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코리아’를 말할 때 너나없이 첫 손을 꼽는 게임이 ‘리니지’다. 1998년 9월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는 올해 누적매출 3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게임 하나가 기록한 조 단위 매출은 국내에서 개봉된 역대 1000만 관객 동원 영화의 매출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또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는 K팝을 통해 올린 매출보다도 많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에서는 리니지를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 지식재산권(IP)으로도 꼽힌다.
◆ ‘리니지 신화’ 만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누구인가
리니지 대박 신화를 만들어낸 게임 기업 엔씨소프트는 김택진씨가 1997년 창업한 회사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우리나라 IT 산업계 신화를 일궈낸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CEO로 꼽힌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1967년 3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 대표의 어린 시절은 나름 부유하게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 강동구 길동에 위치한 D 택시회사를 운영하면서 김택진 대표 공부를 뒷바라지 했다. 아버지가 운영한 회사는 1969년 설립된 곳으로, 택시 80대 직원 200명 규모의 중급 택시회사로 안정적으로 운영이 됐다. 그리고 2009년 자식들의 권유로 문을 닫았다. D 택시회사는 강동구 택시브랜드 ‘KD택시’의 주요 참가 회사다.
중간에 아버지 사업 부도로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 때 당시 김 대표의 아버지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가출하기도 했다. 부모의 힘든 시기를 지켜봤던 김택진 대표는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공부에 몰두했고 기대에도 부응했다. 김택진 대표는 1985년 대일고를 졸업,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가 1989년까지 학업에 매진했다.
1991년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같은 대학 대학원 컴퓨터 공학 박사 과정을 밟다가 1997년 중퇴해 현재 리니지로 신화를 만든 엔씨소프트를 창립하게 됐다.
◆ 개발자 정신 투철한 김택진 대표, 엔씨소프트 창립 이전 아래아한글·아미넷 만들어
김택진 대표의 꿈은 원래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며 소프트웨어 개발에 입문하게 됐다.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그는 개발 정신이 투철했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재학 시절 ‘컴퓨터연구회(SCSC)’ 동아리에 들어갔다. 1989년에는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을 만나 ‘아래아한글’을 공동 개발했다.
아래아한글은 한국 최초의 워드프로세서로, 그래픽기능을 갖춘 획기적인 제품으로 손꼽힌다.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점하고 있을 당시 자국 언어로 된 워드프로세서가 MS 워드를 제친 것은 ‘아래아한글’이 유일했다.
아래아 한글의 선풍적인 인기로 큰 돈을 만지게 됐고, 이후 회사도 세우게 됐다. 그 회사가 바로 ‘한글과 컴퓨터’다. SCSC 동아리 회원들이 회사 중역으로 스카웃 됐다. 그런데 김택진은 이를 거부했다. 당시 그의 꿈은 공과대학 교수였기 때문이다.
스카웃 제의를 거절한 김택진 대표는 국내 어려운 컴퓨터 환경을 바꾸기 위한 개발을 이어갔다. 당시 컴퓨터에서 자유롭게 한글을 쓸 수 없었던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사명감으로 연구에 돌입했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제품이 한메 한글이다. 창업을 하는데 아버지 도움도 컸다. 아버지 사업이 잘되던 시절 택시 회사 건물에서 시작했다.
한메 한글은 대박을 냈다. 나오자마자 판매량 1위를 달렸다. 각종 응용프로그램에서도 자유롭게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에서 아래아 한글만큼이나 컴퓨터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줬다.
군대에서도 개발 정신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 병역특례 전문요원으로 현대전자 보스턴 연구 개발 센터(R&D Center)에서 근무했다. 개발 능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승진했다. 그리고 1996년까지 현대전자에서 국내 최초의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 아미넷(신비로)를 만들어 개발 팀장으로 일을 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 그룹 회장은 김택진씨를 보고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대전자 내부에서 김택진이 개발한 아미넷을 두고 분열이 일어났다. 현대전자와 현대정보통신이 서로 인터넷사업 분야를 전담하기 위해서 주도권 싸움을 벌인 것이다. 주도권 싸움 때문에 1년 넘게 사업이 그룹 내부에서 표류 됐고, 발전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싸움에 염증을 느낀 김택진 대표는 차라리 자기가 회사를 세우겠다는 꿈을 품고 현대전자를 퇴사했다. 그리고 1997년 엔씨소프트를 만들게 됐다.
◆ 김택진 대표 개발자 정신 게임 산업 만나 더욱 빛나
김택진 대표의 개발 정신은 창업 이후에도 이어졌다. 특히 게임 산업과 만나며 더욱 빛나는 결과물을 만들게 됐다.
현대전자를 나왔던 당시의 그의 나이는 31살. 1997년 김 대표는 현대전자에서 일하던 동료 16명과 함께 자본금 1억원으로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New Company’의 약자를 땄다.
