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휴대폰 사업 30년 최대 '위기'…갤노트7 참사 미스터리의 시작은

입력 2016.10.12 07:00

갤럭시 신화(神話)가 무너졌다.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삼성전자의 ‘대(大)화면’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가 연말 최대 성수기를 앞두고 ‘단종(斷種)’의 운명을 맞았다. 출시 59일만이다. 애플의 심장을 정조준하겠다는 갤럭시노트7의 꿈도 날아갔다. 최고의 기대작의 허망한 퇴장이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도 3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갤럭시노트7이 배터리 발화, 전량 리콜, 판매 재개, 생산 판매 중단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품질 경영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에 금이 갔다. 삼성전자는 연간 3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파는 세계 1위 휴대폰 사업자다.

1995년 휴대폰, 팩시밀리 등 15만대를 불태우는 눈물의 화형식으로 품질 경영을 다진 삼성전자였다. 2007년 아이폰 등장으로 모토로라, 노키아 등이 차례로 퇴출되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삼성전자였다. 외부의 공격이 아닌 스스로 무너진 갤럭시노트7의 비극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내년 3월 출시되는 갤럭시S8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 실적주의에 내재화 욕심...곳곳에서 나온 참사의 ‘전조’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을 만든 우리(무선사업부) 모두의 문제입니다.”

지난달 사상 초유의 대규모 리콜에 이어 갤럭시노트7 단종이 결정된 11일 삼성전자 사내 게시판에는 무선사업부 직원들이 반성과 사과를 담은 게시물이 줄지었다. 주목할 점은 수년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만들어온 시스템과 관행에 대한 반성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직원은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는)고동진 사장을 비롯한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시스템을 만든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2일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2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열린 갤럭시노트7 관련 긴급브리핑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업계에서도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제품을 기획해 생산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과도한 실적주의가 품질저하를 초래해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부터 삼성전자는 제품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스마트폰 핵심 부품인 터치IC, 터치스크린 패널, NFC 등을 모두 내재화했다. 외부 협력사에 주문해왔던 부품을 삼성전자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금속 외장 부품인 메탈케이스도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자는 원래 KH바텍이라는 협력사에서 메탈케이스를 구매해왔다. 갤럭시S6 출시를 앞두고 삼성전자는 베트남 공장에 자체 대규모 메탈케이스 제조설비를 설치해 직접 케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쇠를 깎아 성형하는 장치인 컴퓨터정밀제어(CNC) 장비를 구입하는데 1조원 넘게 썼다.

삼성전자는 자체 생산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미국 시냅틱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NXP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의 납품 관계도 끊었다.

국내 팹리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제는 삼성전자가 기술적으로 완벽한 수준에 올랐기 때문에 주요 칩을 내재화한 것이 아니라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적당한’ 수준의 제품을 스마트폰에 넣었다는 것”이라며 “또 이 과정에서 협력사의 기술을 카피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삼성과의 거래를 꺼리는 업체들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핵심 부품은 자체 생산하면서 외부 협력사에서 구매하는 나머지 부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최저가 공개 입찰을 도입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베트남공장의 스마트폰용 부품구매 방식을 ‘3개월 단위 최저가 공개입찰’ 방식으로 변경했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핵심부품에 대한 구매 방식을 3개월마다 물량과 단가를 공개 입찰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사실상 최저가 업체로 선정되어야만 부품을 납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구미공장 전경 모습. /박성우 기자

◆ 신제품 속도전에 과부하 걸려

삼성전자는 발 빠른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그동안 제품을 가장 빨리 출시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운용해 왔다. 엣지 디스플레이, 홍채인식, 방수 등 매년 빠르게 신기술을 도입한 신제품으로 라인업을 다양화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속도전’이 결과적으로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전자는 플래그십(기업의 기술력을 집약한 제품) 모델을 크게 상반기의 ‘갤럭시S’와 하반기 ‘갤럭시노트’ 시리즈로 나뉘어 운용한다. 각 모델당 신제품 출시 주기는 약 1년. 이는 신제품의 콘셉트 설정과 부품수급, 시제품 제작, 완제품 생산 및 마케팅 유통 전략을 짜는데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반년 정도 앞서 신제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갤럭시S7이 출시될 때쯤이면, 이미 내부적으로 내년 신제품에 대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갤럭시노트7 초기 생산량을 사상 최대치인 월평균 300만대 수준으로 높여 잡으면서 부품 공급체계 전반에 걸쳐 ‘과부하’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전작인 갤럭시노트5보다 두 배 높은 생산량이다.

