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을 대표하는 초고층 주상복합 ‘갤러리아 포레’를 빼면 뭐 하나 새로운게 없을 것 같은 성수동. 주택가 사이사이로 공장과 창고가 들어섰던 이곳이 옛 때를 벗어던지고 젊은이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새로운 카페 거리로 변신 중이다.

정미소였던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대림창고’ 등이 있는 성수역 인근 성수동2가 상권이 공장과 창고 등을 리모델링해 빈티지한 느낌으로 얼리어답터들의 발길을 끌었다면, 같은 성수동이라도 ‘서울숲 카페거리’는 옛 주택가의 겉모습을 그대로 살린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들이 나름의 상권을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숲2길의 벽화. 1970~1980년대의 주택의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이 아기자기한 상권 분위기를 보여준다.

2012년 분당선 서울숲역이 생기면서 강남과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서울숲을 찾는 사람들도 늘기 시작했다. 인근 주택가에는 비교적 낮은 임대료 덕에 젊은 예술인들과 창업가들이 모이며 다양한 문화 행사들도 열렸다. 서울숲 상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젊은 사람들과 인근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을 주고객층으로 삼아 성장하고 있었다.

◆ 서울숲 가는길에 옛날집 고친 가게들이

서울숲 상권은 서울 지하철 2호선 뚝섬역과 분당선 서울숲역을 잇는 왕십리로와 서울숲을 향하는 서울숲길, 그리고 상권의 메인 거리인 서울숲2길로 둘러싸인 삼각형 모양의 상권이다.

골목 안쪽 곳곳에 들어선 가게들은 옛 주택을 리모델링해 아기자기하고 특색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오래 전 자리를 틀었던 문방구와 세탁소 같은 터줏대감 격 가게와 이제 막 들어온 ‘신참’ 가게들이 어울릴것 같지 않지만 나름 조화를 이뤄 보인다.

반지하로 들어가있는 아뜰리에와 공방들이 눈에 띄고 30~40년된 주택을 리모델링한 카페들도 많이 있다. 주변엔 카페와 식당으로 개조하는 공사도 꽤 많이 진행 중이다.

서울숲2길을 중심으로 옛 주택을 개조해 독특한 인테리어를 한 가게들이 많이 들어섰다.

서울숲2길 주변은 성수동의 터줏대감 ‘대성갈비’가 거리의 초입을 지키며 맛집 골목에 들어서는 방문객들을 맞는다. 성수동 ‘3대 빵집’이라 이름 붙은 ‘밀도’와 ‘빵의 정석’, ‘보난자 베이커리’도 그 주변에 있다.

인근 주민들은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하는 ‘소녀방앗간’과 ‘할머니의 레시피’를 추천하기도 한다. 같은 부부가 경영하는 ‘고니스’와 ‘윤경양식당’도 호응을 얻고 있다. 술집 ‘리퀴드랩’, 유기농 샐러드 가게 ‘더 피커’ 등도 특색있는 인테리어와 메뉴 덕분에 성수동을 대표하는 점포 중 하나가 됐다.

서울숲 상권에는 다양한 색채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갖춘 동시에 건강하고 스토리가 있는 콘셉트의 가게들이 많은 편이다.

서울숲 상권은 오래 전부터 자리를 지켜오던 가게들과 새로운 가게들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십년된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공사도 활발하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호텔조리외식경영학과 교수는 “서울숲 지역은 음식점이 많던 곳이 아닌 데다, 젊은 층의 창업이 많다보니 차별화된 콘셉트를 지닌 가게들이 많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 소셜 벤처에 모인 젊은 주고객층 확

인근에 소셜 벤처(Social Venture,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와 투자기업들이 여럿 위치한 것도 상권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

서울숲 인근은 다음 창업자 이재웅씨가 출자한 카우앤독(CoW&DoG), 구글 임팩트 챌린지에서 10위권 내 입상한 루트 임팩트(Root Impact) 등 소셜벤처가 있어 젊은 창업자들이 모여들었다. 자연스레 가게들도 젊은 분위기를 갖게 됐고, 인근 기업들의 직원들이 가게의 주고객이기도 했다. 소녀방앗간의 경우도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서울숲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았다.