당시 업계에서는 김택진 팀장이 현대전자를 박차고 나왔다는 소식이 빠르게 돌았다. 그리고 그가 회사를 세우자 대기업들의 제작 의뢰가 넘쳐 났다. 김택진 대표가 회사를 창업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SK에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 ‘넷츠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국내 최초로 100% 순수 인터넷 기반 넷츠고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면서 컴퓨터 업계에서 명성을 더욱 떨치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김택진 대표는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바로 게임 분야다.
새로운 분야 개척을 위해 그는 송재경씨(현 엑스엘게임즈 대표)를 만나게 됐고, 대박 신화의 결과물인 리니지가 탄생하게 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통신과 언어 소프트웨어(S/W)에 일인자로 김택진을 꼽았다면 게임 SW에선 송재경이란 말이 돌 정도였다. 송재경은 넥슨에서 나와 아이네트란 허진호 박사가 이끄는 회사에 일을 했다. 이때 송재경이 아이네트에서 게임 프로젝트를 이끌었는데 그 게임이 바로 리니지다.
그런데 1997년 IMF가 오게 됐고, 아이네트는 회사가 힘들어지자 구조조정을 하면서 게임 개발을 전격 취소하게 됐다. 이 때 김택진 대표는 허진호 박사와 인연으로 송재경씨와 만나 게임 프로젝트 리니지 사업을 이어받고 그를 영입하게 됐다.
이렇게 엔씨소프트로 합류한 송재경은 김택진 대표와 함께 리니지 게임을 대대적으로 수정해 완성도를 높였다. 원래 리니지 게임은 PC통신 기반이 였는데, 김택진 대표는 송재경에게 리니지 프로젝트를 수정을 요구했다. PC통신 기반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인터넷 기반으로 만들자고 한 것이다.
대수술을 거쳐 1998년 정식 출시 된 리니지는 앞선 기술을 최초로 도입, 인터넷 기반 온라인 게임의 대중화를 이끌어 냈다. 반응은 대단했다. 전국이 리니지로 열광했다. 리니지는 1998년 프로게이머 나오고 PC방 열풍이 터지면서 시장 영향력이 커졌다. 수 많은 사람들이 리니지 게임을 즐겨했다. 뉴스에 나올 정도로 사회적 파장도 일으켰으니 그 인기를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리니지의 인기 비결에는 자유로운 유저간 대결(PvP)이 가능한 점 때문이다. 유저들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대전하는 PvP에 열광했다. 리니지 PvP는 현실에서의 인간 욕망을 그대로 반영했다. PvP 대결에서 승리한 유저는 상대 캐릭터를 죽이고 상대가 가지고 있던 아이템까지 얻을 수 있었다. 패배한 유저는 아이템은 물론 경험치까지 잃게 되는 구조다. 유저들은 더욱 강한 캐릭터 성장을 원했고 나중에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현금 거래까지 진풍경도 만들어냈다.
리니지의 성공 이후 엔씨소프트 승승장구 했다. 2000년에는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아시아·북미·유럽 등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해 공략했다. 2003년에는 리니지 후속작인 ‘리니지2’를 선보였다. 리니지2는 대한민국 게임 대상을 수상했다.
리니지 지식재산권(IP) 하나로 만족하지 않고 신작 IP 개발에도 집중했다. 그 결과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를 비롯해 아이온(AION)과 블레이드 & 소울(Blade & Soul), 길드워(Guild Wars) 시리즈 등 굵직한 게임 타이틀을 보유하게 됐다.
2008년 선보인 아이온은 대한민국 게임 업계 RPG 열풍을 또 다시 불러일으켰다. 아이온은 게임트릭스 기준 160주 연속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2012년 발표한 블레이드&소울도 인기를 끌며 게임 개발 명가로서의 자존심도 보여줬다.
◆ 엔씨소프트, 넥슨과 경영권 분쟁으로 최대 위기 발생...그리고 넷마블의 ‘신의 한 수’
회사를 크게 성장 시킨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2015년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김택진 대표의 최대 위기로 평가되는 사건이다. 당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선후배 사이였던 김정주 넥슨 NXC 대표와의 경영권 다툼이었다.
앞서 2012년 김택진 대표는 김정주 대표와 손을 잡았다. 게임 업계 최대의 사건이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경영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던 두 회사가 왜 손을 잡았는지 의문점을 던졌고, 두 회사는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손잡았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들어 국내 게임 시장은 힘든 상황을 맞이했다. 중국 게임 업체들의 빠른 추격이 시작됐고, 국내 규제도 많아졌다. 국내 사업만으론 성장이 어렵게 된 것이다. 두 회사는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힘도 합치게 됐다.
