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인터뷰] "뜨는 동네 승자와 패자를 나눠선 안돼" 젠트리피케이션 총체적으로 분석한 이기웅 성공회대 교수

조선비즈
  • 배정원 기자
    입력 2016.09.01 15:00 | 수정 2016.09.01 19:10

    서촌, 익선동, 해방촌, 경리단길 동네는 뜨는데 떠나야 하는 주민들
    ‘테이크아웃드로잉’, ‘우장창창’ 갈등에 진정한 승자는 없어
    2000년대 초반 젠트리피케이션 개념 ‘쫓겨남’보다 ‘활성화’에 방점 둬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골목으로 꼽히는 가로수길 곱창집 ‘우장창창’ 철거 현장 앞에서 서윤수 사장이, 법원의 퇴거 명령에 반대해 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가로수길 곱창집 ‘우장창창’이 난리다. 우장창창이 입주해 있는 건물을 인수한 가수 리쌍과 4년 넘게 갈등을 빚고 있어서다. 리쌍으로부터 가게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은 우장창장은 지난 7월 18일 강제 퇴거됐지만, 세입자의 ‘을질’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탄생시켰다. 임차인인 우장창창 대표 서윤수씨가 계약기간이 만료됐음에도 나가지 않고 연예인이라는 리쌍의 신분을 이용해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것.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갑’ 건물주의 횡포로 비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신간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대중문화 연구자 8명이 지난 2014년부터 3년에 걸쳐 서울 뜨는 동네 8곳 132명의 ‘도시 난민’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사진=푸른숲 제공
    젠트리피케이션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낙후된 지역에 저렴한 임대공간을 찾는 예술가들이 찾아오고, 이들이 연 공방과 카페는 지역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자 ‘뜨는 동네’가 된다.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기 시작하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다시 몇년이 지나면 스타벅스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지점이 대거 들어와 땅값과 건물값을 올려놓는다.

    이 과정에서 건물 임대료가 상승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기존 상인이나 원주민들이 쫓겨나다시피 지역을 떠난다. 이렇게 가난한 예술가와 부유한 건물주의 대립으로 이분화되는 현상은 더할 나위 없이 선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언론과 대중의 반응 역시 한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홍대를 떠나 연남동 골목에서 꿋꿋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다른 관점을 요구한다.

    새로 나온 책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지금 젠트리피케이션 담론에서 필요한 것은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정교한 관찰”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룬 연구가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서울의 도시 변화를 서술하는데 그쳤다면, 이 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두고 승자와 패자, 건물주와 세입자, 들어온 자와 내쫓긴 자 간의 갈등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벗어났다. 이번 연구를 주도했던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이기웅 교수를 만났다.

    이기웅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최근 ‘뜨는 동네’ 세입자와 건물주의 갈등이 커지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그렇죠. 젠트리피케이션은 부정적인 의미로 대부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2~3년 전만 해도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 재생’이라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낙후된 동네로 꼽히는 경리단길, 해방촌, 연남동에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이 문을 열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점에 방점이 둔 단어였습니다. 저희도 연구를 시작할 때는 재미있는 대중문화 트렌드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1~2년 사이 분위기가 빠르게 달라졌죠. 오늘날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 문제가 아니라 상가 문제, 임차인이 쫓겨나는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운동가들뿐 아니라 언론, 학계에서도 모두 부정적인 개념,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거죠?

    “테이크아웃드로잉, 우장창창 같은 세입자와 건물주의 갈등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가와 가난한 예술가, 자영업자의 대립, 갈등, 싸움으로 굳혀지는 거죠. 문화 혁신가의 노력과 땀의 결실이 결국 자본가의 배만 불리는 상황에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는 것이죠.”

    합정동의 YG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테이크아웃드로잉 관계자들.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로 유명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서울 한남동에서 예술가들이 모여 운영하는 카페. 이 건물의 소유주가 가수 싸이다./사진=이병희 기자
    -인기 상권의 임대료 상승 문제는 과거에도 있지 않았나요?

    “최근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화두가 된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문입니다. 당시 뉴타운 정책이 실패하면서 아파트 경기가 나빠졌고, 남아도는 자본이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결국 자본가는 아파트 대신 상가에 투자하게 됐는데, 동시에 직장에서 해고된 자영업자는 급증했죠. 이렇게 ‘뜨는 동네’의 상가 임대료가 지난 5년간 빠르게 올랐고, 세입자와 건물주의 갈등이 부각된 것입니다.”

    -최근 가수 리쌍과 세입자의 갈등은 두고 ‘건물주의 갑질’ vs ‘세입자의 을질’이라는 표현이 처음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을질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을이 어떻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겠어요? 그들이 그곳에 더 머물러 큰 이득을 보려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생업을 하시는 건데, 사실 생존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장창창 사건’에서 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은 없던데, 현재 임대차보호관계에서 세입자의 권리가 너무 약하다는 얘긴가요?