갤럭시노트7 제품을 분해한 모습 /IFIXIT 홈페이지 캡처
여기에 복잡한 부품공급 과정도 품질을 저해하는 요소가 됐다. 원가절감과 생산효율 증진을 위해 여러 회사와 다양한 국가에서 생산된 부품을 공급받으면서 품질 검수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판매한 휴대폰은 3억2480만대이다. 스마트폰에 필요한 부품 수는 약 700~1000개 수준이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연간 최대 3000억개 이상의 부품 품질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빡빡한 출시일정과 스마트폰의 고사양화가 겹치며 서플라이 체인(상품 생산·공급 과정)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부품 수급 시스템을 수원과 구미로 이원화해 운용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삼성전자는 전자적 특성을 지니는 부품을 수원에서, 비전자적 특성을 지니는 부품을 구미 사업장에서 수급하고 있는데, 이 같은 시스템에서 종종 혼선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미국에서 방수 기능 결함 문제로 곤욕을 치른 ‘갤럭시S7 액티브’ 제품 역시 구미사업장에서 수급한 방수 부품에 문제가 발생했지만 본사에서는 한동안 원인을 찾지 못해 문제 해결에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갤럭시8 카드로 명성 되찾으려면...복잡 네트워크 관리할 품질 2.0 필요

삼성전자는 내년 초 나올 갤럭시S8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갤럭시노트7의 단종을 전격 결정했다. 배터리 발화 문제를 질질 끌 경우 삼성전자 브랜드 자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 당국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삼성전자가 소비자의 안전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부품 내재화와 속도전에 매몰된 현재의 시스템을 외부 협력을 강화하고 복잡해진 부품 공급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품질 2.0 시스템 체제로 개선하지 않으면 갤럭시S8 이후 시리즈에도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마트폰의 부품 집적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고 금융 결제와 클라우드 등 스마트폰 내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스터리'에 가깝다. 갤럭시노트7 발화의 원인으로 방수 도입과 배터리 설계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원인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계상에서 미묘하지만 치명적 오류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발화를 시뮬레이션 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다. 기존의 품질 검수 방법으로는 향후에 불거질 새로운 문제를 예상하고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품질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라며 “모든 제조업이 비슷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생산량을 초과하게 될 경우 서플라이 체인이 복잡해지고 실적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 등에 의해 제조 프로세스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갤럭시 시리즈의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나>

“전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화와 종료 버튼이 왜 제일 불편한 하단에 있습니까. 모토로라를 이기겠다고 했는데 자신 있소? 하다 안되면 나에게 찾아오시오. 내가 방법을 알려줄 테니.”


199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휴대폰 연구개발 임원과 나눈 대화이다. 당시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던 모토로라의 제품은 통화와 종료 버튼이 하단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한 손으로 버튼을 누르기에는 위에 있는 것이 더 편했고, 종료 버튼을 누르다가 휴대폰을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10월 이건희 회장의 아이디어가 녹아든 삼성전자 ‘SH-770’이 출시됐다. 이 제품은 ‘애니콜(Anycall)’ 브랜드를 처음으로 사용한 휴대폰이기도 하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삼성전자는 1995년 8월 시장 점유율 52%를 기록하며, 만년 1위였던 모토로라를 누르고 시장의 선두주자로 올랐다. 특히 통화와 종료버튼을 상단에 배치하는 것은 전 세계 휴대폰 제조사의 표준이 됐다. 모토로라의 아성이 무너지고 애니콜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공장 앞마당에서 진행된 불량제품 화형식의 모습 /삼성전자 제공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앞마당. 2000여명의 삼성전자 직원이 ‘정성품질 고객만족’이라는 띠를 두른 비장한 모습으로 속속 집결했다. 마당 한복판에는 15만대에 달하는 무선전화기, 팩시밀리와 키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불도저가 제품들을 산산조각 냈다. 그리곤 박살 난 제품들에 불까지 붙였다. 이날 모두 500억원어치의 제품이 재가 됐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품질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애니콜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1999년 손목시계형 휴대폰인 일명 ‘워치폰’을, 1999년 8월에는 최초로 휴대폰과 MP3플레이어 기능을 통합한 MP3폰을 출시했다. 이후 세계 최초의 TV폰, 2000년에는 디지털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카메라폰’을 선보이기도 했다.

애니콜 브랜드로 승승장구하던 삼성전자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하면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삼성전자는 ‘패스트팔로어(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경영방식)’ 전략으로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스마트폰 ‘옴니아’를 내놨다.

하지만 옴니아는 수많은 버그와 답답한 성능으로 ‘옴레기(옴니아+쓰레기)’라는 별명을 얻으며 참패했다. 삼성전자는 이듬해 자체 개발 운영체제(OS) ‘바다’를 채택한 ‘옴니아2’를 선보였지만,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삼성전자 구미공장 박물관에 전시된 휴대폰 사업 초창기 제품들의 모습 /박성우 기자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일류화에 시동을 걸기 위해 구글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2010년 구글과 협력해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갤럭시S’를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애플이 독식하던 스마트폰 시장의 구조가 아이폰과 갤럭시의 양강체제로 바뀔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급기야 삼성전자는 갤럭시S 출시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갤럭시S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으로는 처음으로 10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갤럭시S에 이어 S2, S3, S4, S5, S6, S7으로 이어지는 제품을 매년 선보였다. 여기에 지난 2011년부터는 대화면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 시리즈를 출시해 ‘패블릿(전화+태블릿)’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아왔다. 대화면 스마트폰은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먼저 개척해온 시장이었다. 이 밖에 삼성전자는 갤럭시A, J, Z 등 다양한 중저가 모델을 선보이며 제품군을 다양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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