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美HP에 30여년 프린터 사업 넘기나…"24시간 내 공식 발표"

입력 2016.09.12 15:55

삼성전자가 12일 기준 24시간 내로 프린터 사업부 매각에 대한 공식 발표를 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날 조선비즈에 "프린터 사업 매각에 대한 회사의 공식 발표가 이르면 오늘(12일) 오후, 늦으면 내일(13일)쯤 있을 것"이라며 "HP(휼렛패커드)에 매각하는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매각을 결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스테플즈(Staples) 매장에서 삼성전자 현지 직원이 삼성 복합기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번 매각은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프린터 사업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B2B(기업간거래) 영역으로 굳어지면서 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세계 1위가 어려운 비주력 사업을 청산하고 주력 사업을 강화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프린터 사업부 매각 규모를 2조원대로 추산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린터 사업부 매각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바가 없다"며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 비주력 사업 과감히 정리하는 삼성


삼성전자는 HP와 올해 초부터 매각 협상을 논의했고, HP가 삼성전자의 기존 인력을 흡수하기로 하면서 진척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프린터 사업부 인력 2000여명과 중국, 브라질 생산법인이 매각 범위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HP에 사업을 넘기게 된 데는 이전에 쌓아둔 협력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사는 과거 삼성휼렛패커드라는 합작회사를 만들었고, 2003년에는 잉크젯 관련 기술을 공유하기도 했다. 또 삼성전자가 A3 복합기에 강점이 있는 점도 HP가 인수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삼성전자의 프린터 사업부 매각설은 지난해부터 불거졌다. 루머는 삼성전자가 프린팅 솔루션 업체 '심프레스' 인수와 함께 B2B 시장 공략을 선언하자 잠잠해졌다. 성과도 있었다. 삼성전자 프린터는 미국 3대 전문 유통 채널(스태플즈, 오피스 디포, 오피스 맥스)이 보유한 총 3200여개 매장의 약 86%인 2800여개 매장에 입점했고, 통합문서관리서비스(Direct MPS)를 통해 기업 고객을 늘렸다. 당시 삼성전자는 "기업 고객 확보를 위해 미국과 유럽 시장을 전략 지역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그룹 수뇌부들에게 저성장 시대에 대비한 변화를 요구하며 비주력 사업을 정리할 것을 주문해 왔다. 삼성그룹이 실적이 나쁜 방산과 화학 부문을 빠르게 매각하고, 전자와 금융 계열사에 힘을 집중한 것은 이에 대한 호응이었다. 삼성전자에서는 프린터와 카메라가 비주력 사업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세계 1위가 되기 어려운 사업은 억지로 끌고 가는 것보다는 과감하게 정리하고 1위가 될 수 있는 사업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굴곡 많았던 삼성 프린터 사업

국내 프린터 역사는 1980년 중반 삼성전자, 삼보, LG, 큐닉스 등이 HP, 엡손, 캐논 제품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으로 수입,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도트 프린터를 거쳐 잉크젯 프린터가 활개를 칠 때까지도 국내 기업들은 원천기술 하나 없이 수입에만 의존했다.

자체 프린터 개발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1983년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도트 프린터와 잉크젯 프린터 개발에 나섰고 구미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1990년에는 프린터를 담당하던 사무자동화(OA) 사업부의 명칭을 디지털프린팅 사업부로 바꾸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미 HP, 엡손 등 선진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삼성전자가 2007년 출시한 레이저 복합기 ’레이'의 모습 /삼성전자 제공
당시 삼성전자의 프린터 생산물량 가운데 85%는 대부분 해외 업체로 수출되는 OEM 물량이었다. 또 프린터 산업의 특성상 개발 및 생산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10년 동안은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독자 브랜드로 제품을 내놓는다는 소문이 돌면 OEM 물량 자체도 사라질 상황이었다. 경쟁자가 될 기업에 OEM 물량을 제공할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컬러잉크젯 분야는 HP 등 상위 5개 기업이 형성한 카르텔 방어막이 견고해 좀처럼 파고들기가 어려웠다. 이들 상위 5개 기업이 보유한 특허만 7000여개에 달했다. 이들이 지닌 상당수 특허기술을 피해 경쟁력 있는 신기술을 새로 개발하는 것은 비용·인력·시간 제약으로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프린터 사업을 포기하기보다 투자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프린터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지만, 규모가 크고 경쟁업체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는 레이저 프린터사업에 주목했다. 삼성전자는 프린터 연구개발(R&D)에 글로벌 업체보다 두 배가 넘는 비용을 쏟아부었다. R&D 인력이 전체 인력의 60%에 달할 만큼 프린팅사업부는 독자기술 확보에 매진했다. 그 결과 2003년 독자기술로 개발한 첫 레이저 복합기 ’레이'를 출시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프린터 사업은 2008년까지 개인용 PC 보급이 늘면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2009년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PC 수요가 위축됐고 덩달아 프린터 시장도 급속히 위축됐다. 여기에 스마트폰, 태블릿 등 ’포스트PC’로 불리는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PC 관련 제품들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종이로 문서나 사진을 인쇄하는 사용자 패턴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결국 삼성전자의 프린터 생산물량은 점차 줄어들었다. 지난 2008년까지 삼성전자는 구미에서 연간 120만대 이상의 프린터를 생산했다. 하지만 2009년 생산물량은 33만대 수준으로 급감했고 결국 구미의 프린터 라인을 모두 중국으로 옮기는 데 이르렀다.

국내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프린터와 복합기 등 사무기기를 중심으로 하는 B2B시장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쳤지만 ‘페이퍼리스’라는 시대 흐름과 선진 업체들의 시장 선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며 ”삼성전자의 매각 결정은 프린터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특허와 기술력을 제값에 넘길 수 있을 때 팔자는 생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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