    “그렇습니다. 2013년 법이 개정되면서 세입자의 권리를 5년 동안 보장받게 되어 있는데,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예컨대, 프랑스는 임대계약기간이 최소 9년입니다. 일본이나 영국은 건물주의 전근, 요양으로 건물을 비워야 하거나 건축물 노후화로 철거할 경우 등 신규임대계약 거절 시 특별한 사정이 인정돼야 합니다. 사실상 장기간 위치를 바꾸지 않고 장사할 수 있다는 얘기죠.

    임대차보호관계는 단순히 건물주와 세입자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컨대, 흔히 일본에는 가업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100년, 200년 된 기업이 수천개이고, 1000년이 넘은 기업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바탕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법적 권리가 보장되는 임차인 보호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연남동, 서촌, 해방촌, 가로수길 등 서울의 ‘한때 떳다가 지는 동네’ 8 곳을 소개한다. /조선DB
    -하지만 그럴 경우 건물주의 권리를 너무 제한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임차인의 권리를 덜 보호하는 것이 건물주의 권리를 더 보호하는 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누가 더 벌면, 누군 덜 버는 문제가 아니란 것이죠. 젠트리피케이션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 지금 뜨거운 이유도 이렇게 ‘건물주 vs 세입자’ ‘들어온 자 vs 내쫓긴 자’ ‘승자’ vs ‘패자’ 등 둘로 나뉘는 프레임 때문입니다.

    어떤 낙후된 장소가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해 인기를 끌고, 대기업이 들어와 똑같은 풍경을 만들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대료 상승도 중요하지만, 상인 말고도 원주민, 주거 세입자 등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훨씬 광범위합니다.

    예를 들어 서촌은 분명히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는 장소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서촌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새로 들어온 주민(신주민)과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맺는 토박이가 있는가 하면 신주민을 배척하며 거리를 두는 토박이도 있습니다. 뒤늦게 이곳에 들어왔지만 ‘주민이 되고자’ 하는 사회운동가도 있고, 서촌에 카페·상점 등을 운영하며 공동체를 꾸려가는 창의적 자영업자도 있습니다. 다른 처지에서 각자 다른 경험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당사자라는 것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새로운 동네를 찾는 예술가로부터 시작된다는 건데, 이런 행위가 위축돼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애초 홍대 앞이나 가로수길이 젠트리피케이션이 되는데 기여했던 예술가, 문화기업가들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임대료가 싸니깐, 가게를 차리고 둥지를 튼 거죠. 그리고 그곳을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겁니다. 그게 자본을 유입시켜 자기들도 쫓겨나고 지역 자체가 황폐화된 걸 본 거죠.

    지금은 그들도 다른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떼로 모여서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환경 개선을 하는 게 아니라 곳곳에 흩어져서 자신들의 작업이 그 지역을 크게 바꾸지 않도록 하거나, 입지 선정을 할 때부터 차도 못 들어올 정도로 좁은 골목길처럼 도저히 젠트리피케이션이 안될 곳에서 시작하는 거죠.”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중인 서촌의 거리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다. 모두가 젠트리피케이션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연구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 중 전치(轉置·displacement)에 주목했다. 자신이 뿌리내린 장소(place)에서 부정(dis-) 당하는, 즉 쫓겨난 이들은 안정감의 상실, 불안, 무력감을 호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옮겨간 곳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도모한다. 이 책은 거대한 도시 변화 현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장소’가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챕터는 장소로 분류되어 있지만, 결국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연구에 집중한 것 같습니다. 132명을 인터뷰한 소감이 어떤가요?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밥 먹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뜻 내가 사는 동네가 명소가 되면, 레스토랑이 많아지니 살기 좋을 것 같죠.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놀러 오는 사람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온도 차는 큽니다. 자기가 살던 공간이 관광지화됐기 때문에 유명 맛집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편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김밥, 김치찌개 집은 사라지죠. 하다못해 세탁소, 미장원, 철물점도 없어집니다. 생활의 터전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지는 겁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정점에 있는 동네들은 원래 낙후된 주택가예요. 사는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그들의 끈끈한 공동체로 일군 삶의 생태계가 마련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 소음 등 ‘살 수 없는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이주하게 됩니다. 이사가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살 만한 동네를 다시 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도시 공간이 하나의 자본의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생존, 생활의 공간이고, 또 문화의 공간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젠트리피케이션이 거대한 도시 변화의 불가피한 현상인지, 아니면 주민의 자생적 노력과 정책적 개입으로 막을 수 있는 현상인지 한번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가장 먼저 법적인 제도적 장치도 보완되어야 하지만, 법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건물 소유를 통해 큰 돈을 벌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하는 이상 자본가들은 어떻게든 이익을 늘리는 수단을 찾아낼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소유의 관념’을 바꾸고 ‘공공성의 개념’을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적인 상식으로 통용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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