속기와 핵융합실험로 관련 총예산을 정부와 국제기구에서 감축하거나 예측불가능한 상황에 따라 공사기간이 연장된다면 모비스의 영업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음.

    - 대형 가속기는 현재까지 발견된 입자 관찰 기기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수단임. 그러나 대형 가속기를 구축하는 비용 또는 기간,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대체 가능한 수단이 개발 및 보편화될 경우 모비스의 기업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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