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분석] 핀란드처럼 한국도 기본소득? 출발부터 다르다

입력 2017.01.23 11:27

"다니던 회사가 파산해 실업자로 지낸 지난 5년은 수치스러운 날들이었습니다. 생활비 약간을 벌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했어요. 기본소득 덕분에 일에 종속되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핀란드 헬싱키에 사는 37세 남성 유하 야르비넨씨는 올해부터 정부로부터 매달 560유로(약 7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는다.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대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 실험은 2년 간 계속되며 대상자는 실업급여를 받는 25~58세 국민 중 무작위로 선정됐다.

6살인 자녀를 둔 야르비낸 씨는 5년 전 다니던 회사가 파산한 뒤 이른바 ‘백수’로 지냈다. 보모 일을 하는 아내의 월급과 정부에서 주는 실업급여, 아동 수당 등으로 생활을 이어갔지만 빠듯했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며 "기본소득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열광했다.

핀란드 정부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 간 국민 2000명에게 월 70만원을 주는 기본소득 실험에 나선다. / 조선일보DB
핀란드에서 올해부터 시작한 기본소득 실험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매달 돈을 주는 기본소득 실험에 나선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한국판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며 최근 새로운 복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복지강국 핀란드는 왜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것일까. 우리나라도 핀란드처럼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을까.

◆ 출발부터 다른 핀란드와 한국의 기본소득

핀란드와 한국의 기본소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도입 계기와 재원 마련 방식, 추진 주체 모두 대조적이다.

① 도입목적 : 핀란드 '복지 효율화'·한국 '복지 확대'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을 도입하게 된 계기는 치솟는 실업률이다. 핀란드는 경기 침체를 겪다가 지난 2015년 바닥을 찍고 개선되는 추세이지만 실업률은 8.7%로 다른 북유럽 국가보다 높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실업자 3명 중 1명이 직장을 잃은 지 1년이 넘은 장기 실업상태라는 점이다.

정부는 지나치게 풍요로운 복지 제도가 실직자의 구직 의욕을 꺾고 있다고 판단했다. 핀란드에서는 실직자에게 5년 동안 4인 가족 기준으로 전 직장에서 받던 임금의 73%와 맞먹는 복지 혜택을 준다. 미국의 복지 혜택의 3배 수준에 달한다.

소득이나 직업 유무에 관계 없이 국가에서 돈을 주면 근로 의욕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핀란드 정부는 반대로 생각했다. 기존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실업 상태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구직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정부가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핀란드 국민의 평균 생활비의 3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핀란드의 기본소득이 복지 제도 효율화에 목적을 두고 있는 반면 한국에선 기본소득이 복지 확대, 소득 증대의 수단으로 거론되고 있다. 기본소득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줘소득 재분배를 강화하려는 취지다.

국내 대선주자들의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 / 조선일보DB
② 정부 입장 : 핀란드 '적극 추진'·한국 '부정적'

IT기업가 출신인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는 "기존 복지체계의 비효율을 축소하고 레드 테이프(red tape·정부의 불필요한 형식절차)를 없애기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정부의 결정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이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기본소득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소 급진적인 복지제도인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보다는 기존 복지 제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소득 재분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국내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야권 대선주자들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과 노인, 농어민, 장애인 등 2800만명에게 육아·아동·청년배당 등 형태로 연간 10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동·청년·노인 등에게 월 30만원씩 지급하는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주장하고 있다.

③ 재원 마련 : 핀란드 '예산 지원'·한국 '증세'

핀란드 정부는 2년 간의 기본소득 실험에 필요한 돈 2000만유로(250억원)을 예산으로 편성한 상태다. 기본소득을 받고 취직에 성공한 이들이 실업급여를 더이상 받지 않게 됨으로서 절약되는 돈도 실험에 쓸 예정이다.

한국의 기본소득은 주로 재원을 증세를 통해 마련하자는 주장이 많다. 이재명, 박원순 시장의 안대로 기본소득을 추진하려면 연간 20조원이 상이 필요하다. 이 시장은 토지 소유에 세금을 매기면 연간 15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시장이 제시한 안대로 하면 연 28조원, 박원순 시장이 제시한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추진하면 연간 20조~35조원이 필요하다. 박 시장은 "세출 조정과 복지를 생애주기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존에 있는 제도를 정리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한국판 기본소득 도입? 넘어야 할 산 많다

우리나라에 기본소득이 도입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기초연금을 비롯한 무상복지 정책들도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사례가 있다.

다만 기본소득의 경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해야 하는 만큼 막대한 재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그 효과도 불확실한 만큼 핀란드처럼 예비 실험을 반드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에 앞서 복지 수준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정할 필요도 있다. 현재의 저부담 저복지에서 중부담 중복지로 가려면 국민의 합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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