김택진 대표는 엔씨소프트 개인 지분을 넥슨 재팬에 넘겼다. 넥슨 일본 법인은 대출을 통해 엔씨소프트 지분 14.6%를 8045억원에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대표의 글로벌 진출 전략의 핵심은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미국의 최대 게임 업체 일렉트로닉아츠(EA)의 경영권 인수하는 것이었다.
김택진 대표는 회사 돈을 인수 합병에 모두 써버릴 수 없었기에 자기 지분을 팔았다. 엔씨소프트의 개인 최대주주 자리를 넥슨 일본 법인에 내주는 대신 2대 주주로서 넥슨과 인수한 EA의 대표를 맡는 것도 약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두 사람의 EA 경영권 인수는 실패로 돌아갔고 두 사람의 관계도 불편해졌다.
EA 등 글로벌 게임 회사 인수에 실패한 두 사람은 엔씨소프트와 넥슨코리아의 협력해 합작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글로벌 진출 계획 노선을 수정했다. 하지만 두 회사가 추구하는 철학이 달라 1년 4개월만에 양사의 공동 게임 개발 프로젝트도 좌초됐다.
이후 엔씨소프트 주가는 하락했고, 넥슨 일본 법인의 8000억원 투자도 헛일이 됐다.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처음 매입했을 때보다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지분을 팔아 치우기도 애매했다. 급기야 2014년 10월 넥슨코리아가 엔씨소프트의 주식 0.4%를 몰래 추가로 매입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넥슨코리아의 추가 주식 매입으로 넥슨이 보유한 엔씨소프트 지분은 15%를 넘게 됐다. 지분율이 15%를 넘어서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 결합 신고를 해야 한다.
넥슨은 추가 주식 매입에 대해 '단순 투자’라고 설명했지만 엔씨소프트측은 사전에 지분 매입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며 공시를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2015년 1월 넥슨은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김택진 대표는 경영권 방어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수 많은 고민 끝에 넷마블게임즈와의 지분을 교환에 나서게 된다.
엔씨소프트는 경영권을 행사 할 수 없었던 자사주를 넷마블게임즈에 전량 팔았고, 다시 넷마블 게임즈의 지분을 사들이게 됐다. 이 선택은 ‘신의 한 수’로 평가 받고 있다. 경영권 방어하면서 모바일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는 방준혁 넷마블 의장과 손을 잡아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넥슨은 결국 2015년 10월 엔씨소프트 지분 전량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고 두 회사 간 갈등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 김택진 대표 개발자 정신으로 혁신과 변화 주도 앞장서
경영권 분쟁의 아픔을 겪었던 김택진 대표는 현재 마음을 추스리고 개발자 정신을 가다듬어 글로벌에 견줄만한 기업으로 성장 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김택진 대표의 개발 정신은 산업 변화에 집중하면서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엔씨소프트 목표에는 우주 정복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 그 곳을 정복하여 꿈의 낙원을 만드는 여정, 즉 계속 도전을 통한 혁신과 변화를 강조하려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남들이 만들려는 것을 똑같이 개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려는 것, 엔씨소프트가 ‘우주정복’ 단어를 사용하는 큰 의미다.
회사 목표처럼 김 대표는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별에 가고자 도전한다. 최근 구글 알파고가 IT 업계 충격을 줬는데, 김택진 대표는 이미 AI 중요성을 알고 게임 업계 발 빠른 대응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알파고 충격이 나오기 이전인 2014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택진 대표는 “엔씨소프트가 집중하고 있는 새로운 혁신은 AI(인공지능)기술이다”며 “새로운 AI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게임 플레이를 만드는 일에 엔씨소프트의 많은 개발자들이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고 신기술 개발을 알렸다. 당시 김 대표는 아폴로 13호가 위기 상황에서 이뤄낸 적극적인 도전 정신을 언급하며, 현실에 가까워진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미래 지향적인 가치관과 도전 정신으로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도전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가 살아오면서 함께 한 개발 정신과 선택, 그리고 인생 철학이 어울려 대응하려 한다.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의 현재를 위기라고 표현한다. 세계 수 많은 공룡 기업들과 싸워야 하는데 버겁기 때문이다. 이에 김 대표는 자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혁신을 주도하려 한다. 자사의 IP를 활용한 인기 게임을 모바일 버전으로 새로 내놓고, 신규 게임에는 온라인·모바일 두 가지 버전으로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전략도 전면 변경해 수립했다. 과거 엔씨소프트는 한국에서 게임을 먼저 선보이고 나서 시차를 두고 세계 각국의 사업 파트너를 통해 수출했지만 현재는 모든 게임을 세계에 동시 출시하고 직접 서비스할 계획이다.
김택진 대표의 꿈은 세계가 인정하는 게임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1997년 그는 엔씨소프트 회사 창립일 때 이러한 메시지를 던졌다.
“만약 우리나라에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인정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하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엔씨소프트라고, 우리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