2014년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국제적 조직인 더 허브(The Hub)의 한국지점인 임팩트 허브 서울와 루트 임팩트가 서울숲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소셜벤처 기업들을 지원해 20개에 가까운 기업체들이 들어섰다. 2015년 초에는 소셜 벤처 창업자와 예비 창업자 등을 위한 협업 공간인 ‘카우앤독’이 들어오면서 서울숲 상권에 젊고 활기찬 분위기를 더했다.

성수동1가에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 ‘카우앤독’에는 차량 공유 서비스 ‘쏘카(SoCar)’, 크라우드펀딩 업체 ‘텀블벅’ 등이 들어서 있었다. 카우앤독에서 서울숲 카페거리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닿는다.

상권 내에서 유기농 샐러드를 판매하는 송경호 더피커 대표는 “서울숲 인근이 갖추고 있는 소셜벤처 등의 사회적 인프라에 끌려 이곳에 가게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인근 사회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김잔디(26) 씨는 “요즘은 인근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SNS 입소문을 타고 이 곳 특유의 분위기를 확인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 지식산업센터·대형호텔·주상복합 등 호재…“젠트리피케이션 걱정돼”

서울숲 상권의 경우 주택 용도의 건물을 용도변경해 상가 건물로 바꾸는 작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초창기인 2012~2015년에는 바닥 권리금(최초의 권리금)이 없고, 월세도 높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여름을 전후해 갑작스레 권리금이 생겨나고 월세가 뛰기 시작했다. 일대 상권이 발달하고 입소문이 나면서 수익을 노리는 기업형 부동산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체 상권 발달뿐 아니라 뚝섬역과 서울숲역 주변으로 개발 호재가 풍부하고 이에 따라 유동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 것도 일대 임대료 상승에 영향을 줬다.

뚝섬역과 성수역 사이에 들어서는 포스코, SK 등 대기업들의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가 공사중이고, 서울숲역 주변에 부영이 짓는 ‘뚝섬 부영호텔’(49층 3개동, 1107실)과 두산중공업의 ‘서울숲 트리마제’(45~47층, 688가구) 등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및 호텔이 각각 2017년과 2019년에 들어설 예정이다. 대림산업의 ‘서울숲 아크로빌’(49층 예정)도 분양을 준비 중이다.

뚝섬역과 성수역을 사이로 지식산업센터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인근의 N공인 관계자는 “작년만 해도 3.3㎡당 2500만원 정도 하던 땅값이 올해는 3500만원 선에 거래가 되고 있다”며 “갤러리아포레 주변의 한 주택은 3.3㎡당 5000만원에 거래돼 고급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공인 관계자는 “예전엔 100㎡가량 되는 반지하 상가 물건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60만원 정도 됐었다”며 “지금은 지하 56.1㎡ 짜리가 월세 200만원 초반대에 거래되고 권리금도 생겼다”며 상권 분위기를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도 상당했다.

상권 내에서 건강식품 전문점을 하는 김모 씨는 “올해 하반기 들어서면서 너무 올랐다”며 “상권이 아직 성숙하지도 않았는데 임대료부터 올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성수부동산 관계자는 “원래 있던 사람들이 나가고 임대료 수익을 노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 임대료가 오를 수 밖에 없다”며 “전체 물건의 반은 손바꿈이 돼 나간 것 같다”고 전했다.

뚝섬역 인근의 H공인 관계자는 “아직까지 이곳 상권은 밤이 되면 휑하다”며 “상권 형성도 안 된 상태에서 임대 가격만 오르고 있는데, 이런 점 때문에 상권이 위협받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