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단독주택 평균가격 100만달러 육박
중국 자본 유치해도 경제 파급효과는 '글쎄'
기업·노동자는 탈(脫) 밴쿠버 행렬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에블라인 샤라(30∙여)는 지난해 5월 ‘ #donthave1million(100만달러가 없어요)’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을 시작했다. 밴쿠버 단독주택 평균 시세가 100만달러(약 11억2000만원)에 달하는 현실을 빗댄 이 해시태그(#)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밴쿠버 시민들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donthave1million’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리며 호응했다.

샤라는 “고소득을 올리는 의사들조차 단독주택을 살 여유가 없어 밴쿠버를 떠나고 있다”며 “밴쿠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밴쿠버 시민들이 살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밴쿠버 주택 가격은 최근 1년간 30%가량 급등했다. 캐나다부동산협회(Canadian Real Estate Association)에 따르면 밴쿠버 단독주택 평균 가격은 8월말 기준으로 157만8400캐나다달러(약 13억원)에 달했다. 밴쿠버 전체 주택 평균 가격은(아파트 포함) 93만3100캐나다달러(약 7억9000만원)를 기록했다.

캐나다 밴쿠버 서부 지역의 고급 저택. 이 주택은 지난 6월 2380만달러(약 267억원)를 호가했다.

밴쿠버의 부동산 버블은 영국 런던, 홍콩 등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도시들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말 스위스 은행 UBS가 발표한 부동산버블지수에 따르면, 밴쿠버는 영국 런던, 스웨덴 스톡홀름, 호주 시드니, 독일 뮌헨, 홍콩 등을 제치고 부동산 버블이 가장 심각한 도시로 꼽혔다.

UBS는 보고서에서 “밴쿠버 부동산 가격은 지난 10년간 2배나 올랐다”며 “캐나다달러화가 약세를 보인 틈을 타 투자 차익을 노린 외국 자본이 유입됐다”고 분석했다.

◆ 다문화에 관대한 밴쿠버, 중국 부자 선호도 높아

전문가들은 캐나다 밴쿠버의 집값 상승의 가장 큰 원인으로 ‘차이나머니’를 꼽는다. 캐나다는 미국, 영국에 비해 이민 제도가 까다롭지 않아 중국 자본이 꾸준히 유입된 역사가 있다. 그 중에서도 밴쿠버는 다양한 인종이 사는 국제도시면서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영어권 지역이라는 이유로 중국인들이 특히 선호하는 곳이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중국 자본의 캐나다 투자를 부추겼던 것은 투자이민 제도였다. 캐나다의 경우 투자 최소 금액 기준이 다른 서구권 국가보다 낮았다. 캐나다의 경우 주(州) 정부에 80만캐나다달러(약 8억9000만원)를 5년간 무상으로 빌려줄 경우 영주권 신청서를 낼 수 있도록 허용했었다. 반면 영국의 경우 시민권 취득에 약 200만파운드(약27억5000만원)~1000만파운드(약 137억5000만원)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 부자들이 이 제도를 악용해 시민권을 매입만 할 뿐 실제로 이주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캐나다 정부는 2014년 2월 이 제도를 없앴다. 시민권을 얻은 중국 부자들이 그들의 가족만 캐나다에 보내고 실질적인 사업은 중국이나 아시아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캐나다에 실질적인 투자는 거의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 고용·임금증가 효과 미미

투자이민제는 폐지됐지만 중국 부자들은 밴쿠버 부동산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부동산 경제학자인 토머스 다비도프는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전례 없는 외국자본 홍수가 캐나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여전히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밴쿠버의 경우 건물을 지을 땅은 부족하지만, 세율이 낮고 현금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라 중국 자본이 대거 유입됐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집값 상승 후유증.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밴쿠버의 부동산 급등세에 대해 “주택 단지였던 곳에 대형 맨션이 들어서고, 중국 부유층 자녀들은 초고가 차량인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니고 있다”고 묘사했다. 캐나다 지역 언론들도 집값 상승을 견디지 못한 밴쿠버 시민들이 SNS를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자본이 들어와도 경제적 효과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산업 용지를 찾지 못한 기업들이 밴쿠버를 떠나면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포트메트로 밴쿠버의 로빈 실베스터 대표는 “밴쿠버의 경제 성장이 한계에 봉착할 위기에 처했다”며 “10년 이내에 밴쿠버 인근 로어 매인랜드 지역에서는 더 이상 산업용지 공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젊은 노동자들이 밴쿠버를 떠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밴쿠버 신용협동조합은 “거주비 상승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10년 이내에 시 외곽으로 밀려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노동력 부족에 따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앵거스 레이드 조사에 따르면 밴쿠버에 거주 중인 가구 중 15만 가구가 밴쿠버를 떠나 이사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 부동산 시장 전망 엇갈려

결국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정부는 지난 8월 2일부터 밴쿠버와 주변 지역 주거용 부동산을 거래하는 해외 투자자에게 15%의 양도소득세를 추가 부과하는 조치를 취했다.

세제 강화 덕분인지, 일단 밴쿠버 부동산 시장은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광역밴쿠버부동산보드(REBGV)에 따르면 지난 8월 밴쿠버의 주택 거래는 2489건으로 전달보다 23% 줄었고, 전년 동기에 비해서도 26% 감소했다. 8월 주택 매매 평균 가격도 전달보다 17% 하락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밴쿠버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캐나다 정부가 여전히 중국 자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8월 존 맥컬럼 캐나다 이민부 장관은 “중국인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중국 내 비자 업무를 담당하는 현지 영사관을 2~3배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투기 자본은 꺼리지만 우수 인력과 직접 투자를 유치하고 싶어하는 캐나다 정부의 소망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향후 캐나다 부동산 시장의 추이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